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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박열을 변호한 후세 다츠지 '일본 제국주의 규탄'
입력 2019-12-03 22:39    수정 2019-12-03 23:24

▲'역사저널 그날' (사진제공=KBS1)
'역사저널 그날'에 조선의 변호사이자, 조선의 벗 후세 다츠지의 자세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3일 방송된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천황 암살 미수범 박열을 변호한 일본인 후세 다츠지를 알아봤다.

1923년 9월, 일본 사회를 뒤흔든 재판이 열린다. 바로 '천황 암살 미수 사건'. 피고 박열과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 복장으로 나타나 조선어를 쓰며, 일제 법정을 조롱하는데…. 일본뿐 아니라 국제 여론까지 주목한 이 재판은 순식간에 일본 제국주의 규탄의 장으로 바뀐다. 그런데 이 모든 퍼포먼스를 총괄한 기획자는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츠지'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폭로하다!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재판정에 선 이유는, 일제의 민낯을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당국은 조선인이 관동대지진을 일으켰다며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군경을 동원해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을 무참히 학살한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심지어 박열을 대역 사건의 배후로 기소한다. 후세 다츠지는 일제의 계략을 간파하고 법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부당함과 야만성을 낱낱이 폭로하는데.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일본인을 대표해 사죄의 글을 신문에 실은 일본인 후세 다츠지. 일제의 숨은 양심, 후세 다쓰지의 삶을 들여다본다.

◆조선인 독립운동가 전담 일본인 변호사?

일제의 심장 도쿄에서 독립을 외친 ’2.8 독립선언‘ 조선인 유학생들. 일본 천황이 사는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김지섭과, 조선총독부 폭파를 위해 국내로 폭탄 밀반입을 시도한 김시현까지!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후세 다츠지‘가 이들의 변호를 맡았다는 것! 일제 검사의 무리한 기소와 ’사형‘ 구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감형을 받아낸 유능한 변호사, 후세 다츠지. 그가 일제 사법부에 맞서 펼친 변론 전략은?

◆청년 검사, 일제 검찰조직에 항명하다

명문대 법대 졸업과 동시에 검사 등용시험에 단번에 합격한 전형적인 엘리트, 후세 다츠지. 그런 그가 1년 반 만에 검사직을 박차고 나온다. 상부의 무리한 기소 명령과 검찰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 때문이었다. 맹수보다 잔인한 일제 검찰조직에 복종하는 대신, 돈과 명예를 버리고 양심과 정의의 길을 따른 청년 후세 다쓰지. 그의 신념을 바꾼 인생의 비밀을 알아본다.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후세 다츠지'.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라는 신조를 가슴에 새기고 평생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변호를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