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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인터뷰] 정호연, '오징어 게임'의 로열로더
입력 2021-10-07 12:00   

▲데뷔작 '오징어 게임'을 통해 전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 정호연(사진제공=넷플릭스)

◆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내 e스포츠 업계에선 대회 첫 진출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선수를 '로열로더(로얄로더)'라고 칭한다. '스타크래프트' 임요환,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의 페이커(이상혁) 등이 대표적인 '로열로더'다.

'로열로더'는 e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예계에서는 데뷔작부터 화려한 스타덤에 오른 이들이 바로 '로열로더'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 '오징어 게임'에서 상처뿐인 승리를 거둔 사람은 '성기훈'(이정재)이었지만, '오징어 게임'으로 가장 큰 영광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정호연이다.

▲모델 출신 배우 정호연(사진제공=넷플릭스)

정호연은 2010년 모델로 데뷔해 2013년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4 준우승을 차지하며 얼굴을 알렸다. 당시 나이 20세였다. 이후에는 루이뷔통과 샤넬 등 세계적 브랜드와 협업하며 톱모델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다 지난달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단숨에 '벼락스타'가 됐다. 40여만 명이었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6일 기준,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정호연을 응원하는 내용의 다양한 언어가 그의 인스타그램 댓글창에 남겨져 있다. 7일에는 미국 지상파 채널 NBC 인기 토크쇼 '지미 팰런 쇼'에 또 다른 주역 이정재, 박해수, 위하준과 함께 초청됐다.

최근 진행된 비대면 인터뷰에서 정호연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극 중 과묵하고 감정을 좀처럼 표현하지 않았던 새벽과 달리 정호연은 밝고 러블리한 매력을 발산하며 '오징어 게임'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 이전까지 정호연은 출연작이 없다. 모델로서의 한계, 앞으로의 인생을 고민하고 있을 때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의 오디션을 보게 됐다. 그는 "연기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처음부터 연기에 열망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커리어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그러면서 점점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모델은 외적은 것을 표현하지만 연기는 사람의 감정과 삶을 표현하잖아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오징어 게임' 스틸컷(사진제공=넷플릭스)

'새벽' 역으로 새로운 얼굴을 찾으려고 어려움을 겪던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은 당시 뉴욕에서 정호연이 보낸 오디션 영상을 보자마자 "이 사람을 만나려고 이렇게 오래 걸렸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막상 캐스팅되자 당황한 건 정호연이었다. 정호연은 "새벽이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다"라며 "사실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내 연기에 대해 신뢰도 없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라고 돌이켰다.

연기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처음이다 보니 부담감을 떨쳐내기도 쉽지 않았다. 모델로 수많은 쇼에 섰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달랐다. 정호연은 "부담과 공포가 몰려오면서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라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그 후로 디카페인 커피만 마시고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결국 정호연은 황동혁 감독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자신이 왜 '오징어 게임'에 있어야 하는지 확신을 얻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님께서 넌 이미 새벽이고, 새벽이로 충분해서 뽑았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긴장을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연기를 엄청 잘하진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새벽이 안에 있는 여러 감정들을 응축하기 위해 일기도 쓰고, 내면적인 부분을 더 집중해서 공부했어요."

▲'오징어 게임' 스틸컷(사진제공=넷플릭스)

첫 연기 도전이었음에도 정호연이 성공적으로 작품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정재, 박해수, 김주령, 허성태 등 든든한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정재를 향한 존경의 마음이 더 커졌다면서 "내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을 때도, 서투를 때도, 이정재 선배는 기다려줬다.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촬영을 하면 할수록 더욱 느꼈다. 든든한 버팀목, 큰 오빠였다"라고 밝혔다.

또 조상우 역의 박해수, 한미녀 역의 김주령과는 촬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농담을 하고, 불평을 해도 다 받아주는 박해수는 둘째 오빠와 같았고, 김주령과는 촬영장 근처 큰 공원을 함께 산책하면서 격려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될 정도로 친해졌다고 했다. 정호연은 "한마음 한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정호연의 최근 화두는 '겸손'이다. 그는 "두 발 땅에 잘 딛고 있자"라는 박해수의 말을 매일 아침 명심하고 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인기 덕분에 지금 제게 주어진 일들을 잘 정리하고, 잘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예요. 그렇게 겸손하게 발전해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서 정호연이란 사람 자체가 엄청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오늘 하루도 감사히 살아가면서 최선을 다해 맡은 일들을 책임감 있게 정리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 정호연(사진제공=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정호연의 연기 열정을 더욱 불태운 작품이 됐다. 그는 "지금은 어떤 역할이든 다 해보고 싶다. 연기 생각밖에 없다"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말콤과 마리' 젠데이아 콜먼, '킹덤' 배두나, '인간수업' 박주현, '퀸스 갬빗' 애니아 테일러 조이, '킬 빌' 우마 서먼 등 다양한 인물을 경험하고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모델로서 좋은 날도, 안 좋은 날도 있었던 것처럼 배우로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싶어요. 꾸준히 가고 싶고요. 많이 흔들릴 순 있겠지만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