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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려진 시간’ 엄태화 “불신의 시대, 믿음에 대한 이야기”
입력 2016-12-13 17:12   

▲엄태화 감독(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영화 ‘가려진 시간’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때 호기심을 잡아끈 것은 물론 강동원. 하지만 그보다 먼저 기대감을 불러 세운 건, 엄태화라는 이름이었다. 그 이유의 중심에 엄태화 감독의 단편 ‘숲’(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작을 결정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가 3년 만에 선정한 2012년 대상작. ‘숲’ 이후 4년째 다시 대상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이 존재하는데, ‘숲’을 처음 접했을 때 온몸에서 감지한 황홀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1년 만에 나온 독립장편영화 ‘잉투기’는 그가 향후 보다 큰 시스템에서 만들어 나갈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놓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그 기대에 대한 첫 번째 결과물이 ‘가려진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16일 기대 속에서 등판한 ‘가려진 시간’은 전국 50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치며 빠르게 극장에서 사라졌다. 50만 명이란 숫자가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관객이 원하는 그림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개봉 전략의 실수이든 뭐든, 결과는 명확한 흥행 실패다.

그럼에도 ‘영화의 만듦새와 흥행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되는 건, 숫자 앞에서 이 영화의 성취가 쪼개지고, ‘탕탕탕’ 실패작이라 판명 받는 건 여러모로 아쉽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가려진 시간’은 시간에 갇힌 한 남자의 외로움과 시간이 지닌 상대적인 속성을 치밀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구현해 낸,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판타지에 사려 깊게 접근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뭐든 뒤집어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엄태화 감독의 사고방식을 빌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를 50만 명밖에 보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뒤집어서, 앞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잠정관객이 많다는 쪽으로 말이다.

Q. ‘가려진 시간’은 강동원의 출연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충무로에서는 ‘숲’ ‘잉투기’ 엄태화의 첫 상업영화 연출작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그런 기대들이 ‘가려진 시간’을 만드는데 어떤 작용을 했을지 궁금하다.
엄태화: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많은데, 그 지점을 좋게 봐 주신 게 아닐까 싶다. 많은 관심들은 좋은 부담인 동시에 원동력이 됐다.

Q.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타고난 성향인가.
엄태화:
성향일 수도 있고, 배워서 일수도 있다. 박찬욱 감독님 연출부를 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박 감독님 신조랄까. 중요하게 여기시는 게 첫 번째도 새로움, 두 번째도 새로움이셨다. 그 모습들이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에 들어오지 않았다 싶다. 물론 여기에서 새롭다는 건, 낯섦과는 다르다. 낯설어서 관객을 소외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핵심 정서를 소통하는 가운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Q.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엄태화:
박찬욱 감독님의 경우 뭐든 반대로 생각하신다. 누군가가 의견을 내면 그걸 뒤집어서 한 번 더 비트신다. 그것과 같다. ‘가려진 시간’의 경우 기본 설정은 ‘나이가 든 남자가 과거로 와서 첫사랑을 만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걸 조금 뒤집어서 ‘멈춰진 시간’을 설정한 거다. 이런 식의 전환이 무의식적으로 체득돼 있는데, 그게 (강)동원 씨에게도 어필이 된 것 같다.

Q. 당신 작품에서 자주 발견되는 테마는 ‘경계’다. ‘숲’과 ‘잉투기’가 꿈과 현실의 경계라면, ‘가려진 시간’은 시간의 경계를 다루고 있다. 시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어떤 건가.
엄태화: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나도 이젠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 부모님도 부쩍 늙으신 것 같고…시간이 흐른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그런 정서가 ‘가려진’ 시간에 녹아있지 않나 싶다.

Q. ‘가려진 시간’에 흐르는 시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엄태화:
그럴 수 있겠다. 판타지 영화에 관객들이 갖는 기대라는 게 있지 않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길 바라는.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간다. 판타지보다는, 시간 속에서의 외로움과 나이 듦에 대한 정서가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예상했다.

Q.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지니고 있는 판타지도 일견 누른 느낌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외모를 ‘늑대의 유혹’이나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처럼 활용하지는 않았더라. 그랬더라면, 관객을 모으는 데에는 도움이 됐을 텐데.(웃음)
엄태화:
(웃음) 애초에 여성판타지를 충족시키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영화의 톤 앤 매너를 끝가지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동원 씨도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신선하게 봤고.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결심한데에는 그런 요소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연출자 입장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실 그 배우의 지금 위치에서는 큰 위험부담이 있는 영화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도전해줬다. 고마운 일이다.

Q. 시간이 두렵고 허무하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시간이 지니고 있는 장점이 있지 않을까.
엄태화:
나는 과거 지향적인 쪽이다. 어릴 때 ‘명견 실버’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그걸 지금도 종종 틀어서 본다. 요즘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괜히 아련하고 슬프고 그렇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유를 찾는 중이다. 반면 미래는 조금 내려놓는 편이다. 기대를 잘 안 하려하고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실패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최대한 누르는 편이다.

▲동생이자 배우인 엄태구와 함께한 엄태화(사진=쇼박스 제공)

Q. 실패의 경험이라 함은.
엄태화: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들이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시험에서 낙방하기도 했고.(웃음) 그런 과정들이 있었다.

Q. 공감할 수 없다.(웃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3년만의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지 않았나. 영화아카데미에도 결국은 들어갔고.
엄태화:
최근 몇 년간은 나름 운이 좋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간 게 2011년도다. 영화를 시작한 게 2002년 즈음이니까, 그 사이에 어려움이 많았다.

Q. 영화를 시작하고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기까지, 그 시간의 엄태화는 어땠나.
엄태화:
그때도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이. 지금 돌아보면 다 치기였던 것 같다. 그때 만든 영화들을 지금 보면 참 부끄럽다. 다 보이거든. 그때의 욕망이라든가, 영화제 가려고 만든 느낌이라든가.(웃음)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를 3년째 하는 중인데, 심사를 하다 보니 알겠더라. 이게 진심으로 만든 영화인지 영화제에 가려고 만든 영화인지, 자기 목소리가 있는 영화인지 핵심은 없고 껍데기만 있는 영화인지.

Q. 시류에 편승한 단편영화들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안다. 영화제 출품작에.
엄태화:
맞다. 내가 이전에 만들었던 것도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아직도 배우는 과정에 있는데 조금이나마 느끼는 게 있다면, ‘솔직함’이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 때 핵심 테마가 아니라, 소재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이전에는 거기에서 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에 따르는 테마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젠 테마를 찾는 작업을 항상 한다. 이번에도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내가 뭘 하고 싶었는가를 곰곰이 들여다봤다. 아마 불신의 시대에 지친 내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 싶다.

Q. 이게 참. 불신과 믿음을 이야기 하니까 하는 수 없이 현실이 중첩된다.
엄태화:
하하하. 그러니까.

▲엄태화 감독(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요즘 많이들 그런 이야기를 한다. “창작자가 현실을 못 따라 간다”고.(웃음)
엄태화:
슬픈 일이다. 힘이 빠진다고 해아 할까. ‘설마 아니겠지’ 했던 것들이 사실로 쏟아져 나오니까 한편으로는 너무 피로하기도 하고. ‘가려진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또 누군가가 믿어준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싶었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다. 외로운 존재다. 그런 세상에서 믿을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건 행복인 거다. 그게 종교일 수도 있고… 아, 종교라고 하니까 또…

Q. 샤머니즘이…(웃음) 대화하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믿음이라는 것 말이다. 거짓을 말해도 믿어 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일까? 아니면 진실만을 믿는 게 아름다운 것일까?
엄태화:
어려운 문제다. 사실 진실이라는 것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때는 ‘순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를 믿었을 때의 동심과 순수함. 지금 이런 시대를 살다보니, 그때의 동심이 더욱 그리운 것 같다.

Q. 순수함이 정말 희미해진 느낌이 든다. 형사 백기(권해효)가 수린(신은수)에게 성민(강동원)의 주장이 거짓이라 말하며 자신이 그린 시나리오를 강요할 땐, 잠시 백기의 말이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순간 속으로 ‘나의 순수함이 어쩌다가 이리됐나’ 싶었다.(웃음)
엄태화:
그 장면은 원래 더 길었다.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만들고 싶었거든. 편집에서 많이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느꼈다고 하니 다행이다.

Q. ‘독립영화를 하다가 상업영화를 하니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은 줄 안다. 반대로 시작을 엄청난 상업영화들로 했기에 오히려 이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엄태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현장은 편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행복한 현장이었다. 상업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에서 이 이야기를 좋아해줬고 쇼박스도 지지해줬다. 또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합류해줬고. 그런 면에서 참 운이 좋았다. 독립영화와 달랐던 점이라면 온전히 현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물론 부딪히는 지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타협할 때는 타협하고 우길 때는 우기며 작업했다.

Q. 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제2의 봉준호’라고 불렸다고.
엄태화:
아니다.(웃음) 그건 최근 누가 인터뷰에서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다. 아마 안국진 감독이 영화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일 거다.

Q. 왜 ‘제2의 봉준호’라고 언급했는지 이해가 된다. ‘숲’에서도 느꼈던 건데, 조명 하나 소품 하나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엄태화: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에게 배운 게 있어서 그렇다. 박찬욱 감독님은 말할 것도 없고, ‘기담’을 연출한 정식-정범식 감독님도 디테일로는 유명하시거든. 엄청나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배웠기에 내가 얼마나 디테일한지는 잘 모르겠다. 판단기준은 모르겠으나, 그 분들 덕인 건 확실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도 도움이 됐다. 그 전까지 만들었던 것들이 어떤 욕망과 욕심으로 꽉 차 있었다면, 아카데미 들어가면서부터 영화를 찍는 게 심적으로 편했다. 영화제 생각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었다. 그런 좋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쇼박스 제공)

Q. 한국영화아카데미는 봉준호, 최동훈, 장준환, 김태용 등을 배출한 곳이다. 그 뒤를 이어 ‘파수꾼’의 윤성현, ‘늑대소년’의 조성희,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이 안국진 감독 등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데.
엄태화:
홍석재 감독과는 지금 같은 작업실을 쓰고 있다.

Q. 흥미롭게도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와 당신의 ‘잉투기’는 소재 면에서 참 많이 닮았다. 같은 소재를 다르게 푼 셈인데 서로 어떤 평가를 했나?
엄태화:
‘소셜포비아’가 ‘잉투기2’라고 본다, 나는.(일동웃음)

Q. 하하. 서로 먼저라고 우기는구나!
엄태화:
석재와는 좋아하는 게 참 많이 비슷하다. 그런데 말한 대로 풀어가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사람 중심이라면 석재는 시스템 중심이다. 그게 참 재미있다. 같은 걸 보면서도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지금도 작업실을 함께 쓰면서 서로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소재가 계속 겹친다.

Q. 흡사 부부 같다. 한 공간에 살면 닮는다고 하지 않나.
엄태화:
함께 작업실을 쓴 시간은 2년인대, 석재는 아카데미 동기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거의 붙어 다녔다. 아카데미 동기 6명이 지금 다 친하다. 홍석재, ‘들개’의 김정훈, ‘이쁜 것들이 되어라’의 한승훈, ‘보호자’ 만든 유원상, ‘잉투기’를 함께한 조슬예 작가와 나, 이렇게 여섯 명이서 여행도 가고 시놉시스 내기도 하고 그런다. 기한 정해놓고 늦으면 맛있는 거 사기, 이런 거.(웃음)

Q. 작업물을 공유할 수 있는 내 사람들이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전공이 영화가 아니다.
엄태화:
전공은 광고디자인이다. 공부는 하기 싫은데 그림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미대는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술을 했다. 순수미술보다는 광고디자인이 돈은 조금 더 벌 수 있겠다 싶어서 광고디자인과를 들어갔고. 그런데 한국에서 광고디자인이라는 게 ‘틀’이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내가 있을 때는 창의력을 펼치는데 다소 도식적인 면들이 있었다. 그래서 CF를 해 볼까 했는데 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걸 만든다기보다, 기존 소스들을 버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영화 ‘몽정기’ 미술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영화현장이 힘들긴 해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업이 재미있더라. 복학하면서 영화 수업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Q. 결국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끌린 셈이다.
엄태화:
몰랐는데, 어릴 때부터 그런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가령 만화 ‘슬램덩크’가 있으면, “일본에서 미리 봤다”고 ‘뻥’치고 친구들에게 연재가 안 된 뒷부분 이야기를 상상으로 들려주곤 했다. 만화 ‘드래곤볼’도 뒷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서 애들에게 보여줬었고. 그걸 잊고 잊다가 현장에서 다시 느낀 거다.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지!’

▲엄태화 감독(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영화 현장이 즐거워도 현장을 이끄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엄태화:
자꾸 박찬욱 감독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현장에서 큰 소리를 전혀 안 내신다. 뭐랄까. 현장이 톱니바퀴 굴러가듯 흐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생각하다가 이유를 찾았다. 감독님은 스태프에게 일을 맡길 때 온전히 그 사람을 믿고, 동시에 그 사람에게 부담감을 주는 식이셨던 것 같다. 물론, 그 책임과 부담은 다시 감독이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고. 결국 사람을 믿으면서 능력을 200% 끌어낼 수 있도록 작업하는 게 감독의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Q. 사실 배우들만 시선의 압박을 느끼는 건 아니다. 감독 역시 현장의 스태프와 제작사와 배우 등 많은 이들의 시선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엄태화:
공감한다. 그래서 ‘밀당’을 잘 해야 한다. 믿을 땐 확실히 믿고 끊을 땐 확실히 끊는. 그게 내겐 앞으로의 숙제인 것 같다. 그리고 연출자도 어느 정도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은 바짝바짝 타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 거지. 중심이 돼야 할 사람이 안절부절 하면 주위 사람들이 ‘과연 저 사람을 믿고 가도 될까’라는 생각을 할 테니 말이다. 그런 것들도 박찬욱, 정식-정범식 감독님들에게 배운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거든.

Q. 역시 처음은, 강한 자에게 호되게 배워야!(웃음)
엄태화:
공감한다.(웃음)

Q.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엄태화의 테마가 있다면 무엇인가.
엄태화:
관심은 매순간 바뀌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그걸 찍었던 시기의 내가 보인다. 내가 그때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가가. 그럼에도 나를 관통하는 기본 테마를 꼽자면 ‘사람’이다. ‘사람은 외롭구나’ ‘산다는 게 참 외로운 일이구나’가 나의 테마가 아닐까 싶다.

Q. 인간의 외로움은…극복이 될까?
엄태화:
외롭겠지. 평생.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