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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BIFF] 문소리·나카야마 미호, 여배우 위기론에 대해 論하다
입력 2017-10-13 17:28   

▲나카야마 미호, 문소리(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문소리와 나카야마 미호, 국적이 다른 두 배우가 여배우의 입지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앞으로 배우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이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13일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의 오픈토크 '여배우, 여배우를 만나다'가 진행됐다. 행사에는 배우 문소리와 나카야마 미호 등이 참석했다.

이날 문소리와 나카야마 미호는 서로에 대한 인상을 밝혔다. 문소리는 나카야마 미호에 대해 영화 '러브레터'의 장면을 언급, '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나카야마 미호가 출연한 영화 '나비잠'(감독 정재은)에 대해"한국 감독이 연출해서 여러 가지로 재밌게 볼 지점이 많았다. 멜로는 아련함이 많이 남았고 정재은 감독의 미술감각과 미장센이 정말 돋보였다"고 극찬했다.

나카야마 미호는 "영화제 오기 전 문소리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봤다. 강인한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감독의 연출 하에 영화를 촬영한 것에 대해서는 "통역을 통해 이야기하니 시차가 생기긴 했지만 감독님이 워낙 밝아 분위기로 소통이 되는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나카야마 미호, 문소리(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문소리와 나카야마 미호는 각각 1999년, 1985년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한정적 역할로 인해 세월이 흐를 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공백을 가졌던 나카야마 미호는 이에 더욱 깊은 공감을 보냈다.

나카야마 미호는 "나이를 계속 쌓아갈수록 역할이 적어지는 느낌을 일본에서도 받는다. 나이가 많아져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와도 되는 영화가 더 많아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문소리 또한 이에 동조했다. 문소리는 "여성캐릭터가 줄어든 것에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같은 사회문제가 연관돼 있다. 영화는 산업이지 않나. 그렇기에 더 다양한 색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여배우들에게 남아있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나카야마 미호는 '여배우'라는 명칭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카야마 미호는 "일본에서는 여배우를 '여우'라고 한다. 여자 여(女)에 빼어날 우(優)를 쓴다. 빼어난 여성이라는 뜻인데 나는 그 한자가 좋지 않다. 여배우보다는 배우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기를 할 때도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하진 않았었다"고 토로했다.

문소리는 나카야마 미호의 지적에 동감하며 의견을 보탰다. 문소리는 "'여배우니까'라는 말은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다른 건 하지 말고 이것만 해달라는 뜻도 담겼다. 하지만 십여 년간 영화 일을 하면서 꼭 한 가지에만 맞춰서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문소리(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그는 "나 또한 영화를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여성배우들의 공통적 생각이기도 하다"면서 "옛날에는 '여배우니까 이래야죠'라는 게 강했다면, 지금은 '여배우니까 왜 이러면 안 되나요?'라는 후배들도 있다. 긍정적 변화다"고 평했다.

이어 문소리는 "어떤 시상식에서 내가 상을 받을 때 '여배우는 영화의 꽃이죠. 꽃에게 드리는 상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면서 "여배우도 뿌리나 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계 전반에서 여성 배우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거장으로 꼽히는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와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배우가, 여성 배우들이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철저히 남성 위주로 짜여진 영화 판이다. 남성 위주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구성되며 다양한 작품으로 탄생된다. 여성이 주축이 된 작품은 설 곳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직접 자신이 주축이 된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문소리의 시도는 괄목할 만하다. 여성 배우들의 의미있는 시도와 목소리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