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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옥자’ 논란, 결국 쩐의 전쟁…배급사가 CJ였다면?
입력 2017-06-12 11:01    수정 2017-06-14 15:59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가 밑지는 건 없죠. 브랜드 홍보가 목적이었던 넷플릭스로서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멀티플렉스의 ‘옥자’ 보이콧 논란을 바라보는 모 영화인)

그렇다. 프레임을 다시 봐야 한다. ‘넷플릭스 vs 극장’의 구도로 여겨지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 극장 상영은 정확히 말하면 ‘배급사 NEW vs 멀티플렉스 극장’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통 플랫폼 VS 새로운 플랫폼’ 사이의 전쟁이다.

사연을 조금 더 면밀히 바라보기 위해 시간을 앞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에서 1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 공룡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원인 중 하나로 꼽힌 것이 바로, 로컬 맞춤형 콘텐츠의 부재. 그 와중에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과 손을 잡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연일까. 경제 논리가 우위를 점하는 시장에서 우연을 없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시장을 파고드는데 ‘돈이 되는’ 콘텐츠다. 국제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높은 감독이다. 즉 한국시장에서의 자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가입자를 유도하는 동시에, 세계무대에도 소위 ‘먹히는’ 콘텐츠를 만드는데 있어 봉준호는 넷플릭스에게 신의 한수로 여겨졌을 공산이 크다. 이것이 마침 거대 자본이 필요한 영화를 만들려는 봉준호의 니즈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돌연변이가 바로 ‘옥자’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결과적으로 ‘옥자’는 개봉도 하기 전에 넷플릭스가 봉준호를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을 어느 정도 이미 선물한 분위기다. ‘옥자’ 개봉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논란 하나하나가 그들 입장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혹여 ‘옥자’가 멀티플렉스를 통해 개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넷플릭스로서는 크게 잃을 게 없다. 어차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는 게 목적이었던 작품이다. 극장이 보이콧한다면, ‘옥자’가 궁금한 관객들은 넷플릭스를 찾을 게 자명하다. 넷플릭스의 입장이 여유 있어 보이는 이유다.

# 멀티플렉스, ‘배급시장 게임 룰’의 변화가 두려워

넷플릭스와 달리, 국내 극장들의 속사정은 보다 복잡하다. 넷플릭스의 주요 배급망은 스트리밍이다. 영화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다. ‘옥자’의 경우 변종이다. 공개와 동시에 한국 극장에서도 선보인다. 홀드백 기간(한 편의 영화가 극장 상영 뒤 IPTV와 케이블 등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최소 상영 기간)이 없다. ‘옥자’를 두고 CGV를 위시한 멀티플렉스들이 “영화산업 생태계와 유통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그런데 말은 좀 바로 하자. 좋게 말해서 생태계지, 결국 돈이다. 애당초 홀드백은 극장, 그리고 그들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이들의 수익을 위해 마련한 장치일 뿐 관객을 위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CGV 등 멀티플렉스는 독과점-단독개봉-교차 상영 등 이미 ‘영화계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평가 받은 지 오래다. ‘홀드백 기간’의 투명성 역시, 무너진 지 오래. 자사의 이익을 위해 홀드백 기간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한 전과는 이미 수두룩하다. CGV가 ‘옥자’ 개봉을 두고 내 세우고 있는 논리가 부실한 이유다.

그럼에도 멀티플렉스들이 ‘옥자’에 홀드백 논리를 드리우며 ‘불가’ 방침을 외치는 것은 결국 돈이다. 그들이 진짜 두려운 건 세계 최대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 영화 ‘옥자’가 촉발할지 모를 ‘배급시장 게임 룰’의 변화이니 말이다. ‘옥자’로 인해 지금의 룰이 깨질 경우, 극장들 입장에서는 제2의 ‘옥자’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선례의 힘은 무섭다. 넷플릭스 뿐 아니라, 아마존 등의 온라인 스트리밍 강자들이 이미 다양한 독점 콘텐츠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극장으로의 쏠림현상이 변화를 맞게 될 수 있는 분기점이다. 새로운 변화를 맞을 준비가 덜 된 멀티플렉스 입장에선 시간 벌기가 필요하다.

# ‘옥자’ 배급권 전쟁, 만약에

공식적으로는 쉬쉬하고 있지만, ‘옥자’ 국내 배급권을 두고 여러 배급사가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 것은 비공식적인 팩트다. ‘옥자’를 따내기 위해 각 배급사가 넷플릭스를 상대로 PPT 경쟁을 펼친 것도 어느 정도 알려진 일인데, NEW가 ‘옥자’ 배급사로 최종 낙찰됐을 때 CJ 내부는 거짓말 조금 보태 초상집 분위기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만약 NEW가 아닌 CJ가 ‘옥자’ 배급권을 가져갔다면 CJ계열인 CGV는 지금처럼 ‘옥자’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을까. 모를 일이다. 여기엔 또 다른 돈의 논리가 있으니.

현재 ‘옥자’를 받겠다고 선언한 극장은 대한극장, 서울극장, KU시네마트랩 등의 작은 영화관들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옥자’ 상영 여부를 묻는 관객들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관객 볼권리를 위해 ‘옥자’ 상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맞는 말인데, 반은 틀린 말이다. 관객 볼 권리를 위해서 ‘옥자’ 상영을 결정했다고 곧이곧대로 믿을 순진한 관객이 있을까. 결국 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티플렉스가 보이콧을 해 준다면 작은 극장주들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어쩌면 멀티플렉스가 없던 단관 시절, 그때 그 시절처럼 극장 앞에 줄을 선 관객들을 이번에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이번 논란은 작은 영화관들에 뜻하지 않은 수익을 안긴다. 이건 정말 ‘쩐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