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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人]CJ엔터 출신 최아람·양성민·백승환 대표②…“일희일비? 불가능한 말”
입력 2017-03-14 14:03    수정 2017-03-14 15:07

▲(왼쪽부터)양성민 대표, 백승환 대표, 최아람 대표(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인터뷰, 약간 ‘아사리판’ 될 것 같아”(양성민) “약간? 몹시겠지!”(최아람) 인터뷰 조율을 위해 SNS 메신저로 소환된 양성민 대표와 최아람 대표가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공격하며 만담을 나눈다. 술을 가볍게 마시며 인터뷰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자, 이번엔 백승환 대표가 빠르게 치고 나온다. “낮에 해도 ‘망삘’인데 밤에 하면 이거…” 인터뷰에 나서기도 전에 ‘가장 믿지 못하는 건 본인들의 혀’라고 눙치는 유쾌한 세 남자의 공통점은 CJ엔터테인먼트 출신이라는 점. 국내 굴지의 엔터회사에 몸담고 있던 세 남자는 최근 당당히 독립을 선언,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그러니까 이번 인터뷰는 한때 직장동료였던 세 남자가 서로의 활동을 응원하고, 영화/연예 비즈니스 세계에서 느낀 소회를 풀어보자는 의미로 기획됐는데, 의외의 재미는 물론 의미도 덤으로 얻은 자리였다. 인터뷰 땐 그들의 유머에 회유당해 정신을 못 차렸는데, 집으로 돌아와 녹취를 풀어보니 말 사이 사이에 곱씹어볼만한 지점들이 상당했다.

최아람: 제작사 ‘영화사람’ 대표.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과 투자제작팀을 거쳐 지금의 제작사를 차렸다. 그 어떤 사진에서도 ‘엄지척’ 포스를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덕분에 그가 담긴 사진들은 ‘윌리를 찾아라’ 수준의 재미를 보장한다. 올해 4월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들고 나올 계획. 흥행에 성공하면 ‘10년 묵은 돔페리뇽’을 따겠다는 포부다.

양성민: 매니지먼트 YNK엔터테인먼트 대표.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시절, 특유의 친화력으로 배우들을 형·누님·동생으로 만들었던 양성민 대표는 그러한 자신의 장점을 살려 캐스팅 전면에 나선 케이스다. 지난 해, 같은 팀원이었던 김민수 대표와 독립해 직접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렸다. 임수정 신혜선 등이 현재 YNK에 소속된 배우다. 배우 지망생들을 위한 책 ‘배우를 찾습니다’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오늘도 찾아 나선다. 좋은 콘텐츠로 인도할 가능성 많은 배우들을.

백승환: 제작사 ‘백그림’ 대표. 이번 대담의 막내인 백승환 대표는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를 거쳐 제작사를 차린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모 영화인은 백승환 대표를 가리켜 “그의 외모는 샤이니 민호에서 차이밍량으로 변했지만 풍류를 즐기고 영화를 사랑하는 모습은 한결같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편영화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는 영화바라기다. 지난 3월 9일 개봉한 창립작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를 통해 진짜 제작사로 태어난 그는 개봉 당일 인터뷰에 나서는 신인제작자 답지 않은 담대함을 보였는데, 인터뷰 중간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흥행스코어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영화사 람 최아람 대표(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대기업 수직 계열화에 따른 독과점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독립영화를 제작한 입장에서 아쉬움은 없었나.
백승환:
일단,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경우엔 아쉬움이 전혀 없다. ‘콘텐츠판다’에서 100개를 목표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상영관을 잡았다. 매우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 내가 배급팀 출신이어서 그런지 스크린 수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지 않는 게 좀 있는데, 다만 그런 건 있다. 이번 작품이나 배급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데, 시장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요즘 ‘다양성 영화’라는 워딩으로 대표되는 시장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다양성 영화중에 한국 저예산·독립영화 시장은 삭막하다. 오스카 노미네이트 작품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자비에 돌란 같은 감독의 의미 있는 작품엔 헤비 유저들이 몰리는데 그게 한국 저예산 영화로까지 이어지진 않는 실정이다. 그런 시장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쿼터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공감하는 쪽이다. 한국 예술영화 쿼터를 조금 세분화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양성민: 그건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도 같은 생각이다. 좋은 별들을 성장시키려면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시장은 쏠림 현상이 크다. 영화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고 그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다보니, 투자가 되느냐 마느냐를 이야기할 때 일부의 배우로만 이야기한다. 점점 그들만의 리그가 돼 가다 보니까, 좋은 실력을 갖춘 배우임에도 영화로 들어가는 진입장벽은 너무 높아져 버렸다. 신인감독이나 역량 있는 저예산 영화들이 잘 돼서 그 시장이 커지길 매니지먼트 입장에서 바라고 있다.
최아람: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내가 ‘족구왕’(2013)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영화를 보고 안재홍에게 반해 따로 만나기도 했다. 그땐 이렇게 함께 영화까지 하게 될 줄 몰랐지. 만약 ‘족구왕’이 없었으면 안재홍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싶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족구왕’이 있었기에 출연을 한 거니까.

Q. 말한 대로, 요새는 배우가 정해져야 투자가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최아람:
그게 참 애매하다. 매니지먼트에서는 “투자배급사가 어디예요?”가 되고, 투자배급사에서는 “배우는 누구예요?”가 된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투자배급사를 끼고 일을 하는 쪽이다. CJ엔터에 12년 있으면서 늘 궁금했다. 10년을 버티는 영화사들이 왜 없는지. 해답은 경상비에 있더라. 경상비에 발목 잡혀서 휘청이는 곳이 많다. 그래서 경상비 최소화를 목표로 공동제작 가능성을 내 경우엔 다 열어뒀다. 투자배급사든 제작사든 처음부터 파트너로 엮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Q 영화-드라마만큼 성공과 실패가 수치로 확 갈라지는 분야도 많지는 않다. 둘 사이를 여러 번 오가다보면 성공과 실패에 어느 정도 무뎌질까.
최아람:
2008년도에 돔페리뇽 샴페인을 하나 샀다. ‘영화가 성공하면 먹어야지’하고 김치냉장고에 넣어 뒀는데, 10년째 그 자리에 있다.(일동웃음) 김치냄새가 배어있는 10년 묵은 돔페리뇽을 누가 보더라도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싶을 때 딸 계획이다. 아, 이번 작품으로 따고 싶은데…(웃음)
백승환: 사실 배급팀에 앉아만 있어도 1년에 필모그래피가 따박따박 쌓인다. 쇼박스에 가서 담당한 것까지 하면 100작품이 넘는데, 수가 늘어날수록 무뎌진다기보다는 일희일비하지 않게 된 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은 워낙 과학배급이라 마케팅-인지선호도 지표 등을 보면 개봉 전에 대충 관객 숫자가 보인다.
양성민: 그러고 보니, 승환이가 술배급도 잘 했지만 과학배급을 선도하기도 했다.(웃음) 항상 노트를 끼고 다녔다. 투심 같은 간담회 때도 인상 깊었던 게, 다른 사람들은 ‘좋았다 안 좋았다’ 마케팅적인 부분에서 보는데 승환이는 유사 성향의 영화 리스트부터 흥행 스코어를 가져와서 비교하며 이야기 하곤 했다.
백승환: 배급팀이 회의 들어가서 ‘미장센’ 같은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안 들어준다.(웃음) 그래서 선배들이 “우린 숫자로 이야기해야 해!”하곤 하셨다. 그 말이 도움이 됐다. 유사작을 엑셀로 정리해야 회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걸 또 선배들이 예쁘게 봐 주셨던 것 같다.
양성민: 일희일비 이야기를 했는데, 배우들의 경우 그 감정의 급락이 조금 더 큰 편이다. 그런 배우들을 상대해야 하는 매니지먼트는 조금 초연해 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배우를 영입하는 것부터 해서, 출연을 성사시키는 것도 그렇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에 있어서도, 한 명 한 명 인연을 맺으면서 매니지먼트를 한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더라. 영화 같은 경우엔 차라리 정직하다. 일련의 단계가 있는데, 여기는 일이 아예 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엄청 많을 수도 있다. 배우가 놀면 직원들도 덩달아 놀게 되고. 그래서 매니지먼트를 오픈한 초반에는 ‘왜 내 마음대로 안 되지’ 라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엄청 무기력했다. 무섭기도 하고. 그걸 이제는 조금 내려놓았다. 최선을 다 하되 안 되는 건 빨리 잊고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하나하나 다 연연하다가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더라.

▲YNK엔터테인먼트 양성민 대표(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최아람: 그런데 일희일비도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제작사에게는 사실 말이 안 되는 단어다. ‘임금님의 사건수첩’만 하더라도 판권을 사서 개봉하기까지 5년 걸렸다. 투자배급사처럼 1년에 여러 편을 개봉시키는 게 아니라, 3년에 한 편 혹은 5년 걸려 영화 한 편 개봉이다. 그럼 일희일비를 할 수가 없다. 이 하나에 모든 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작사에겐 항상 넥스트 스텝이 필요하다. 차기작 백업이 있어야 정신을 어느 정도 분산시키지, 아니면 힘들다.
백승환: 처음에는 이런 선배님들 이야기를 이해 못했다. ‘하나에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다르다. 3-4년간 하나만 바라보고 앉아있으면 손가락 빨기 십상이겠더라. 적당한 수준의 차기작 포트폴리오는 꼭 필요한 것 같다.

Q.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다. 아이템을 발굴하고, 팀을 꾸리고, 프리프로덕션을 하고, 촬영과 편집을 거쳐, 영화 개봉, 마케팅 활동까지. 어떤 단계가 가장 재미있나.
최아람:
가장 재미있는 건 투자가 확정되고, 크랭크 인을 앞뒀을 때. ‘아, 드디어 영화가 들어가는 구나!’ 신난다. 개봉을 앞둔 지금도 약간 재미있는 시기이긴 하다. 기대와 설렘이 있으니까. 물론 개봉을 해서 영화가 터지고, 냉장고에 있는 돔페리뇽을 깔 수 있게 되면 그것도 최고의 순간일 거다.
백승환: 상상캐스팅 놀이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웃음) 초고가 나온 날 너무 신나서 “캐스팅 누구 할까?” 하며 우리끼리 논다. “임수정? 하정우?” 그러면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말이다.(일동웃음)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때가 가장 즐겁다. 현장에 가는 것도 즐거운데, 즐기다보니 동시 녹음 기사님에게 자주 혼난다. 너무 떠든다고.(일동웃음)
양성민: 캐스팅과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하다보니까, 내 경우에는 두 개다. 캐스팅의 경우, 우리가 제안했던 배우에게서 작품을 하겠다는 응답을 받았을 때. 매니지먼트의 경우 내 배우가 어떤 작품을 너무 하고 싶어 하는데 그 작품 출연이 결정됐을 때. 그때 희열이 가장 크다.

Q. 여기까지 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백승환:
초반에는 선배님들이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던 것 같다.(웃음) CJ엔터에 있을 때는 어리기도 했고. 쇼박스 가서는 담당한 ‘관상’ ‘군도’ 등이 잘 됐는데, 그 와중에 나름 뿌듯했던 건 ‘내부자들’이다. 굉장히 ‘핫’해서 여러 투자사에서 관심을 보인 영화였다. 당시 제작사 대표님이 관련 정보를 잘 안 보여주려고 하셨다. 찾아가서 조르기도 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그걸 또 회사에서 좋게 봐 주셨고 결과까지 좋았다. 개인적으로 자신감을 얻는 계기였다. 빠른 퇴사를 결심하는데 힘을 받기도 했다. 개봉 전에 퇴사를 하는 바람에 ‘내부자들’ 크레딧에는 내 이름이 없다. 그래도 제작사 대표님이 ‘고마운 사람’에 이름을 넣어주셨다. 마음으로는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양성민: 나는 민수(공동대표)지. 민수가 아니었다면 매니지먼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을 거다. 함께 매니지먼트를 꿈꾼 게, 4년 전인가? 그게 현실이 된 셈이다.
최아람: 동료 제작자 형님 누나가 있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 때부터 봐왔던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와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 두 성공한 제작자를 오래 전부터 봐 왔던 입장에서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일을 하는데, 좋은 가이드를 정말 많이 해 주셨다.

Q. 그런 한재덕 대표의 ‘보안관’과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같은 시기에 경쟁한다.(웃음)
최아람:
그러니까. 진짜 친하고 잘 됐으면 하는 동종업계 동업자라도, 때론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것 같다. 곧 ‘임금님의 사건수첩’ OST 녹음을 위해 미국 워너 스튜디오에 가는데, 그것도 재덕이 형 영향을 좀 받은 거다. 그 형이 생긴 건 정말 사나이스러운데, 인상과 달리 음악 조예가 깊다. 늘 클래식음악전문 채널 93.1Mhz를 틀어놓곤 하는데, 그걸 보고 배운 거지. ‘임금님의 사건수첩’이 사극이긴 하지만 좀 세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 최초로 노조를 통한 정식 음악 녹음 계약이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백그림 백승환 대표(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최아람:
‘임금님의 사건수첩’ 다음으로 ‘삼도수사본부’라는 코믹물을 준비 중이다. 느와르 ‘브라더’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범시민(가제)’도 있다. 차곡차곡 하나씩 해 나가야지.
백승환: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감독과 차기작을 계획 중이다. 그리고 김성진이라는 신인감독과 함께 작품을 준비 중인데 엊그제 초고가 나왔다. 마음에 들어서 지금 격양돼 있는 상태다. 장률 감독님의 ‘좋은 날’(박해일, 문소리 주연)을 률필름과 공동 제작하는 계획도 잡혀있다. 그리고 작은 영화를 조금 더 해 보고 싶어서 지금 단편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3편 찍었다.
최아람: 제작비는 다 어디서 나니? 수익은?
백승환: 감독이랑 나랑 둘이서 낸다. 이래저래 하면 편 당 500-1000 만원 사이다. 수익은 고민 중이다. 장기적으로 옴니버스로 묶어서 할 계획도 있는데, 이건 일단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내게 좋은 연습도 되고. 장기적으로는 상업영화에 집중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아직은 형들과 달리 30대고 결혼도 안 했기에 조금 더 놀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양성민: 지금 회사에 배우가 6명이다. 4월에 좋은 배우가 조금 더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일단 바라는 건, 배우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것. 배우들이 각자가 원하는 작품에 캐스팅 돼서 즐거운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최아람: 그나저나, 오늘 인터뷰에서 건질 게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너무 ‘오프더레코드’를 남발해서.(실제로 이날 인터뷰는 기사화 하지 못하는 숨은 비화가 더 많았다.)
백승환: 음주인터뷰 했으면, 정말 난리 날 뻔했다.
양성민: 기사 제목이 ‘오프더레코드’ 되는 거 아닌가. ‘CJ 출신 세 남자와 오프더레코드!’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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