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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정남 “욕심 버린 이유? 바닥을 쳐 봤으니까요”
입력 2017-05-18 08:00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반전이다. ‘멋이라는 걸 폭발’시켰던 배정남이 웃음을 투척하는 재간둥이일 줄이야. ‘보안관’에서 함께한 배우 이성민의 말마따나 배정남에겐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이라 아재 같은” 면모가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내내 생각했다. 안 좋은 쪽으로 튕겨나갈 수 있는 삶의 여러 요소들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끌어안은 캐릭터라고. 성장과정에서 껴안아야 했던 질긴 외로움. 흥미롭게도 그것은 배정남의 지금을 추동하는 힘인 것 같았다. “Sure. Why not!” 괜히 나온 말이 아닌 셈이다.

Q. 늘 사투리를 사용하시나요?
배정남:
네. 원래 그랬어요. 제 친구들은 다 알죠.

Q. 그럼에도 표준어를 써야 할 자리가 있었을 텐데요.
배정남:
이전에는 인터뷰 할 때 많이 썼어요.

Q. 어떻게요? 한 번 부탁드려요…
배정남:
(표준어로) 어떤 걸 바라죠?(일동웃음)

Q. 간지럽네요.
배정남:
그것 봐요. 느끼하잖아요.(웃음)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하면 진실이 잘 안 나와요. 의식하게 되니까 제가 아닌 모습이 나오죠.

Q.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때 ‘멋이라는 걸 폭발’시켰던 배정남은 전국 곳곳에 웃음을 투척할 줄이야.
배정남:
어릴 때는 신비주의가 있었어요. 괜히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거죠. 허세도 심했던 것 같고요. 인생을 살아보니 그런 게 전혀 필요 없더라고요. 원래 제 모습대로 사람들을 만나니까 너무 좋아요.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지금은 외부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배정남:
그럼요! 안 쓴지 오래 됐습니다.

Q. 굉장히 확고하게 이야기하시네요. 언제부터 스스로에게 편해진 건가요?
배정남:
30대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산전수전 많이 겪었어요. 사기꾼도 많이 만났고요. 모델로 사랑도 받아보고 풍파도 겪으면서 어느 순간 ‘그냥 있는 대로 살자!’가 된 거죠. 가식을 싫어하는 제가 가식으로 살고 있는 것도 싫었고요.

Q. 지금의 여유는 시간이 안긴 선물 같기도 하네요. 풍파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배정남:
20대 중반, 제가 모델로 조금 잘 나가고 있을 때 한일합작 드라마 주연 제안을 받았어요. 신인에겐 파격이었죠. 격투기 선수 역할이었는데, 6개월을 매달려서 몸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촬영 2주를 앞두고 엎어졌어요. 마침 그때 믿었던 매니저 형에게 사기를 당했어요.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죠. 생각해 보면 그때 성공하지 못한 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에 잘나갔다면 어깨 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을 거예요. 그때 안 된 게 저에겐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해요.

Q. 낙동강 오리알 시절, 스스로를 지탱한 힘은 뭔가요.
배정남:
형님들이요. 제가 드라마 주인공을 따내자마자 고향(부산) 형님들을 불렀어요. 형님들에게 스타일리스와 로드매니저를 맡기려 했죠. 꿈꾸던 일이거든요. ‘내가 잘 되면 꼭 형들을 불러서 함께 커야지’하는 꿈이요. 그런데 드라마가 갑자기 무너졌잖아요? 형님들은 이미 저를 믿고 상경한 상태였고. 책임을 져야죠. 정신을 바짝 차리자 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쇼핑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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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쇼핑몰 ‘레이건’ 말씀이시죠? 당시 그 쇼핑몰이 상당히 잘 됐습니다.
배정남:
잘 됐죠. 그런데 성공할수록 제 꿈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서울에 올라온 이유를 생각하게 됐죠. 이러려고 올라온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죠.

# 외로웠던 어린 시절, 보상 받고 있는 느낌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시체가 돌아왔다’로 스크린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베를린’에 출연했는데, 두 작품 출연엔 배우 류승범의 추천이 있었죠. ‘마스터’ 출연의 경우 강동원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요.
배정남:
그래도 오디션은 봤어요. 못하면 잘리는 건 당연한 거였죠. 형님들이 추천해 준 작품이기에 제 딴에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적어도 제가 못해서 형님들이 욕먹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Q. ‘보안관’의 경우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캐스팅 된 경우잖아요? 비중도 상당한데,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재미가 컸을 것 같아요.
배정남:
아우~ 감개무량했죠. 이전에는 VIP 시사회에 지인들을 초대해도 민망했어요. 대사도 없고 출연분량도 적으니까. ‘보안관’은 이제까지 출연한 영화중에 가장 큰 역할이에요. 시사회에 온 지인들이 다들 좋아해주니까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자세히 보시면 영화 초반과 마지막 연기가 많이 달라요. 형님들이 코치를 해 준 덕분이죠.

Q. 춘모 캐릭터를 받고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배정남:
일단 살을 찌웠어요. 7-8kg 정도 늘렸죠. 쫄티를 부각시키려고, 가슴 운동도 많이 했어요. 무식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의상에 있어서는 정말 촌스럽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통 큰’ 바지를 입고, 휴게소에서 발견한 벨트를 착용했죠. 그럼에도 저에겐 춘모가 ‘노멀’하게 다가와요. 제가 2012년에 ‘가면무도회’라는 단편을 찍었는데, 그 영화에서의 캐릭터가 상당히 세거든요.

Q. 미장센단편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말씀이죠?
배정남:
네.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장을 하고 트렌스젠더 클럽에서 몸을 파는 접대부 역할을 했어요. 보셨어요? 안 보셨으면 제가 인터뷰 끝나고 바로 링크 보내드릴게요. 유튜브로 볼 수 있거든요.(웃음) 그걸 보시면 춘모 역할이 ‘노멀’하다고 느끼실 거예요. 그걸 안 했다면, 이번에 제대로 망가지지 못했을 것 같아요.

Q. ‘보안관’ 출연 전에도, 배우로 끝까지 갈 생각이 있었던 건가요?
배정남:
그럼요! 그래도 욕심은 안 냈어요. 천천히 가자, 했죠.

Q. 지금은요?
배정남:
지금도요. 제가 여러 경험을 해 봤잖아요? 빨리 간다고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어릴 때는 급했어요. ‘빨리 성공해야지. 빨리 빨리 해야지’ 했어요. 그걸 버린 순간 마음이 편해졌죠.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그런 마음을 쉽게 버릴 수 있나요?
배정남:
바닥을 쳐 봤으니까요. 한 때 광고도 많이 찍고 잘 나갔어요. 추락한 한 순간이더라고요. 그 경험이 저에겐 좋은 계기가 된 거죠.

Q.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배정남:
네.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나 그렇지, 겪어 봤으니까요.

Q. 인기를 한 번 맛봤기에, 그걸 잊지 못해서 오히려 욕심내는 사람도 많거든요.
배정남:
그랬다면 제가 다른 길을 걸었겠죠. 몸에 안 맞는 것도 이것저것 막 했을 테고요.

Q. 20대 때는 왜 그렇게 빨리 성공하고 싶었나요.
배정남:
어릴 때 너무 없이 살아서요. 생계가 안 될 정도요.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할머니 손에 컸어요. 초등학교 때는 큰 이모-작은 이모 집을 전전했죠. 중간에 아빠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몇 년 함께 살긴 했는데, 안 맞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실질적으로 혼자 살았어요. 다락방 같은 곳에서요. 그런 생활이 자립심을 안겨줬어요.

Q.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삶이 안 좋은 쪽으로 튕겨 나갈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요.
배정남:
할매 사랑 때문에 바르게 컸어요. 제가 23살 때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사고를 엄청 쳤을 겁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내가 사고를 당해도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저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있었죠.

Q. 짠하군요. 다락방에 있을 때 배정남이 바라보는 세상과 지금 배정남이 바라보는 세상은 달라요?
배정남:
다르죠. 그때는 ‘왜 나는 혼자일까’ 많이 외로웠어요. 제가 그때 가장 부러웠던 게 엄마가 차려준 아침 밥 먹는 아이들. 중학교 때 친구들 집에서 많이 잤어요. 아침이 되면 소리가 들려요. “OO야, 일어나서 밥 먹어라” 내색은 안 했지만, 그게 너무 부러웠죠.

Q. 외로움이 인생의 동력인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지금도 외롭나요?
배정남:
지금은 개(애견 ‘벨’)도 있고, 좋은 친구와 형들도 많아요. 연락하면 달려 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아요.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상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지금은 행복합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그게 재산이죠. 아무리 잘 나가도 사람이 없으면 외롭잖아요?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배정남:
장점이자 단점인데, 가끔 너무 생각 없이 했다가 형님들에게 혼나요.(웃음) 편하게 이야기 하는 걸 좋다고 하시기도 하지만요.(웃음) ‘라디오 스타’의 경우가 그렇죠. 또 하나의 단점은 체력이요. 요즘 부쩍 달리네요. 하하.

Q. ‘라디오스타’의 경우, 정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서 터진 경우입니다.
배정남:
그러니까요, 이게, 참. 출연하기 전에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물어뜯길까봐.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 스스로를 조금 더 깼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저를 웃으면서 봐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내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 빈티지 선구자? 그 뒤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

Q. 과거 한 인터뷰에서 “20대 때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입었다면, 30대가 되니 소통하기 위해 옷을 입는다”고 하셨더라고요.
배정남:
제가 그런 멋진 말을요? 잘 풀어주신 게 아닌지. 하하. 그런 건 있죠. 제가 외국에 나가서 옷으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멋진 사람을 보면 친해지고 싶은 게 있거든요. 특히 옷 입은 것만 봐도 상대라 어떤 사람인지 보이잖아요? 그래서 외국 나갈 때, 옷으로 제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했었죠.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 나라마다 많아요.

Q. 그렇다면 배정남에게 옷은 소통이 맞네요.
배정남:
그렇네요. “너 옷 멋지다” “땡큐” “그럼 우리 함께 놀래?” “슈어! 와이 낫” 이러면서 친해진 거죠.(일동 웃음) 제가 외국에 가면 친구들이 재미있는 곳을 많이 데려가 줘요. 저 역시 외국 친구들이 오면 관광지가 아닌 흥미로운 곳을 소개해 주고요. 그게 더 재미있잖아요.

Q. 영어를 잘 하시나 봐요.
배정남:
조금이요. 안 되면 번역기 보면 되고요.(웃음)

Q. 긍정적이네요.
배정남:
저는 친구를 잘 사귀는 편이에요. 벽을 잘 안 두는 편이죠.

Q. 그럼에도 ‘이런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게 있다면요?
배정남:
‘사짜’ 냄새 나는 사람! 말해 보면 않죠.

▲배정남(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그런데 여러 번 당했잖아요?
배정남:
당해보니까 아는 거죠.(웃음) 외롭게 자라다보니 조금만 잘 해 줘도 마음을 다 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속고, 믿었다가 또 속고…이젠 내공이 생긴 거죠.

Q. 배정남을 흔히 ‘빈티지 패션의 선구자’라고 하잖아요? 스스로가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생각하나요?
배정남:
네. 중학교 때였나? 옷을 너무 사고 있은데 돈은 없고. 그런데 되게 싼 옷이 있더라고요. ‘이게, 뭐지?’ 봤더니, 빈티지에요. 일반 옷의 5분의 1 가격 밖에 안하는. 그때부터 빈티지를 입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싸니까. 그런데 또 입다보니 그 희소성이 참 좋더라고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 있는 옷이잖아요? 남들과 똑같은 옷은 입기 싫었던 저에게 딱이었죠. 당시 외국에서는 빈티지가 굉장히 인기였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빈티지 문화라는 게 없었기에, 제가 빈티지를 입고 있으면 다들 ‘거렁뱅이’로 쳐다보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 둘 빈티지를 입기 시작하더라고요.

Q. 배우로서는 어때요? 배우로서도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보시나요?
배정남:
그럼요. 선배들이 사투리를 다 뚫어놓으셨잖아요? 이젠 경상도 배우들에 대한 거부감이 이전보다 적어요. 감사한 일이죠.

Q. 배정남의 지금을 규정할 수 있는 룩이 있을까요?
배정남:
지금이요? 요즘은 한복! 한복 바지, 너무 좋아요.

Q. 내일 할리우드 유명 감독과의 미팅이 있다고 가정해 봐요. 어떤 옷을 입으시겠어요?
배정남:
한복 바지에, 니트와 재킷, 거기에 운동화를 믹스매치 할 것 같네요. 패션은 요리와 같다고 생각해요.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적절하게 믹스하지 못하면 맛이 없는 요리처럼 패션도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연기요? 연기는 지금 배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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