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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고은이 말하는 “매 순간 행복했던 ‘변산’”
입력 2018-07-10 08:45   

(사진=BH엔터테인먼트)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은 배우 김고은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은교’ ‘차이나타운’ ‘협녀’ 등에서 강렬했던 눈빛을 선보였던 김고은은 이번 작품에선 순박함과 사랑스러움으로 극을 가득 채운다. 드라마 ‘도깨비’ ‘치즈 인 더 트랩’ 등을 통해 연기 폭을 넓히긴 했지만, 더욱 물오른 김고은의 능청맞은 캐릭터는 관객의 마음을 손쉽게 그의 편으로 잡아 이끈다.

‘변산’은 학창시절 학수를 짝사랑했던 선미(김고은 분)가 학수(박정민 분)를 고향 변산으로 소환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선미는 학수가 오랫동안 묵혀뒀던 고민을 털고 성장하기까지 그의 옆을 지킨다. 이처럼 ‘변산’의 시작과 끝을 매듭짓는 인물이 바로 선미다.

“선미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미가 학창시절 추억을 얘기할 때, 학수가 ‘그때 네가 있었어?’라고 묻는다. 그 만큼 선미는 친구들 기억에 없는 인물이다. 이런 묘사들이 선미 성격의 한 부분을 드러내준다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선미를 멋지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학수에게 돌직구로 직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선미 성격상 그렇게 한마디 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자기 혼자 참고 생각하고 삭히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편한 인물인데, 짝사랑했던 아이에게 조언을 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겠나. 선미가 쉽게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도 선미를 어른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학창시절 말없이 학수를 바라보기만 했던 아이는 커서 안정적인 공무원이자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로 성장한다. 학창시절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을 잘 썼던 학수가 그냥저냥 떠도는 래퍼가 된 것과는 다른 전개다. 느리지만 원하는 것을 이룬 캐릭터라는 점에서 선미는 어쩌면 청춘들의 이상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선미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약 10년간의 세월이 극에 자세하게 담겨있지는 않기 때문에 응축된 선미의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선미의 변화는 실제 나로도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성격이 변했다기보다 사회생활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성숙이 있는 것 같다. 쉬운 감정만 느끼면서 살 수는 없는 거다. 습관적으로 노력해서 일을 하다보면 현재의 ‘나’로 자리 잡게 되는 순간이 발생한다. 선미는 현재는 작가이자 공무원이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 아이도 나름의 기준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에 대해 배우게 된 것 같다.”

편안하고 넉살 좋은 선미의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김고은은 평소 살이 찌지 않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식단 조절을 해 8kg을 증량했다.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통통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로인해 자신이 스크린에 ‘덜 예쁘게 나오는 것’이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한 그는 ‘변산’이라는 고향의 이미지를 담기 위해 사투리를 배웠고, 2개월 동안 지방에서 배우들과 합숙하며 촬영 현장을 즐겼다. 또래 친구들이 한데 모인 자리, 그리고 ‘청춘’을 소재로 한 작품인 덕에 김고은은 배우들과 끈끈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박정민, 신현빈, 배제기 등 많은 배우들이 1986년생으로 동갑이었다. 고준 선배가 유일하게 40대이고, 나는 1991년생이다. 이 모든 사람이 극에서 친구로 나오는데 촬영장 바깥에서도 진짜 친구처럼 지냈던 것 같다. 보통 저녁 먹기 전에 촬영이 끝났는데 이후에 항상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또 우리는 공통적으로 칭찬을 받으면 되게 부끄러워한다. 서로 그걸 아니까 칭찬을 칭찬처럼 하지 않고 욕하듯이 하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숙소 근처에 맛있는 집도 많아서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내가 선택한 곳이 맛있으면 생색내고 했다.(웃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분위기는 촬영하는 배우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상대배우 박정민이 “김고은이 우리 현장을 너무 사랑하더라”라고 여러 번 말했을 만큼, 김고은에게 ‘변산’은 남달랐던 현장이었다. 김고은은 ‘변산’을 “힐링, 행복”으로 기억될 영화라고 털어놨다.

“정말 매 순간 행복했다. 일을 하면서 매순간 행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님이 가진 힘이 있었다. 감독님은 정말 멋진 어른이다. 우리 현장에서도 분명 예민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웃어버리신다. ‘감독님이 화나시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할 때 바로 ‘내 잘못이다. 으하하’ 하고 웃으신다. 그 모습에 우리도 웃게 된다. 가장 어른인 감독님이 그렇게 반응하시니까 예민해질 필요가 없었다. 낯간지러운 말이긴 하지만 정말 이 작품을 찍으면서 힐링이 되었다. 스스로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촬영을 했다는 게 기쁘다.”

사실 ‘변산’의 단독 원톱은 박정민이다. 데뷔 이래 스크린 브라운관 구별 없이 항상 메인 캐릭터를 맡아왔던 김고은이기에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것을 의외의 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의외’의 선택은 김고은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나게 했고, 덕분에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이번엔 이준익 감독님 궁금했고 이미 박정민 선배가 캐스팅된 상태라 주저하지 않고 찍었다. 감독님, 상대배우, 시나리오 등 여러 가지 중요한 게 있겠지만 사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내 상태인 것 같다. 그 시기에 가장 표현하고 싶고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나타내고 싶다, 사실 완벽하게 편안한 작품은 없다. 정말 편안하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웃음) 하지만 작품을 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는 느끼고 싶었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