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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썰] 조승욱CP “세분화되는 시장, 결국 필요한 건 자신만의 특기”
입력 2017-09-26 08:30   

(사진=JTBC 제공)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 · 문화 이야기.

지상파 독과점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가 왔다. 케이블 채널과 종합편성채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지상파를 위협했고, 웹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까지 시장에서 지분을 늘리며 방송가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방송을 만드는 PD 역시 이 각축전에 몸을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로는 프로그램의 유명세보다 PD 개인의 인지도가 커지는 경우도 목격된다. ‘스타 PD’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 같은 무한 경쟁 속에서 외도 아닌 외도로 TV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재능을 보여 주고 있는 PD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JTBC 조승욱 CP다. 그는 KBS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을 연출했고, JTBC로 이적한 후에는 ‘히든싱어’, ‘힙합의 민족’, ‘팬텀싱어’를 연이어 히트시킨 ‘스타 PD’다. 그는 최근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강승원의 노래들로 채워진 주크박스 뮤지컬 ‘서른즈음에’의 연출자로 변신했다.

(사진=JTBC 제공)

“사실 뮤지컬 연출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지난 1997년 입사했을 때 KBS2 ‘이소라의 프로포즈’ 조연출을 맡게 됐는데, 당시 음악감독이었던 강승원 선배와 처음 만나게 됐죠.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분을 쌓아 왔어요. 음악하는 지인들 사이에서 ‘강승원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에그플랜트 문대현 대표가 판을 깔아 줬죠. 제가 기획안을 받아 보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도발했더니, 맡겨 주시더라고요.(웃음)”

그렇게 강승원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선봉에 서게 된 조승욱 CP는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기획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방송국, 주말에는 뮤지컬 회의를 하며 쉴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냈다. PD가 된 지 20년이 넘은 베테랑이지만, 뮤지컬 연출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했던 시간들이었다.

“방송 연출과 뮤지컬 연출은 정말 달라요. 방송이 카메라로 보는 광경이라면 뮤지컬은 관객들의 눈에 비치는 무대죠. 뮤지컬은 편집도 후반 작업도 할 수 없어서 함께 연출을 맡은 감독께 배우고 있어요.”

‘서른즈음에’는 출구 없는 현실 속을 살아가는 중년의 주인공에게 인생 중 한 부분을 다시 쓸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그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특성 때문에 노래와 이야기가 제대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뮤지컬 연출이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 중인 조승욱 CP의 방송들을 톺아 보면 ‘재조명’이라는 코드가 발견된다. ‘히든싱어’ 시리즈에서는 모창 가수들의 진정성을, ‘팬텀싱어’ 시리즈로는 크로스오버 장르의 매력을 발굴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에 ‘일부러’는 없었다. 방송 소재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에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 뿐이었다. 이렇게 쌓아 올린 예능 경험치들은 뮤지컬을 연출하는 데도 큰 힘이었다.

“뮤지컬을 하면서 ‘팬텀싱어’에서 맺었던 인연들이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팬텀싱어’ 시즌1에 출연했던 백형훈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했고요. 연출적인 부분에서 방송과 뮤지컬의 형식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그 동안 해 왔던 것도 무대에서 어떤 노래를 표현하는 방법들이었기 때문에 참고가 됐죠.”

JTBC도 조승욱 CP를 막지 않았다. 그는 ‘연출자로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흔쾌히 뮤지컬 연출을 허용한 회사 측과 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피 튀기는 방송가에서 이러한 멀티테이너들의 등장이 어쩌면 필수적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조승욱 CP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꿈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 도전도 좋지만 그에 앞서 필요한 건 자신만의 장기인 것 같아요. 요즘은 대중의 취향도 그렇고, 어떤 분야든 세분화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러려면 PD로서 본업을 잘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조승욱 CP는 그러면서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콘텐츠를 보여 주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한 방송가에서 중요한 것은 ‘특기’라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생각의 경계를 없애고, 사고 방식과 접근법을 다각도로 펼쳐나갈 수 있어야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라는 것이 조승욱 CP의 설명이다. 이는 ‘다양한’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그의 예능 철학과도 같은 맥락이 틀림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