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Z리뷰] ‘뷰티풀 데이즈’, 비극적 운명을 딛고 선 강인한 개인에 대하여
입력 2018-11-15 14:33   

(사진=스마일이엔티)

이미 일어나버린 비극,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한 여자와 아들이 있다. 운명은 그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지만 그들은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햇빛을 찾아 나선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Beautiful Days)’는 그들이 선택한 앞날이 ‘아름답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을 담고 있다.

중국의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 분)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오광록 분)의 부탁으로 14년 전에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나영 분)를 찾아 한국에 온다. 술집을 운영하며 한국인 남자(서현우 분)와 살고 있는 엄마를 본 젠첸은 더 크게 실망을 한다. 엄마는 성인이 되어 찾아온 아들을 예상외로 무심하게 대한다. 하지만 짧은 만남 후 중국으로 돌아간 젠첸은 오랫동안 숨겨온 엄마의 놀라운 과거를 알게 된다.

탈북민 엄마, 조선족 아빠, 중국인(조선족)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으로 오게 된 아이. 한 가족이지만, 이들은 이렇게 다르게 불린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이 밥을 먹는 한 가족을 구분 짓는 것은 분단 사회이고, 이 기준은 가족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한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담아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붉은 조명 아래에서 뿌옇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안에서 부유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오프닝을 연다.

(사진=스마일이엔티)

이질감이 도는 술집에서 14년 만에 만나는 엄마와 아들. 아들은 지난 세월만큼 훌쩍 커왔으나 엄마는 그를 여전히 애로 생각한다. 공유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괴리감은 두 사람을 낯설게도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임을 증명하는 요소가 된다.

인물들의 성격을 따라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는 많은 대사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상황 설정과 진실을 암시하는 대사들로 감정의 울림을 가져온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대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속내와 오랜 시간이 쌓인 진실을 하나의 문장으로 담아 놓는다.

덤덤해 보이는 캐릭터의 설정에 무게감을 선사하는 건 ‘시간들’이다.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를 떠오르게 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졌는데,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 2003년, 1997년까지 과거로 돌아가며 점차 진실과 마주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서사는 다시 ‘현재’와 만났을 땐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아픔이 되고 만다.

(사진=스마일이엔티)

특히 여러 번 등장하는 밥상 신을 눈여겨 볼만하다. 어두웠던 집안에 환한 햇빛이 들어오는 건 오직 엄마가 밥상을 내올 때다. 밥상은 엄마와 아들의 화해 혹은 화합의 제스쳐로, 밥그릇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유달리 따스하게 느껴진다.

연출을 맡은 윤재호 감독은 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다큐멘터리 ‘마담B’와 단편 ‘히치하이커’ 두 편에 이어 ‘뷰티풀 데이즈’에서도 분단이 가져온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해체된 가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재회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풀어낸 서사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엄마’ 캐릭터가 아닌 고통스러운 삶을 강인하게 걷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캐릭터를 소화한 이나영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인물의 서사를 그리며 성공적으로 복귀에 성공했다. 그의 아들을 연기한 신예 장동윤은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조선족인 듯 자연스러운 중국어와 사투리를 소화하며 이나영에게 밀리지 않는 호흡을 선보인다. ‘엄마의 애인’ 역을 맡은 서현우는 짧은 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캐릭터를 표현하며 극을 섬세하게 만든다. 남편 역의 오광록, 황사장 역의 이유준 또한 인상 깊다. 오는 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