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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불가능을 가능케 한 옥택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입력 2017-09-06 08:43   

▲옥택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2PM 멤버 겸 배우로 활동 중인 옥택연(29)이 지난 4일 경기도 백마부대 신병교육대에 현역으로 입소한 데 대해 수많은 대중이 박수갈채로 환호하고 응원하고 있다. 옥택연은 미국 영주권 소유자로 군 면제 대상이었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지로 2010년 영주권을 포기했다.

하지만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허리디스크로 대체복무 판정이 나오자 수술 후 재검을 신청해 결국 현역 판정을 받아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예인 및 지도층 혹은 그 자식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체복무 혹은 면제 판정을 이끌어냄으로써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과 정반대의 숭고한 행동이라 대중이 뜨거운 성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북측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쏘아 올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생긴 뜻깊은 입대소식이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리허설도 없이 공연을 한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국하는가 하면 코스피 지수가 뚝뚝 떨어지는 등 외국이 심각하게 바라보는 한반도의 상황이다. 옥택연이 이런 사정까지 내다봤을 리는 없겠지만 이래저래 그의 남자다움과 책임감 그리고 애국심 등이 대중을 감동시키고 있다.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대문제는 법을 초월해 민족적으로 엄청난 의의를 지닌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주적은 다름 아닌 우리 민족으로 이뤄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우리는 북측에 정치적으로 돈과 물자를 지원해주는가 하면, 사업적으로 개성공단을 공동운영해왔고, 민간적으로 북측의 이산가족과 상봉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만, 군사적으론 북측과 24시간 치밀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화와 대치가 공존해온 게 한반도의 구도다.

애초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배경이 그랬듯 정전협상 이후 양측의 지도자들은 국경의 긴장상태를 정권유지 및 개인이익 실현에 노골적으로 악용해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줄이 드러나고 있듯 지금까지도 군대가 의문사를 비롯한 인권유린과 비리의 아수라장이었던 건 그런 이기적 독재정권이 유지됐기에 가능했던 아픔이다.

예전에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걸 탓할 수만은 없었던 분위기가 은연 중에 조성돼 있었던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군대가 원래의 목적과 임무대로 원리와 원칙에 입각해 운영되고, 각 유닛이 유기적으로 움직였으며, 전우애 책임감 애국심 등 이타적 협동체제와 정신을 근간으로 생리가 조성돼있었다면 그런 젊은이들이 모두 비난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군데군데에 불합리와 부조리와 비리와 불법과 이기심이 스며들어 있었던 걸 당시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안다. 오죽하면 제대 후 ‘그쪽(복무부대) 보곤 소변도 안 본다’는 말이 관행처럼 굳어졌을까? 오죽하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들 얘기가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일까? 최근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내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휴가 나온 군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게 우리 군대문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군대가 내부적으로 예전에 비해 많이 정화됐고, 젊은이들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 예전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물을 흘려가며 입영열차를 탔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기왕 갈 거 멋지게 가고, 2년 동안 즐기다 오자’는 생각으로 신병훈련소를 향한다. 민간에 군대체험 유료프로그램이 생긴 게 군에 대한 요즘 국민들의 긍정적 의식을 잘 반영해준다.

군복무는 일생에 딱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체험의 기회다.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도 않는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이다. 남들 다 해보는 데 나만 못 해본다면 불명예고 핸디캡이다. 스스로의 자긍심이고, 여성은 물론 국민들에 대해선 보호자로서의 성취감이다. 20년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해왔으니 그때쯤 일상탈출이란 걸 해보는 것도 신세계의 확장이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이런 생각을 유명스타들도 하거나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남부러울 것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그들이 ‘일반인’들과 뒤섞여 이전과는 다른 평범하거나 조금 불편하게 사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기 쉽진 않다. 특히 그들이 걱정하는 건 2년의 공백이 향후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물론 2년 쉬면 그만큼 재산상의 불이익도 발생하기 마련.

그러나 요즘 젊은 스타들은 가치관이 숭고해지고, 인생관이 확장된 게 확실하다. 유승호는 오라는 대학의 손짓을 마다했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신해서 일찍 군복무를 마쳤다. 강타는 수색대를 자원했으며 현빈은 해병대를 선택했다. 고루한 시선으로 보면 ‘사서 고생’이지만 현대적 감각으로 봤을 땐 ‘즐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기자’다.

옥택연의 경우 기초적 책임감을 넘어서 심지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정신이 강하게 빛을 발한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은 자발적인 봉사와 희생정신을 경쟁적으로 보여주며 투철한 도덕의식을 널리 고양했다. 현대의 적지 않은 국회의원이나 부자들이 ‘갑질’을 해대고,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 기득권층이 솔선수범하는 도덕의식은 근현대로 이어져 양차 세계대전에서 주로 영국 고위층 아들로 구성된 이튼칼리지 출신 군인 2000여 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땐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전방에서 활약했는데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전사했다. 마오쩌둥은 무고한 희생자 발생을 막기 위해 전사한 아들의 시신수습 포기를 명령했다.

옥택연이 영주권을 포기한 건 어느 정도 ‘그럴듯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허리디스크 수술까지 받아가며 끝내 현역으로 입대한 건 그의 순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정신을 충분히 입증하는 충분한 단서다. 허리디스크는 수술로 당장 치료가 돼도 재발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그는 ‘일단 2년’은 군복무에 아무 지장이 없게끔 수술을 결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군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의 변화를 훑어보면 그 저변엔 기성세대들의 의식화작업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예전 군대엔 불합리하고 불법일지라도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강요됐고, 폭력과 카르텔이 만연돼있었다. 대화나 타협이나 개선은 찾아볼 수 없었고, 도그마가 법이었다. 당시 존재했던 단기사병 즉 방위병을 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이유는 바로 그토록 어려운 현역의 과정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과 군사문화 우월주의가 저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2년 현역복무는 지극히 당연하다. 대체복무요원에 대해선 예전엔 ‘신의 아들’이라 평가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그나마 예전에 비해 많이 투명해진 행정을 믿고 각자의 복무형태에 대해 긍정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그래도 옥택연은 향후 연예스타들에게 지향해야할 최소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뭔지 보여줬다.

비단 남자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송혜교가 일본 전범기업의 광고출연을 거부했듯, 옥택연은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지지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만큼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당연히 완수한다는 책임감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건 곧 성의이기도 하다. 도덕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기준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성의와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한다는 신념과 소신이 필수다. 옥택연은 그걸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