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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올 여름휴가는 ‘맛 바캉스’ 어떠세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입력 2018-06-14 10:45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추억 속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가 떠올랐습니다. ‘푸드’란 단어만 없었다면 게임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줄로만 알았겠지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tvN)는 외국에서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방송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유는 출연자 때문이었습니다. 요리연구가이면서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백종원 씨가 마치 축구 경기의 원탑 스트라이커마냥 홀로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뛰어난 공격수가 현란한 발재간으로 공을 드리블하듯 백종원 씨가 훌륭한 음식을 시청자 앞에 보기 좋게 갖다 놓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지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진행자 백종원 씨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평범한 골목에 자리 잡은 노점상과 식당을 돌아다니며 음식 맛을 봅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도장 깨기하듯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술의 고수들과 한 판 겨루기를 하지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도 비슷합니다. 1편 청두에서 출발해 홍콩, 방콕, 도쿄, 하와이, 후쿠오카, 하얼빈 등을 다니며 대표 음식을 맛봅니다. 게임과 방송의 주요 배경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거리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다만 ‘스트리트 파이터’ 속 주인공은 싸움의 승패를 가리기 위해 다니지만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백종원 씨는 오로지 ‘맛’을 즐기기 위해 도시의 골목을 누비고 다닙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의 매력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요리에 쓰이는 재료부터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매회 소개하는 지역의 기후와 토양 등을 함께 얘기하면서 특정 재료가 잘 자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려주죠. 특히 재료를 준비하거나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아름답습니다. 방송 제작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공을 들여 촬영했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달인 수준에 이른 요리사의 실력은 또 어떻고요.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 동안 거친 주방 일을 견뎠을 그들의 손을 보고 있으면 경건해지기까지 합니다. 이쯤에서 시청자는 최고의 음식이란 결국 재료 손질에서부터 만드는 이의 정성까지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어울려졌을 때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음식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매회 소개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모습뿐 아니라 근사한 경치도 함께 보여주지요. 이 방송에 흥미를 끌기 시작한 첫 번째 요인이었던 백종원 씨의 역할은 예상보다 매우 컸습니다. 그는 음식을 키워드로 세계 각지의 도시를 안내하는 가이드이자 메신저 구실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시청자를 대신해 음식 맛을 체험하면서 자칫 딱딱했을 백과사전식 요리 지식을 말랑한 양념처럼 늘어놓습니다.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음식 문화라는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느낌이 들더군요.

여행작가로 일하는 제게도 음식과 맛집은 언제나 환영할 만한 취재 대상입니다. 여행지에 숨은 맛집을 찾아내거나 전통을 품은 음식을 소개하는 일은 큰 재미를 느끼게 하지요. 여러 지역 중 전남 목포의 음식을 애정하기 시작한 건 몇 번의 취재 때문이었습니다. 목포 여행지를 소개해 달라는 연락이 계속해서 들어왔거든요.

목포의 대표 여행지는 목포역 주변과 갓바위 인근으로 크게 나뉩니다.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목포의 음식은 동반자처럼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분주했던 하루, 취재 일정을 마치고 그날 저녁에 먹었던 백반 1인분은 피로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주었습니다. 여객선터미널 근처에서 목포 바다 풍경을 근사한 반찬 삼아 맛봤던 매콤한 아귀찜도 잊을 수가 없지요.

2주일쯤 전 다시 목포를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는 취재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 여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주로 목포역 주변을 목적지 없이 걸으면서 행복하게 먹고 마셨습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게장 집도 들르고 제철은 아니라지만 민어 횟집에도 갔었지요. 목포의 밤바다를 보면서 실내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한잔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푸짐한 해장국도 한 그릇 먹었고요.

여행작가라고 저를 소개하면 자기가 이번에 갈 여행지의 유명한 맛집을 좀 알려달라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지만 그때마다 물어보는 분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식당을 소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럴 때 알려드리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여행지에 가셔서 택시 기사님들께 물어보라는 거지요. 택시 기사님들이야말로 지역에 뿌리박고 일하시면서 ‘진짜 맛집’을 꾀고 있으니까요.

‘벌써’ 6월 중순입니다. 놀기 좋아하는 분이라면 일하는 틈틈이 달콤한 여름휴가를 상상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여행지와 다양한 여행법이 있지요. 그렇다면 올해 여름에는 ‘맛 바캉스’ 어떤가요. 어디든 맛집 몇 곳은 영업 중일 겁니다. 분주한 여행에 지치지 말고 천천히 배부르게 즐기다 돌아오면 어느새 가을이 다가와 있을 겁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