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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이호원, ‘나는 나만의 것’
입력 2018-01-15 08:13   

▲이호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가수 겸 배우 이호원은 요즘 “모자와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길에서 많이 보이면 연예인으로서 마이너스인 것 같았다”는 데뷔 초의 생각은 이제 희미해졌다. 사소한 일도 크게 걱정했던 그는 데뷔 후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해도 아무 일 안 생긴다”는 걸 알았다. 최근 이호원이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얼굴이 편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호원은 지난해 7년 간 몸담고 있던 전 소속사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왔다. 인피니트에서도 자연스럽게 탈퇴하게 됐다. 당시 이호원은 연예인을 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생각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만큼 “내가 다 결정하는 사람”이었던 그는 “윗사람들의 결정이나 뜻에 의해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진짜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었어요.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는 것도 아쉽지 않았고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도 적었어요. 그런데 1~2년 전부터 억울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또래 친구들은 자기 스스로 내리고 있는 결정을, 저는 윗사람들의 뜻에 의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지난해 초 여행 겸 춤 공부를 위해 미국을 찾은 이호원은 동행한 뮤직비디오 감독 지누야에게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지누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호원은 “심하게 말하자면 내가 꼭두각시가 돼 있구나” 생각했다. “내 생각을 말해선 안 되고, 나는 그냥 예쁜 인형처럼 춤추고 노래하면서 늘 좋은 얘기를 하고 늘 웃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선택은 제 몫에 있더라고요.”

▲이호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한 때 이호원은 연예 생활을 중단할 결심까지 했다. 댄서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춤 학원을 만들기로 하고 실제 어느 정도 진행이 됐었다. 하지만 ‘노래’가 이호원의 발목을 잡았다.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이 있는데 그걸 못 해보고 (가수 활동을) 끝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음반이 100장 밖에 안 팔리더라도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가수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목격담이 들리던 사람”인 이호원은 3개월 동안 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다. 당시 그에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회사를 떠나기로 얘기가 마무리됐지만 (인피니트 탈퇴가) 기사화되지는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감사하게도 연락이 오는 회사는 몇몇 있었는데 아무 곳도 만나지 않았어요. 소문이 잘못 퍼질까봐 집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가 결심을 굳히게 된 건 가수 에릭남의 조언 덕분이다. 에릭남은 “네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그것을 택했을 때 네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공책에 써봐라”고 이호원에게 조언했다. 이호원은 가장 먼저 ‘노래’와 ‘팬’을 적었다. 돈, 명예, 인기는 포기해도 상관없었다. 공책 앞에 종일 앉아 자신이 언제 가장 행복한지 고민하던 이호원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호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이호원이 지금의 소속사 글로리어스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건 그래서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 사이사이 대형 가수가 소속된 기획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음반은 쉽게 만들 수 있겠지만 그 곳에는 A&R 팀이나 프로듀서 진이 있을 테고 그러면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긴 어려웠겠죠.” 이호원은 ‘진짜 내 음악을 하려면 가수 회사를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글로리에스엔터테인먼트의 김재출 대표는 이호원에게 “어차피 나는 음악을 모른다”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다. 이호원은 여기에 “팬들과 만나는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단서를 덧붙였다. 앞서 3개월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김재출 대표는 이 역시 수락했다. 그는 이호원에게 “너를 고(故) 장국영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호원은 “그건 대표님의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웃었다.

“배우 기획사에 들어온 뒤로 제가 배우로 전향할 거라는 추측이 기정사실화되더라고요.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음악으로 보여준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올해 상반기 안에는 음반이 나올 것 같아요. 곡 콘셉트를 정하고, 레퍼런스를 찾고, 악기 소리를 고르고, 가사를 쓰고… 모든 작업을 직접 하려다보니 열 배 힘들긴 한데, 그만큼 보람 있어요. 며칠 전 곡 작업은 끝났고 지금은 안무를 짜고 있어요.”

다시 주어진 삶에 이호원은 감사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모든 걸 내려놓을 생각까지 했는데, 이 정도 결과에 연연하는 게 웃기지 않나’고 생각하며 다시 심기일전한다. 한 때 “밥을 먹으러 가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지 않았”을 만큼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을 따라가려고 한다”고 말한다. 오직 이호원 만의 이호원이 새로 태어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던 중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던 이호원을 마주쳤다. 그가 말한 대로 마스크도, 모자도, 목도리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매니저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며 기자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건네던 이호원의 얼굴이 편해 보였다. 까닭 없이 안심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