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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싱글라이더’, 고갱과 노자를 묻는 철학이라니!
입력 2017-02-22 14:21    수정 2017-02-24 13:45

(*이 글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싱글라이더’(이주영 감독,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배급)는 반전이 꽤 중요한 영화다. 그런데 그 내용은 장르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멜로일까? 그렇지도 않다. 예술과 문화는 다양성이 중요하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한국 영화계의 분수령이다.

잘나가는 40대 초반의 증권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이 2년 전 호주로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들 진우를 떠나보낸 이유는 일에 매진해 늦기 전에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인 동시에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부실채권 사건으로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휴대전화도 내팽긴 채 무작정 호주로 떠난 그는 가족이 사는 집에 도착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다 수진이 진우의 현지 친구 루시의 아버지 크리스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그는 가족 앞에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이방인이 돼 현실을 겉돈다. 그런 그에게 웬 노파가 나타나 “떠나라”고 경고한다.

저녁시각 홀로 식당에 앉은 그는 낮에 우연히 봤던 워킹홀리데이 대학생 지나(안소희)를 또 발견한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나갔던 그녀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밖에서 비틀거리며 나타난다.

그녀는 지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 1만9000달러를 또래의 한국인들에게 사기 당했다며 재훈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찾은 범인들의 숙소는 ‘임대 중’이란 팻말만 걸려있을 뿐 텅 비어있다.

수진은 많이 변했다. “매일매일 노력하는 게 지겹다”며 아끼던 바이올린을 망설임 없이 팔아치웠던 그녀는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시립교향악단 입단 오디션을 봤다. 아예 이민해 정착하려는 것. 뭣보다 그녀는 크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재훈은 괴롭지만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다.

귀국할 수도 수진의 따뜻한 집안으로 용해될 수도 없는 재훈은 지나와 더불어 수진과 진우가 아끼던 애완견 치치와 함께 동행자가 돼 낯선 타국을 방황하다가 충격적인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러닝타임 중간에 채 못 이르러 눈치 빠른 관객은 반전에 몸서리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클지 몰라도, 감독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의 메가톤급은 아니다.

수진은 재훈을 사랑했고, 진우를 끔찍이도 아꼈으며, 그들과의 가족관계가 최고로 소중한 줄 알았다. 그러나 만리타국에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아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다. 그래서 그녀는 주체성 정체성 자존감을 찾고자 우뚝 서게 된다.

수진과 크리스의 관계는 불륜이나 일탈 이외의 다른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재훈은 성공한 화이트컬러지만 크리스는 가난한 블루컬러다. 그러나 재훈이 돈을 위해 고객을 속인 사기꾼인 반면 크리스는 거리의 막노동일망정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알았고, 행복을 추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스신화의 벨레로폰테스는 젊은 시절 실수로 친형제를 죽인 죄로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맞지만 페가수스의 도움으로 키마이라를 죽임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자만이 지나쳐 오만방자해진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올림포스까지 날아오르려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절름발이에 장님이 돼 엘레이안 평야를 방황하게 된다. 재훈이다.

소문대로 데뷔하는 이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는 상당히 탄탄하다. 마치 고급스럽게 잘 기른 유기농 재료(시나리오)를 특별한 테크닉 없이 정석대로 요리(연출)해 매우 값비싼 그릇(연기력)에 담아낸 느낌이다. 그래서 사실상 영화를 혼자 이끄는 이병헌의 연기력이 무척 빛난다.

그의 대사는 철저하게 절제돼있되 미세한 얼굴근육의 움직임과 눈동자의 떨림 등으로 감정의 출렁임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얼마나 디테일이 섬세한지는 이제 할리우드의 스타로서 능숙하게 구사하는 영어마저도 일부러 한국식 발음으로 어눌하게 고친 데서 잘 알 수 있다. 튼실한 시나리오에 이병헌의 연기력이 천근만근의 무게감을 실어줬다.

영화가 노래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고독, 즉 쓸쓸한 인생이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과 행복은 부풀려진 계산서일 뿐 삶의 실상이란 살고나면 그저 적자가계부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고갱에서 영감을 얻은 듀스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가사는 물론 오래전 최희준이 크게 히트시킨 ‘하숙생’의 가사와도 연계된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간 호화저택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란 희망에 힘든 오늘을 억지로 웃으면서 산다.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100년도 안 된다. 죽고 나면 모든 게 허망할 뿐 세상은 하숙집이고, 모든 사람은 하숙생이란 철학을 설파한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란 비행기에 각자 한 명씩 승차(싱글라이더)했을 따름이란 뜻일지도.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물질적인 세계와 평등무차별한 빈 공간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과 노자의 ‘무위자연’(순리대로 살자) 철학을 버무렸다.

영화는 소문대로 무척 슬프다. 그런데 관람 중에는 미처 눈물을 흘릴 겨를이 없이 그냥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아주 특이한 영화다. 한국영화 리스트에 이런 철학 하나쯤 있다는 건 뿌듯함이다. 97분. 15세 이상 관람 가. 2월 22일 개봉.

유진모/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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