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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명수 “부족함 알았으니 나아질 일만 남았다”
입력 2017-07-17 08:37   

▲인피니트 엘(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자, 그 질문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으로 시작한 배우 김명수(그룹 인피니트 엘)의 대답은 열에 아홉 간단하지 않게 마무리됐다. 자신만만한 서두와 입가에 띤 미소는 짐짓 그의 여유를 보여주는 듯 했지만, 가슴 속의 이글거림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인터뷰 내내, 김명수는 ‘어떤 질문이든 던지시오. 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소’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그것은 그의 열의와 자신감에 대한 방증이기도 했다.

김명수는 지난 13일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군주 - 가면의 주인’에서 천민에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선 역을 맡았다. 첫 사극이자 활동명 엘 대신 본명 김명수를 앞세운 첫 번째 작품. 호평도 있었고 혹평도 있었다. 다만 작품이 끝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김명수에게 남겨진 평가가 아니라 김명수가 거둬간 ‘무엇’이다. 그는 말했다. “‘군주’를 통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맺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부족함을 해결할 방법을, 더 나아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지금 김명수가 손에 쥔 것은 호평보다 더욱 귀하고 더욱 질긴, 발전의 실마리다.

Q. 가수 활동명 엘 대신 본명 김명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김명수:
배우로서 김명수라는 이름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엘에게는 엘의 길이 있고 김명수에게는 김명수의 길이 있다. 팬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엘의 모습 외에도 지금처럼 김명수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좋다.

Q. 이름을 달리 한다고 해서 엘의 존재감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는다. 부담은 없었나.
김명수:
많았다. 앞선 작품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 있고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다면 오히려 ‘군주’가 전화위복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인피니트 엘(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작품이 끝난 지금 스스로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싶나.
김명수:
잘한 건 모르겠고 아쉬웠던 부분은 많다. 허준호 선배님이나 김선경 선배님처럼 엄청나게 오랫동안 연기를 해 오신 분들과 붙는 장면이 많았다. 선배님들을 보면서 나도 캐릭터를 김명수화(化)하려는 욕심을 갖고 연기를 했는데 막상 모니터를 보면, 심지어 주변에서 호평을 받은 장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김명수:
물고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상의를 탈의한 채로 찍었는데 준비를 해서(몸을 만들어서) 찍었으면 좋았을 걸 싶더라. ‘다르게 연기했으면 어땠을까’, ‘다시 연기하면 어떨까’,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극 후반부에는 내가 김영웅 선배님을 물고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선의 감정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같다. 자신이 당했던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가한다는 게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Q. 얘기한대로 이선은 변화의 폭이 큰 인물이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김명수:
이선은 천민과 왕, 그러니까 신분의 양 극단을 오가는 인물이다.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이나 말투, 톤 등을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그리고 감정 표현. 천민일 때는 슬픔, 분노 등 한 가지로 표현되는 감정이 많았는데 후반에는 감정들이 마구 섞인다. 그걸 표현해내는 것이 어려웠다.

Q. 유승호, 김소현과 같은 또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김명수:
촬영 전부터 만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대본이 미리 나와 있어서 촬영 전과 중간에 리딩도 자주 했다. 두 사람 모두 아역배우 출신이라 그런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 것 같더라. 부럽기도 하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Q. 20대 남자 둘이 만나서 할 만한 일은, 역시나 음주밖에…
김명수:
(유)승호나 나나 둘 다 술을 자주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다. 밥 먹으면서 작품 얘기, 사는 얘기, 반려 동물 얘기 등을 나눴다. (김)소현이와 (윤)소희 모두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서 공통적인 화젯거리가 많았는데, 특히 승호와 나는 고양이 집사들이라서 어떤 간식이 좋고 어떤 모래가 나은지, 털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공유했다.(웃음)

▲인피니트 엘(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짝사랑으로 끝나긴 했지만 멜로 연기에 도전했다.
김명수:
소현이와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마지막에 이선이가 죽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선이 악역에 가까워지니 죽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혹시 사약을 먹고 죽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웃음) 결국 가은이를 지키면서 죽는데, 그동안 ‘널 갖겠다’는 얘기만 되풀이했던 이선이 그 때가 되어서야 마음 속에 있던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촬영한 뒤에 후유증이 컸을 것 같다.
김명수:
죽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이 촬영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드라마가 끝난다는 생각과 내가 죽었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기분이 정말 묘했다. 게다가 눈앞에서 승호와 소현이가 울고 있고. 감정이 더 몰입됐다. 리허설을 할 때부터 내 컷을 딸 때까지 계속 울었다. 아마 방송에 눈이 팅팅 부은 채 나올 거다.

Q. 이선은 신분과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졌으나 끝내 둘 다 손에 넣지 못했다. 이선이 왕위와 가은을 바라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열렬히 욕망했으나 얻지 못한 대상, 혹은 열렬히 욕망했던 대상이 있나.
김명수:
나는 넘고 싶은 벽은 반드시 깨고야 마는 성격이다. 나에 대한 악플 혹은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면 열의가 오른다. 더 잘해내고 싶어서 활활 타오른다. 잘하고 싶고 칭찬 받고 싶은 욕망으로 계속 해오다 보니, 팬 분들은 나를 보고 ‘애 키우는 맛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이 눈앞에 있지만, 계속해서 그 벽을 깨뜨리려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벽을 깨뜨렸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김명수:
연기할 때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소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스스로 잘했다고 느끼거나 주위에서 ‘이 이상 잘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 때가 벽을 깨뜨린 시점 같다. ‘벽’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 어느 날은 열심히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내가 OST를 불러야 한다더라. 그러면 그 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벽이 생긴다. 그리고 그걸 잘 해냈다고 느꼈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다.

▲인피니트 엘(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당신에게도 약점이 있나.
김명수:
일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뭔가를 계속 해나가고 벽을 계속 깨뜨려야 한다.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타고난 성향이 그런데다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잊히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 약점은 일이 없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발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 중이다.

Q. 데뷔 이후 지금까지 길게 쉰 적은 있나. 특히 사극은 체력에 부담이 많이 가는 장르인데.
김명수:
일을 할 때는 아프지가 않다. 텐션이 올라와 있어서 그런가? 그러다가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프기 시작하는데, 신기하게도 쉬는 시간이 3일간 주어지면 딱 3일 동안만 아프다. 일에 최적화된 몸인 것 같다.(웃음) 일을 시작하고 쉰 적은… 3-4일이 최장(最長)인 것 같다. 내가 나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더욱이 지금은 김명수라는 브랜드를 알려야 하지 않나. 3일 정도 쉬고 하반기의 일정일 짤 예정이다. 으하하.

Q. 얘기 중인 작품이 있나.
김명수:
회사로 들어오는 건 있다고 들었다. 아직 구체적인 건 모르겠다.

Q. 쉬지 않고 일을 해온 덕분에 슬럼프를 겪을 틈새도 없었겠다.
김명수: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있으면 빨리 깨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 어떻게 보면 나는 인생이 슬럼프인 것 같다.(웃음) 다만 잘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슬럼프라고 본다.

▲인피니트 엘(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그나저나 가수 활동 때 본 모습과는 꽤나 다르다. 팀 안에서는 말수가 적은 편에 속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아 보인다.
김명수:
가수는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부분이 많은 ‘스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팀으로 활동하니까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누군가 채워줄 수도 있다 그런데 배우는 온전히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지 않나. 내가 스스로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그래도 가수 활동 때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다. 게임 메X플 스토리에서 도적을 키우다가 마법사를 키우는 느낌이랄까.(일동 웃음) 한 번 (연예계를) 경험해봤으니, 지금은 더 재밌다. 해본 것의 다른 버전이니까 시너지도 나고.

Q.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나.
김명수:
물론 어렵고 힘들다. 다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어려운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어렵다’는 생각에만 매달리면 떨어지는 수밖에 더 있나. 그래서 더 긍정적으로, ‘재밌다!’ 생각하면서, 파이팅 넘치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말수가 많아지고 말이 빨라지는 건지도 모른다.(웃음)

Q. ‘어렵다고만 생각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가수 활동을 통해 깨달았나.
김명수:
그렇다. 슬럼프는 당사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멈췄으니까 슬럼프가 온 거다. 그걸 가수 활동을 하면서 직접 체험한 것 같다. 춤이든 노래든, 정체기를 지나면 확 느는 때가 온다. 정체기를 잘 견디면 슬럼프를 이기는 것이고 못 버티면 슬럼프에 빠지는 것 아니겠나.

Q. 가수와 연기자를 겸한다는 것은 두 직업이 가진 고충을 동시에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깨가 무겁지는 않나.
김명수:
가수 활동을 8년간 했다. 내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도 안다. 그러니까 가수로서 힘든 점은, 지난 8년 동안 보완하는 방법을 알게 돼서 거의 없다. 연기자로서의 슬럼프는…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따라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았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