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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리뷰] ‘명당’, 주제는 확실하나 한방은 없다
입력 2018-09-19 16:50    수정 2018-09-19 16:52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어떤 영화를 보는 이유는, 강렬한 쾌감을 느끼거나 혹은 마음 깊숙이 여운을 느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은 강력한 한방도, 느긋한 여운도 없다. 확실한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는 물론 등장인물까지, 어디에도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 결말까지 도달하는 길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박재상(조승우 분)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조선시대 천재 지관이다. 그는 동료 용식(유재명 분)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백성들의 분쟁을 해결해주며 먹고 산다. 실로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박재상의 말은 마치 만병통치약이자 신처럼 떠받들어진다.

하지만 박재상에게도 아픔이 있다. 13년 전, 왕의 묏자리에 자신의 조상의 묘를 쓰려는 세도가 장동 김씨 김좌근(백윤식 분)의 의견을 소신 있게 반대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어느 날, 왕족인 흥선(지성 분)이 나타나 박재상에게 힘을 합쳐 김좌근을 몰아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명당’은 지관 박재상과 왕족인 흥선, 그리고 욕심 많은 세도가 김좌근의 대결로 화합과 갈등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에 조승우와 지성 두 사람의 합, 그리고 반대편인 백윤식과의 대결이 중심을 잡고 이야기를 이끌기에 탄탄한 서사와 연기 대결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의외로 두 사람의 합이나 반대편과의 갈등이 잘 보이지 않고 캐릭터들 각자 따로 노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명당’의 최고 기대치는 극의 서사보다는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조승우와 지성의 합이었을 것이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분량 역시 마찬가지다. 조승우와 지성, ‘투톱’일 줄 알았던 ‘명당’은 ‘관상’처럼 멀티 캐스팅으로 힘을 분산시켰다.

다만 각자의 연기는 늘 그렇듯 뛰어나다.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조승우와 유재명은 ‘비밀의 숲’ ‘라이프’ 등에서 그려낸 캐릭터와 정 반대의 캐릭터를 선보인다. 조승우는 너그러운 인물을, 유재명은 능청스러운 역할을 맡았다.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한 지성은 힘없는 왕족 역을 맡아 한량의 모습부터 광기어린 모습까지 연기했다. 등장신부터 개처럼 음식을 주워 먹는 모습으로 충격을 안긴 지성과 그 연기를 받아주는 문채원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다.

이원근은 힘없는 왕 헌종 역을 맡아 굴욕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주로 한탄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다. 백윤식은 왕을 발밑에 두고 나라를 주무르는 정치인으로 역할을 다하지만, ‘관상’ ‘내부자들’에서 선보였던 강렬함은 느낄 수 없다. 김좌근의 아들인 김병기 역인 김성균은 단순한 악역으로만 그려져 아쉬움을 남긴다.

별볼일 없이 흘러가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도달하면서 극적으로 변한다. 하나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하면서 인물들의 갈등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캐릭터의 변화는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영화의 톤도 흐릿해진다. 이에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정확히 어떤 영화를 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부분 부분이 잘못 됐다기보다 큰 줄기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느낌에 초반 기획 단계와 시놉시스가 어땠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욕망의 화신들이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는 가운데, 지관 박재상의 예언과 계획 등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마무리 되어야 했지만, 카타르시스 또한 없다. 실제와 픽션을 혼합하면서 메시지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마무리라고 볼 수 있겠으나,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