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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군주’ 인피니트 엘, 이토록 ‘짠내’나는 왕이라니
입력 2017-06-09 13:28   

▲그룹 인피니트 엘(사진=피플스토리 컴퍼니, 화이브라더스 코리아)

잘생겼다. 천민 신분의 흰 무명옷을 입고서도 ‘잘생김’을 숨기지 못하더니 붉은 곤룡포 차림을 하니 미모가 더욱 빛을 발한다. 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 속 이선 역할을 맡은 김명수, 그룹 인피니트 엘의 이야기다.

엘은 데뷔 초부터 잘생긴 외모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지난해 6월 MBC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성별 불문 패널 전원이 망원경을 쳐들고 엘의 외모를 감상했다. 김구라는 숫제 망원경을 눈에 댄 채 인터뷰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오래 볼수록, 가까이서 볼수록 이로운 것이 잘생긴 외모 아니던가.

하지만 ‘군주’에서 엘의 ‘잘생김’을 뚫고 시청자들의 가슴팍으로 날아드는 것은 다름 아닌 이선에 대한 연민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이선은 세자 이선(유승호 분)과 신분을 몰래 바꾸고 왕위에 오른 인물.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편수회에 입단해 대목(허준호 분)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세자 이선이 왕권을 되찾고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분투하는 영웅적 인물이라면 천민 이선의 서사는 보다 인간적이다. 작품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파생한 천민 이선의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지만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편수회 대목(허준호 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연적이기도 한 세자 이선(유승호 분)과의 관계에서 천민 이선은 갈등한다. 복수와 생존, 정의와 연정을 오가는 그의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이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해낸다.

▲그룹 인피니트 엘(사진=MBC '군주-가면의 주인')

지난 5월31일 방송(13회)에서 그려진 이선과 한가은(김소현 분)의 만남은 특히 애달프다. 가은은 대목의 공작에 의해 아버지 한규호(전노민 분) 잃었기 때문. 한규호의 죽음을 촉발한 사건이 바로 이선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러니까 가은을 향한 이선의 심정은 연정과 죄책감으로 뒤얽혀 있는 셈이다. 왕이 된 이선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뭐든 다 해주겠노라” 말하는 장면은 그의 감정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초라하게 움츠린 어깨, 어색하게 떨어뜨린 고개는 비록 왕의 자세라고 보기에는 어려울지언정 이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는 제격이다. 사극과 어울릴까 우려했던 엘의 얇은 목소리는 오히려 이선의 나약함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의 처절한 울음 또한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왕이 된 뒤 보여준 섬세한 감정 연기는 가늘고 긴 파장을 남겼다.

‘연기돌’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만큼 많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배우 활동을 겸업한다. 엘은 단박에 두각을 드러내거나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케이스는 아니다. 하지만 ‘군주’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법을 깨우친 모습이다. 카메라를 독점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제몫을 놓치지도 않는다. 덕분에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과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엘이 배우로서 조명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엘은 자신이 가야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믿음직스럽다. 지금의 활약이 행운이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