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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너의 이름을 지어주던 날
입력 2017-05-10 09:16   

▲사진=퍼스트런

“어쩐다니? 온종일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휴대전화 저쪽에서 들리는 부모님 목소리에 진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부모님이 애지중지 키우던 백구가 집을 나갔다. 전화를 받은 건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제야 식사를 시작하시는지 아버지는 웅얼거리며 사라진 녀석의 행방을 걱정했다.

“고리가 헐거워져서 빠졌나봐. 진즉에 목줄을 바꿔줬어야 했는데….”

사건은 2박 3일간 부모님이 집을 비웠을 때 일어났다. 남쪽 지방에 사는 여동생 내외를 만나러 나선 여행이었다. 작년부터 여행 삼아 다녀가시라고 유혹했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은 혼자 남아 있을 백구 녀석부터 걱정했다. 이웃집에서 돌봐준다고 해도 주인 마음만 할까. 그럼에도 딸과 사위의 마음을 계속 뿌리칠 수 없어 날이 풀리자 큰맘 먹고 짐을 꾸렸던 거다.

황망한 소식은 3일째 되던 아침에 전해졌다. 녀석을 부탁하고 온 이웃집에서 백구가 사라진 걸 발견한 것이다. 서둘러 떠난 부모님을 배웅하고, 여동생이 침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에 자식 노릇 좀 해보려던 건데, 자기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오빠, 양동이 찾을 수 있을까?”

부모님이 녀석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이다. 평생 소망이었던 귀촌 후, 집 안팎 정리를 마친 아버지는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워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유기견 입양 행사에 가기로 했는데, 인연은 따로 있었는지 이웃집 백구가 새끼를 낳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아지들이 젖을 뗄 무렵 부모님은 새끼들을 보러갔다. 주먹만 한 강아지 네 마리가 꼬물거리더란다. 어머니는 그중 가장 인물이 좋은 수컷 한 마리를 점찍으셨다. 그게 바로 녀석이었다.

부모님은 강아지에게 ‘양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을 이름에서 따온 단순한 이름이다. 아랫집으로 입양 간 양동이 여동생 이름은 ‘양순’이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들었다. 제 이름이 무엇으로 정해졌든 관심 없을 양동이는 새끼 강아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아장거리며 걷다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거나, 먹고 싸는 게 양동이의 하루 일과였다. 아버지는 그런 양동이가 귀여웠는지 연신 사진을 찍어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에게 전송하곤 했다. 나름의 육아일기였던 셈이다.

양동이는 귀촌 생활하는 부모님의 유일한 친구였다. 자식들이 함께하지 못한 부모님의 일상을 녀석이 곁에서 지켜줬다. 이른 아침이면 아버지와 함께 안개를 헤치고 숲으로 산책을 나갔고, 저녁이면 노을을 등지고 어머니가 갖다 주는 밥 한 그릇 앞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녀석이 천방지축 뛰어다닌다며 하소연하셨지만, 싫은 표정이 아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은 아들은 녀석의 근황(?)을 주제로 제법 대화도 나누었다. 양동이는 가족에게 그런 존재였다.

영화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의 주인공 ‘카나미’는 방송국 PD다. 이혼 후 카나미는 반려견 ‘나츠’와 둘이 지낸다. ‘나츠’는 ‘여름’이라는 뜻. 6월에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나츠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카나미는 나츠를 위해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다 선배 영화감독의 권유로 유기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카나미가 촬영하는 다큐멘터리의 시선을 따라 유기동물의 현실을 보여준다. 일주일 안에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안락사 되는 보호센터의 동물들, 오직 돈벌이를 위해 만든 개 사육장, 동일본대지진이 휩쓴 마을에 남겨진 주인 잃은 개와 고양이, 가축들. ‘찍는 건 제대로 보는 일’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카나미는 유기동물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며 비로소 마음에서 나츠를 떠나보내게 된다.

‘개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영화를 보며 양동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결국 양동이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부모님은 ‘혹시’하는 마음에 며칠이나 더 이웃 마을과 뒷산을 헤맸다고 한다.

낙심하고 계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았다. 집 앞에 놓인 텅 빈 양동이 집이 유난히 커 보였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집이다.

“내가 잘못했어. 이름표를 걸어줬어야 했는데…. 개 한 마리 사라지는 것도 이렇게 애달픈데, 자식 잃은 사람들은 어떨까 싶다.”

아버지의 시선은 녀석이 뛰어다니던 집 앞 길목에 내내 머물렀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 이웃 매월마을에 사는 믹스견 진돗개가 곧 새끼를 낳을 예정인데 그중 한 녀석을 부모님이 입양하기로 하셨단다. 데리고 오지도 않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강아지를 위해 두 분은 이름부터 지었다. 마을 이름을 딴 작명법을 그대로 적용해 ‘매월’마을에서 ‘5월’에 태어난 강아지라는 의미를 담아 ‘오월이’.

‘개에게 처음 이름을 지어준 날’의 카나미도 촬영 중 만난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는다. 그녀가 새 가족에게 붙여준 이름은 ‘봄’에 왔다는 뜻을 담아 ‘하루’다. 햇볕 좋은 오후, 카나미는 하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루랑 나도 좋은 짝꿍이 되자.”

하루와 카나미가 그런 것처럼 곧 태어날 오월이와 나의 부모님도 좋은 짝꿍으로 오래 함께하기를. 부모님이 오월이의 이름을 처음 불러준 날부터, 그들이 좋은 짝꿍이 되기를. 오월의 하늘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