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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장산범’, ‘스포주의’ 없인 아무것도 쓸 수가 없네
입력 2017-08-16 13:50   

스릴러 영화의 경우, 러닝타임 내내 이야기의 힘 만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모종의 장치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유원지에서 귀신의 집을 체험할 때와 비슷하다. 대부분 공간이 주는 음산한 분위기보다도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귀신의 존재에 공포감을 느낀다.

이 같은 설정들은 오랜 시간 반복되며 장르의 공식으로 굳어졌다. 등 뒤부터 시작해 최후의 보루로 남겨 놓았던 이불 속까지 점령한 ‘낯선 것들’은 점점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이 보는 이들을 놀라게만 하는 장치는 때때로 극의 흐름까지 방해하는 수준까지 비중을 늘렸다.

장산범은 공포 스릴러 마니아들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으나, 영화의 소재로서는 신선하다. 이미 온라인 상에 퍼져 있는 실제 목격담과 이를 기반으로 만든 웹툰이 있어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데 더해, 한 번도 영화화된 적이 없어 기대감과 관심을 모은다. 누군가를 홀리기 위해 그에게 가장 친숙한 목소리를 흉내내는 존재, 장산범을 시작으로 ‘아빠 괴담’, 전래동화 ‘해님 달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검은 고양이’의 일부까지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극에 녹였다.

그러나 ‘소리’에 천착해 관련된 설정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인 탓에 ‘장산범’에 장산범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서스펜스보다 과잉된 감정들도 장산범을 가린다. 영화 속 장산범은 가족애와 더불어 모든 개연성의 부재를 무마할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넘어서지 못한다. 희연(염정아 분)과 가족들이 갈등하고 여자애(신린아 분)에게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보면 툭툭 튀어 나오는 ‘그것’에 놀라는 패턴이 반복된다. 때문에 마무리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배우들은 충분한 열연을 펼쳤다. 염정아는 절정의 모성애 연기를 펼쳤고 신린아도 천연덕스럽게 극 안에 녹아났으며 박혁권 역시 두 배우가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줬다. 그러나 가장 섬뜩했던 것은 치매에 걸린 시모 역을 맡은 허진의 연기였다.

일반 영화에 비해 5배 이상의 시간과 정성을 들인 후시 녹음은 귀 기울여 들어 볼 만하다. 공간은 물론 그 곳의 온도와 습도까지 표현하는 듯한 소리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장산범의 충격적 비주얼 혹은 등장 시점에 놀라다 보면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해 들을 필요가 있겠다. 1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