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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대기자의 '스타 메모리'] 전인권의 추억 ①
입력 2021-10-02 13:00   

'스타 메모리'는 홍성규 대기자가 기억하는 레전드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약 30년간 경험했던 스타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전인권(비즈엔터DB)

전인권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한 가요 관계자 결혼식장이었다. 주례가 아닌 축사를 하기 위해 온 '인권이 형'은 보자마자 무척 반가워하며 뜬금없이 "홍 기자는 왜 국회의원 출마 안 하느냐"라고 인사말을 건네 왔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의 경우를 보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라고 웃으며 답했고, 먹고 사는 일이 무엇이냐고 해서 "언더그라운드 실력파 뮤지션들을 가려내는 음악 플랫폼 구축 중이다. 나중에 초대할 테니 꼭 들어오셔서 빛을 내주셔야 한다"라고 했다. 전인권은 매우 진지하게 경청하더니, 플랫폼 완성되면 삼청동에 와서 브리핑 한 번 하라고 했다.

당시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식권까지 챙겨드리고 함께 식사까지 하며 모처럼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식장까지는 어떻게 오셨냐고 했더니 "집에서 택시 타고 혼자 왔다"라고 했다. "매니저는 없느냐"라고 물었더니 "요즘은 그냥 아들이 많이 도와준다"라고 했다. 갈 때도 내가 택시를 잡아 드렸는데, "조만간 꼭 만나자"라고 했다. 외로움이 느껴졌다. (과거에도 그는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말수가 적었고, 늘 외로워 보였었다)

역시 음악은 뺀질뺀질하고 사회성 강한 사람보다는 왠지 어설퍼 보이고 고독해 보이는 사람이 할 때 '싸~한' 감성이 오롯이 전해지는 것 같다.

전인권은 순수하다. 순수하다 못해 태생이 야생이다. 너무 순수해서 가끔은 오해를 받는 것 같다. 그는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릴 때 그저 노래하는 게 좋아서 매일 삼청공원에서 친구들과 모여 노래하다 결국 가수가 됐다. 원래는 포크가수인데, 나중에 로커가 됐다. 들국화의 장르도 포크 록이다.

가장 좋아하는 로커는 롤링스톤즈의 믹재거이다. 믹재거는 어찌 보면 전인권과 외모도 비슷해서, 과거 기자 시절 '해외 팝스타와 닮은꼴 연예인'이라는 특집 기획 기사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적 통제나 마음에 안 맞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가 했던 말 중에는 "국가가 왜 개인적 행복까지 책임하려 하느냐"라는 어록도 있다. 그러다보니 정제되지 않고 사소한 실수들이 많다. 최근 내 집 앞 경치를 막으니, 조망권 때문에 화가 난다며 이웃집에 기왓장을 던져 경찰에 입건된 사건도 있다.

과거 제주도에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식사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공연 관계자에게 먹던 밥풀을 손으로 집어던진 적도 있다. 다 알아서 할 텐데 이것저것 간섭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였던 것 같다.

사회 적응을 못하는 듯한 이런 모습들은 전인권의 단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단점들 때문일까. 전인권의 노래는 끝없는 자유를 추구한다. 팬들은 오히려 그 단점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걱정 말아요 그대'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자'는 것이다. 제발 날 좀 놔두라는 것이다.

▲홍성규 대기자와 전인권

1990년대 초반 들국화 활동에 이어 솔로로 데뷔해서 한창 활동하던 시절,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세계적인 갬블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인권 본인이 당시 운영하던 경복궁 근처 카페에서 그와 재미로 포커를 쳤는데, 내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선천적으로 카드든 화투든 잘 못 한다.

그런데도 전인권은 내게 "이렇게 카드 기막히게 잘 치는 사람 못 봤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카드 못 치는 사람 못 봤는데 무슨 갬블러?"하고 생각했다.

전인권은 내가 '인권이 형'이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연예인 중의 한 사람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당연히 형이라고 해야 하고, 적으면 동생이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예의범절이다. 그런데 기자 초년병시절 선배들 왈 "취재원(연예인)하고 형, 동생 돼버리면 써야 할 기사 못 쓸 수 있으니 절대 형이라고 부르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인권은 나와 묘한 인연으로 얽혀있어서, 어쩔 수 없이(?) 언제부턴가 형이라 부르고 있다. 전인권은 아직도 만나면 '홍 기자'라고 부른다.

전인권은 내가 신문기자가 되기 전부터 우리 친형 때문에 친숙한 이름이었다. 우리 형은 현직 치과의사이지만, 대학가요제 동상 출신 기타리스트로 오래전부터 전인권(들국화)과 음악을 함께 해왔다. 전인권이 한때 '전인권과 가야'라는 밴드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한때는 전인권이 우리 형과 함께 압구정동에서 꽤 유명했던 라이브카페 '텍사스 문'을 같이 운영해서, 나도 많이 놀러 갔고, 올드락을 좋아하는 음악 마니아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었다.

지금까지도 전인권과 우리 형은 틈틈이 음악적 동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KBS 815 광복절 특집 방송에 함께 출연해 '걱정 말아요 그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