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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워너원이 2017년 가요계를 씹어먹었다
입력 2017-08-11 14:11   

▲워너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8월 가요계는 전쟁터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걸그룹 소녀시대에서부터 WM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 등 잔뼈 굵은 제작사들이 내놓은 신인 보이그룹까지 다양한 색깔과 경력을 가진 팀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 전쟁은 각개전투라기보다 차라리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가깝다. 다윗은 모두다. 골리앗은 단 한 팀, Mnet ‘프로듀스101 시즌2’를 통해 탄생한 그룹 워너원이다.

워너원 열풍은 지금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로 뜨겁다. 프로그램 방영 당시, 좋아하는 멤버를 데뷔시키기 위해 투표와 홍보, 심지어 광고까지 마다않던 팬덤의 열기는 워너원 데뷔 이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룹 엑소, 방탄소년단이 공연했던 고척 스카이돔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열었고 2만 장의 티켓은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3만 3000원짜리 티켓이 250만 원까지 뛰어오르는 일도 있었다. 데뷔 타이틀곡 ‘에너제틱(Energetic)’은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고 데뷔 음반은 선주문량만 50만 장을 넘겼다. 신인 그룹은 물론이고 가요계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기록이다.

▲'프로듀스101 시즌2' 공식 포스터(사진=Mnet )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프로듀스101’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방송이 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고 말한다. 실제 워너원을 비롯한 ‘프로듀스101 시즌2’ 출연자 다수가 뜨거운 관심 속에서 데뷔했다. 그들에 대한 소비는 여느 신인 가수에 대한 소비보다 빠르고 활발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인기의 근원을 추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프로듀스101 시즌2’ 출신 가수들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유명세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명세는 프로그램의 화제성으로부터 발생했다. 워너원은 극단적인 경우다. 시청자 투표에 의해 결성된 덕분에 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장받지만, 같은 이유로 이 팀에는 제작사의 기획력이 끼어들 여지가 극단적으로 적다. 그러니까 워너원은 이미 인기 있는 멤버들로 꾸려졌기 때문에 인기 있는 팀이 된 것이다. 잘 만들어졌다거나 양질의 콘텐츠를 갖고 있는 팀이라기 보다는 말이다.

커지는 것은 프로그램의 힘, 방송사의 힘, 결국 미디어의 힘이다. 아이돌 그룹은 엑소처럼 독특한 세계관을 앞세워 성공할 수도 있고 방탄소년단처럼 정서적 유대가 담긴 콘텐츠로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듀스101’으로 대표되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하면 성공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운이 좋을 경우 그 크기는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음악제작사연합은 9일 미디어의 아이돌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서를 냈다. 제작사와 미디어가 ‘상생’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상생’의 이면에는 미디어의 영향력 강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제작자들이 앞으로 ‘진짜’ 우려해야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워너원이 가요계를 씹어 먹은 2017년, 어떻게 제작되느냐보다 어떻게 유명해져야 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