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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82년생 김지영’ 정유미, 계속되는 페미니즘 논란...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18-09-13 17:18   

▲정유미(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고전을 비롯해 유명한 책의 문제점은 읽지도 않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도 알고 줄거리도 알기 때문에 마치 정말 아는 듯한 착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정작 해당 책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 김지영’은 2016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이후엔 페미니즘 소설로 더 유명세를 탄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옆 사람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거 페미니즘 책 아냐?”라고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었냐고 물어봤을 때, 읽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82년생 김지영’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친정 엄마, 언니 등으로 빙의 된 증상을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성 김지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최근 여자 연예인들에게 페미니즘 ‘논란’을 선사했다. 앞서 그룹 레드벨벳 아이린, 소녀시대 수영 등이 이미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 한 이후 “페미니스트를 선언했다”고 주목받았다. 책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관을 판단하고 비난을 한다는 점이 마치 1980년대 사상 검증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가운데, 우선 이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여자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유재석, 방탄소년단 RM, 정치인 안철수, 고 노회찬 등 또한 이 책을 읽고 구체적으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논란’을 겪지 않았던 것이 주목할 만 하다.

(사진=네이버 영화 소개란 캡처)

이번엔 배우 정유미가 페미니스트로 몰렸다. ‘82년생 김지영’은 오는 2019년 상반기 영화로 만들어질 계획으로, 지난 12일 타이틀롤에 정유미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정유미가 캐스팅됐다는 보도자료가 나온지 반나절 만에 이 사실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이 영화는 현재 포털사이트에서 ‘보고싶어요’는 1738명, ‘글쎄요’는 1899명, 평점은 4.88을 벌써 기록하고 있다. 정유미의 인스타그램 역시 “개념이 어느 정돈지 알게 해주는 선택”이라는 둥 악플로 뒤덮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유미의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연 반대 및 영화화 반대 글이 올라와 있다. 13일 올라온 한 게시글의 제목은 “정유미 영화 82년생 김지연 출연 반대합니다”이다. 내용은 ”정유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 출연 확정 보고 놀랐습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알고나 출연하는 건지? 논란이 되고 있으면 이쯤 되면 출연을 없던 걸로 해야 됩니다. 팬이었는데 실망했습니다. 남자들 팬을 다 안티로 만들겠습니까?”라고 적혀있다. 영화 제목을 ’82년생 김지연‘이라고 말한 청원자가 작품의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했을 배우 정유미에게 ’어떤 내용인지 알고나 출연하는 건지?‘라고 묻는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과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토록 흥분하는 것일까. 일부 네티즌은 이 소설을 “비현실적인 판타지”이라고 폄하하면서 “너네가 원하는 건 남녀 평등이 아니라 역차별 조장이자 남성비하다”라고 주장했다. 정말 이 소설은 비현실적이고 남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을까. ‘82년생 김지영’은 그저 한 사람이 트라우마를 겪는 가운데, 상처의 바탕이 된 삶의 일부분을 덤덤히 털어놓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고, 여자들의 삶을 써놓은 책도 나쁜 것이고,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도 나쁘다는 프레임 속에 갇혀 무조건 “이런 영화는 안돼”라고 하지 말고, 우선 이 책을 읽은 이후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청원자는 이 영화를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성갈등을 조장”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이 이야기가 바깥으로 꺼내지는 것이 ‘소모적’이고 ‘성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남자 대 여자’ 구도로 논쟁을 벌여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존재가 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한쪽에게 현실적인 부분이 상대방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해결 방법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고 해서 ‘너네들이 언제 그랬냐’라고만 화를 낸다면 두 존재는 영원히 화합할 수가 없다.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서로를 인정하는 정도만 되더라도 우리 사회는 조금 더 평화롭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구분을 위한 구분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특히 정유미의 ‘82년생 김지영’ 출연을 반대하는 이들은 적어도 정유미가 연기할 김지영 캐릭터가 어떤 모습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김지영 캐릭터만 떼놓고 보면,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유미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역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나와 내 주변 누구라도 대입시킬 수 있을 만큼 평범하지만, 또 한편 결코 평범하다 치부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담담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 속 김지영은 폭발 한 번 없이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며, 일상의 한쪽을 그저 떼어온 듯한 현실을 그려낸다.

이런 김지영의 모습은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어떤 인물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온 배우 정유미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와 드라마 ‘연애의 발견’ 등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단박에 그려진다. 실제 그가 1983년생으로 김지영과 비슷한 나이대인 것도 장점이다. 일부 대중의 반응 때문에 자신과 잘 어울리는 캐릭터에 캐스팅된 배우가 이를 포기하는 사태로 확장되지는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