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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다시, 스물’ 박경림부터 故정다빈까지...인생이 ‘라쇼몽’일지라도
입력 2018-10-02 15:22   

(사진=MBC)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나’와 ‘너’의 기억은 다르다. ‘라쇼몽’ 현상, 1950년 개봉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이 단어는 하나의 사건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인식할 때 쓰는 말이다.

“그때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박경림은 자신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김정화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겐 즐겁기만 했던 그 시절이었다. 하지만 김정화는 아픔을 겪고 있었고, 박경림은 그 아픔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에 죄스러움을 느꼈다. 박경림의 오열에는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지난 1일 MBC 스페셜에서 준비한 ‘청춘 다큐 다시, 스물’ 편은 2000년 시트콤 ‘뉴논스톱’의 주역들을 다시 만나 동창회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박경림은 당시 함께 연기를 했던 조인성, 장나라, 양동근, 이민우, 김정화, 정태우 등을 차례로 찾아가며 각자가 지나온 청춘과 현재에 대해 이야기 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시트콤이었던 ‘뉴논스톱’, 이 작품으로 신인이었던 배우들은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실제 스무살 언저리의 청춘들이 모여 대학생 연기를 했던 것도 이들에게 큰 추억으로 남았다. 박경림과 장나라는 “실제로는 기숙사에 살아본 적이 없지 않나. 그런데 현장에 오면 진짜 기숙사에서 내가 사는 것 마냥 편안했다”며 당시의 순간을 회상했다. 대중역시 이처럼 그들의 반짝이던 모습만을 기억했다.

(사진=MBC)

하지만 개개인의 기억은 달랐다. 신인이었던 장나라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하루에 얼마나 잘 수 있었냐는 질문에 장나라는 “그걸 그렇게 셀 수도 없었다. 잠을 자게 두지도 않았다”라고 당시 고충을 털어놨다.

김정화는 그 시간에 죽음을 매일 생각했다. 그는 “내가 눈을 감았으면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나 그런 생각도 했다”라고 말했다.

양동근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당시 리얼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았던 양동근은 우리들의 생각과 달리 “기계처럼 일을 한 것”뿐이었다고 한다. “우리 촬영 끝나고 같이 놀고 그랬잖아”라고 말하는 박경림에게 양동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했다. 박경림이 “넌 아예 기억을 지웠니?”라고 묻자, 양동근은 “나는 로봇처럼 연기를 한 거다. 의무적으로 했다. 나는 연기 빼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했던 거라 습관처럼 한 거다. 그러니까 기계처럼 대본을 넣으면 그것에 맞게 연기를 한 것뿐이었다”라고 밝혔다.

맏형이었던 이민우가 갑자기 프로그램 중간에 하차하게 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시청률이 좋지 않자 구조조정 대상으로 본인이 꼽히는 바람에 그만두게 됐다는 것. 이민우는 “내가 중간에 하차했잖아. 하차하면서 내가 ‘미안하다’는 말도 안 했다. 그렇게 그냥 헤어져버렸지. 그 시기가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다. ‘뉴논스톱’은 건강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나’의 결론을 놓고 봤을 때는 내가 제일 건강치 못했다”라며, 대중과 동료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박경림은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안타까워했다.

“나만 즐거웠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할 정도였다. 다들 힘들었고 아픔이 있었는데, 나만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박경림 역시 당시 촬영 도중 과로로 쓰러질 정도로 여유가 없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그리운 얼굴, 박경림과 김정화는 故 정다빈을 찾아가 “우리 만날 때 같이 있어 달라”고 이야기 했다. ‘뉴논스톱’ 이후 활발히 활동하던 정다빈은 2007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바 있다. 밝은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였기에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인생은 ‘라쇼몽’이었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함께 살아왔지만 같은 세상을 살았던 적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방송 말미, ‘뉴논스톱’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모두 한데 모인 멤버들은 “다시 보니까 그때가 된 것 같다”고 웃으면서 과거를 함께 추억했고, 또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맞다는 것. ‘청춘 다큐 다시, 스물’이 주는 이와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편, '청춘 다큐 다시, 스물'의 2부에서는 1부에 이어 미처 다 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 동창회에 찾아온 깜짝 손님 등의 모습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