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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이방인’, ‘헬조선’ 탈출 환상 없애주는 명약
입력 2018-01-11 18:24   

(사진=JTBC 제공)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이방인들은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모든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이민자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차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환상이 전 세계에 만연했다. 미국산 콘텐츠들은 마당이 딸린 2층 짜리 저택에서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의 이미지를 노출하며 이 굳건한 신뢰도에 힘을 실었다.

JTBC ‘이방인’은 미국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야구선수 추신수, 방송인 서민정,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타향살이를 그리며 실현된 아메리칸 드림을 보여 준다.

먼저 ‘17년차 이방인’ 추신수는 첫 방송부터 압도적인 재력을 보여줬다. 1200평 규모의 대저택에는 수영장부터 체력 단련실, 가족용 극장까지 없는 것이 없다. 차고에는 슈퍼카가 눈에 띈다. 토끼 같은 자식 3남매는 모난 곳 없이 밝고, 아내 하원미 씨와도 신혼 같은 금슬을 자랑한다. 일반인이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가정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추신수가 이룩한 아메리칸 드림의 반짝이는 면만을 비추지 않는다. 그가 슈퍼카를 타는 이유가 단적인 예다. 추신수는 “이방인이어서 어필할 수 있는 게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며 과거 비교적 좋지 않은 차를 오랫동안 타고 다녔을 때 동료 선수에게 무시당했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아내 하 씨가 겪은 고초도 상상 이상이다. 그는 타국 땅에서 마이너리거 남편을 내조하며 식비를 아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산후조리는 커녕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직접 운전을 해야 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실명 위기까지 맞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빈민가에서 살며 집을 자주 비웠던 남편을 기다릴 때는 방에서 나오지 못 할 정도의 두려움과 고독이 있었다.

지난 2006년 MBC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서민정은 이듬해 돌연 결혼을 발표하고 남편과 미국으로 떠났다. 막 스타덤에 올랐던 그의 결혼 소식은 당시에도 적잖은 충격을 남겼다.

10년이 넘도록 연예계를 떠나 있었던 서민정은 ‘이방인’을 통해 처음으로 가족과 일상을 공개했다. 서민정의 가족은 살인적인 물가로 소문난 뉴욕 한가운데, 한화 30억원을 호가하는 집에 거주 중이다. 한 달 주차비만 약 140만원을 쓴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햄튼 별장을 소유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걱정이라곤 없는 듯이 웃으며 산다.

하지만 서민정이 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기까지의 고생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낯선 사람으로 가득한 뉴욕 생활에서 백인들은 서민정을 은근히 따돌렸다. 일상이 된 인종차별 속에서 그는 사무치는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몇 년은 집 밖을 잘 나오지도 못했다.

이처럼 추신수와 서민정이 살고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삶, 그 명암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을 깬다. 평범치 않은 행복함 뒤에는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고통과 범인(凡人)이 할 수 없는 노력이 존재함을 보여 준다.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만큼 나라를 향한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그 바깥에 반드시 환상의 네버랜드가 펼쳐진 것만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방인’이 유명인들의 호화로운 인생을 정면으로 비추면서도 위화감 대신 흥미를 유발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