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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역사 마침표, 미쓰에이가 남긴 흔적
입력 2017-12-27 17:53   

걸그룹 미쓰에이가 데뷔 7년 만에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2010년 6월 가수 조권이 자신의 SNS에 “JYP 뉴 페이스”라는 설명과 함께 3인조 미쓰에이(페이, 지아, 수지, 또 다른 멤버 민의 합류는 이후 알려졌다)의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들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팀 구성 때문에 선배 그룹 씨스타나 시크릿과 겹쳐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팀명이나 로고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오갔다. 하지만 미쓰에이가 이후 7년 간 써내려간 역사는 ‘많은 히트곡을 가진 아이돌 그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걸그룹 미쓰에이(사진=JYP엔터테인먼트)

◆ “넌 날 몰라. 그러니 멈춰.”

미쓰에이의 데뷔곡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의 뮤직비디오는 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우아한 음악에 맞춰 무용 연습을 하거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학생들을 뒤로 하고 검은 옷을 입은 미쓰에이가 지나간다. 남학생과 어깨를 부딪치고도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순종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숫제 불량해보이기까지 하다.

굳이 나누자면 ‘배드 걸 굿 걸’은 섹시 콘셉트에 가까운 노래다. 멤버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때로 바닥에 누워 춤을 춘다. 하지만 미쓰에이의 섹시 콘셉트는 섹스어필을 의도하지 않는다. 이들의 춤동작은 보이그룹의 그것만큼 진폭이 크고 절도 있으며, 노래는 맑고 여린 고음 대신 중저음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가사다.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기다는 ‘배드 걸 굿 걸’의 가사는 기만적인 잣대를 비웃음으로써 여성으로서의 자의식과 자존감을 곧추 세운다.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면서도 여성성에 대한 프레임에는 일격을 날린다. ‘배드 걸 굿 걸’은 잘 만든 팝송일 뿐 아니라 걸그룹이 시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곡이었다.

▲걸그룹 미쓰에이(사진='허쉬' MV)

◆ 물구나무서고 봉에 매달리고… 색다른 퍼포먼스

미쓰에이는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했다. 그들의 소포모어 음반 ‘브리드(Breathe)’는 레게와 힙합이 결합된 레게톤 장르를 내세워 독특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펑키한 안무를 도입한 퍼포먼스 또한 볼거리였다. 가슴과 어깨를 강조한 펌핑이나 물구나무 등은 기존 걸그룹에게 기대되는 퍼포먼스를 벗어난 동작으로 지평을 넓혔다.

2013년 발표한 ‘허쉬(Hush)’에서는 봉을 이용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었다. 과거 박진영이 제작한 솔로 가수 박지윤을 연상시키는 고혹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자극적인 동작이나 수위 높은 동작 대신, 곡을 주도하는 기타 연주로 긴장감을 주고 절정 직전 킥을 늦추는 방식으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안무는 힘 있고 유려하다. 덕분에 이 곡의 퍼포먼스는 노골적인 섹스어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성적 매력을 전시하기보다는 과시하는 쪽에 가깝게 보인다. 소녀 일색의 걸그룹 시장에서 미쓰에이의 존재가 특별했던 이유다.

▲걸그룹 미쓰에이(사진=JYP엔터테인먼트)

◆ ‘脫 JYP’로 거둔 성공

미쓰에이가 2015년 발표한 ‘다른 남자 말고 너’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외부 작곡가를 기용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로 기억된다. 프로듀싱그룹 블랙아이드필승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경쾌한 트랩 리듬과 키치한 선율로 금세 인기를 얻었다. 노래는 미쓰에이의 앞선 발표곡과 비교했을 때 훨씬 대중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보여준 멤버들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팀에 대한 접근성을 낮췄다.

이 곡이 발표된 2015년은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에게도 중요한 분기점이 된 시기였다. 소속 가수의 거의 모든 곡을 프로듀싱했던 박진영은 이즈음 회사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줄였다. 대신 퍼블리싱 시스템에 힘을 실어 외부 작곡가와 협업하거나 신인 작곡가를 양성했다. “처음에는 무지하게 당황했다”던 박진영이 새로운 시스템에 확신을 갖게 된 데에는 ‘다른 남자 말고 너’의 흥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 당시 자리 잡은 퍼블리싱 시스템은 훗날 후배 걸그룹 트와이스의 성공(트와이스 역시 대부분의 음반을 외부 작곡가와 작업했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