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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거미는 왜 9년 만에 정규 음반을 냈나
입력 2017-06-07 08:30    수정 2017-06-07 09:51

▲가수 거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솔로 여가수에게 유독 가혹한 것이 음악 시장의 생태계라지만 가수 거미는 다르다. 장점이 뚜렷하고 대중이 선호하는 포인트 역시 명확했다. 각종 음악 예능은 그의 노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좋은 수단이고 OST는 접근성을 높여 인기를 얻기에 제격이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쉬운지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거미도 안다.

그런데, 왜, 거미는 막대한 노력과 비용을 요구하는 정규 음반을 택한 걸까. 무엇이 거미로 하여금 어려운 길을 걷게 만든 걸까. 거미는 ‘책임감’이라고 답했다. 15년차 가수로서의 책임감, 팬덤 위주의 소비 시장에서 살아남은 솔로 여가수로서의 책임감.

이런 질문은 어떨까. 실력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은 거미가 정규 음반을 내기까지 어째서 9년이란 시간이 걸렸을까. 정규 음반을 내는 것이 어쩌다 과감한 일이 된 걸까. 거미의 다섯 번째 음반 ‘스트로크’는 이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Q. 9년 만에 나온 정규 음반이다.
거미:
나도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웃음) 그동안 정규 음반을 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곡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국내 음악 시장의 소비 흐름이 점점 빨라지고 있지 않나. 정규 음반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데 수록곡들은 금세 묻힌다. 그게 안타까웠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 음반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거미:
올해 데뷔 15년 차다. 이 정도 경력을 가진 가수로서 내 색깔이 담긴 정규 음반을 내는 게 의무처럼 느껴졌다.

Q. 타이틀곡 소개를 부탁한다.
거미:
길이 프로듀싱을 맡은 영향인지 음반 전반적으로 힙합, 소울 쪽에 무게가 실렸다. 타이틀곡 ‘아이아이요’ 역시 장르적으로는 팝 발라드로 구분되지만 힙합 느낌이 섞여 있다. 많은 분들이 제목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데, 어르신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처럼 내가 꿈을 꿀 때 나오는 흥얼거림이 ‘아이아이요’다. 그동안 이별 노래, 사랑 노래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인생에 대한 노래를 많이 하고 싶다.

Q. 이별 노래에서 인생 노래로 관심이 옮겨가게 된 계기가 있나.
거미:
내가 어떤 노래에서 위로를 받았는지 생각해봤다. ‘모두 어려움을 겪고 살지만 희망을 갖고 헤쳐 나가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메시지의 노래를 들을 때 ‘이런 게 음악이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이별 노래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해주시기도 하고 이별 노래의 대명사로 나를 떠올려주심에 감사하다. 다만 나는 공연을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의 가슴 한편에 뭔가를 남겨주고 싶었다. 이별 노래만으로는 부족하더라. 더욱 많은 대중과 더욱 진실한 공감을 하고 싶어서 인생 얘기를 많이 담게 됐다.

▲가수 거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Q.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시도가 돋보인다.
거미:
히트곡 중에 발라드 장르의 노래가 많다. 더욱이 최근 OST 위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나를 발라드 가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음반 역시 발라드곡으로만 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Mnet ‘슈퍼스타K 2017’ 심사위원을 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소울풀한 노래가 많이 없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하려고 한 것이다. 그것이 과거 나의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주셨던 분들을 위한 길이고 또한 후배 가수들을 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Q. 혹시 이것이 트렌드를 따르기 위한 시도인가.
거미: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깊은 감성의 음악, 무거운 음악을 좋아하셨던 분들 중에는 ‘미안해요’(2008), ‘남자라서’(2010)처럼 가벼운 노래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곡이 내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미안해요’나 ‘남자라서’는 아직도 많이 찾아들어주시는 노래들이다. 한 쪽의 의견에 치우지지 않으려고 한다. 가수로서 책임감이기도 하다.

Q. 솔로 여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OST 혹은 음악 예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당신이 찾은 돌파구는 무엇인가.
거미:
나도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고 그러면서 슬럼프도 겪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되겠더라. 상황을 고민하고 원망하고 쫓아가려고 하다보면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설 수 있는 무대, 공연을 좀 더 많이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까 오히려 더 많은 분들이 나를 더 많이 알아주신다. 예전에는 마니아층의 팬들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공연 관람객의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하고 싶은 무대만 선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닌 문제 같다. 설 수 있는 무대는 다 찾아다니려고 한다.

Q. 여가수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있나.
거미:
있다. 안정적으로 발라드만 할 수도 있다. 그걸 원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렇지만 나는 다양한 음악을 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후배 가수들, 여러 음악을 원하는 대중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 음반을 듣고 ‘여가수가 이런 장르를 끌어갈 수 있구나’라고 한 획을 긋고 싶다. 동시에 듣는 분들을 품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래서 음반명을 ‘스트로크’(획을 긋다, 품다)라고 지었다.

▲가수 거미(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Q.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거미:
감정 전달이다. 진실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노래할 때는 나를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 노래할 때 내가 갖는 생각, 감성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Q. 이번 음반을 녹음할 때는 어땠나.
거미: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정형화된 생각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신인일 때 혹은 아마추어일 때의 느낌, 날 것의 상태인 감정과 표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잘 안 돼서 울기도 했다. 한 번은 프로듀서 길 오빠가 술을 마시고 녹음해보라고 조언해줬다. 그 곡이 음반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큰 배움이 됐을 것 같다.
거미:
겸손하지 않으려고 한 적은 없었는데 은연중에 ‘내가 베테랑이지 않나’ 생각한 적은 있었나보다. ‘음악은 끝이 없구나. 배운다고 해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의 위대함을 더욱 느꼈다. 더 많이 노력하고 경험해보고 시도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걸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비슷한 감성으로 비슷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Q.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하다.
거미:
내가 음악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노래 외에도 음악적으로 채울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곡을 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것 말이다. 그동안 창작보다 표현에 더 많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창작 쪽으로 더 노력해보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아티스트의 ‘진짜’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나. 마음을 더 비우고 더 많이 내려놓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