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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승조 “나는 나의 존재감을 찾고 있다”
입력 2018-02-19 08:16   

▲장승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배우 장승조는 MBC 주말드라마 ‘돈꽃’ 인터뷰 자리에 두꺼운 스프링 노트 한 권을 들고 나왔다. 2015년 1월부터 쓰기 시작한 ‘배우 노트’다. 손때가 제법 탄 이 노트의 표지에는 각기 다른 아홉 개 장르의 영화 제목이 쓰여 있다. 장승조가 오디션 레퍼토리로 삼는 작품들이다. 노트 안쪽에는 그가 작품이나 캐릭터를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이나 연기를 하며 거친 고민 등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노트를 들여다보던 장승조의 눈길이 잠시 한 곳에 멈췄다. 2017년 10월 29일 즈음 적은 글에서다. 장승조는 “내가 이날 굉장히 힘들었나 보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노트 중간 중간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을 붙여 두기도 한다. 훗날 반복해 읽어보기 위해서다.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노트에 적으며 이겨내려고 해요. 쓰다보면 생각이 걸러져서 좋아요.”

노트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이야기도 적힌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함이다. 장승조는 “이날(10월 29일)도 당시엔 무척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보면서 ‘아, 이 때 힘들었구나’ 회상한다. 당시엔 결정적인 상처가 됐을 수많은 일들도 결국 지나간다”면서 “다만 (같은 상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장승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장승조는 지난달 종영한 ‘돈꽃’에서 청아그룹 창립자 장덕환(이순재 분)의 손자 장부천 역으로 분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시놉시스에는 ‘악역’으로 설정돼 있지만 “주변 선배들 모두 가장 불쌍하다”고 했을 정도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장승조는 “버티려고 애쓰던 부천이 무너지는 걸 보며,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부천이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또 삽을 들었을 거예요. 아들을 위해서든, 스스로의 회복을 위해서든, 자존감을 위해서든, 정체성을 위해서든, 다시 장부천이 되기 위해 뭐든 해나가지 않았을까요? 작품은 끝났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여지는 열려 있는 연출이었어요.”

장승조는 ‘돈꽃’에서의 연기가 “마치 무대 위에서의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배우 간의 긴장감, 날 것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 장혁 덕분이다. 장승조는 “(장)혁이 형이 대본을 연구하고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을 ‘숙제’라고 표현했는데, 숙제해온 걸 보여주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경험”이라며 “살아 있으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장승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2005년 뮤지컬 ‘청혼’으로 데뷔해 10년 여 간 무대에서 활동해온 그는 OCN ‘신의 퀴즈 시즌4’(2014)를 계기로 지난 몇 년 간 TV 드라마에 주력해 왔다. 지난해 뮤지컬 ‘더 데빌’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2년 넘게 무대를 떠나 있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 장승조는 “내 연기 영역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를 추동한 것은 단지 개인적인 모험심뿐만이 아니다. 2014년 뮤지컬배우 린아와 결혼한 장승조에겐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있었다. “아내에게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도전하고 싶었다. 도전해야 할 것 같았다”고 느꼈다. 지난해에는 지인의 와인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잘 해내고 싶었고 잘 해내는 게 당연했다”던 장승조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전했다.

“제가 좀 이상한 놈인가 봐요.(웃음) 어릴 때부터, 무모한 도전을 많이 했죠.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도전을 이어가는 것은) 지금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무슨 작품에 들어가든 저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적응해나가야 하거든요. 잘 해내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한 일이에요.”

▲장승조(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장승조의 모토는 ‘길은 개척하는 것’이다. 후배들에게도 “산의 정상을 생각하지 말고 그 위의 구름을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정상만 보고 가면 정상에 도달한 뒤에 내려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하지만 그 위를 보려고 하면 제가 도약할 수 있는 또 다른 봉우리가 보이니까요.” 그래서 장승조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박하다.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 교만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그는 “남들이 칭찬하는 장면도, 뜯어보면 내 상처나 아쉬움이 있다”며 “만족과 부끄러움을 오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기자들에게 “요즘 행복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장승조의 가슴 한켠에는 여전한 무거움이 있다. 선택 ‘당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겐 숙명적인 무거움인지도 모른다. 장승조는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그냥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깟 고민 때문에 왜 그렇게 힘들어 했느냐는 질문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으로도 잘했다고 해주고 싶어요.” 장승조는 “생각이 많아진다”며 웃었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달려온 것 같아요. ‘나는 과연 무엇일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배우로서 존재 가치를 찾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선택한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매사가 질문의 연속이었어요. 배우 장승조가 무너진다면 인간 장현덕으로 잘 서있는 것도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과하거나 시행착오를 거칠 때도 있었지만, 연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배우 장승조’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았다는 것이 저의 답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