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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콘] 방탄소년단 “걱정하지 마.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입력 2017-12-10 19:46   

▲그룹 방탄소년단(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그룹 방탄소년단의 슈가는 어린 시절 집안 한 켠에 있던 갈색 피아노를 동경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피아노를 어루만지고 건반 위를 거닐었다. 만지면 기분이 좋아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때 울고 웃는 슈가를 지켜본 것도 갈색 피아노였고 박살 난 어깨, 절망에 빠져 있던 그를 부여 잡아 일으켜 세운 것도 갈색 피아노였다. 슈가는 이 피아노를 ‘첫 사랑’(‘First Love’, 2016)이라고 불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하게 된 RM은 한 때 영문 모를 미움을 견뎌내야 했었다. 데뷔 초 나갔던 한 힙합 프로그램 공개 방송에서는 함께 출연한 래퍼로부터 면전에 대고 비난을 들어야 했고, 자신보다 늦게 데뷔한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디스를 당한 일도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나를 향한 좋고 싫음” 속에서 RM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I Wish I Could love myself)”(‘리플렉션’, 2016) 바랐다.

10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단독 콘서트 ‘윙스 투어 더 파이널(WINGS TOUR THE FINAL)’. 당초 예고했던 대로 이날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 발표했던 노래부터 가장 최신곡인 ‘DNA’까지 25개에 달하는 노래를 들고 나와 팬들을 만났다. 2만 여 개의 좌석은 빈틈없이 채워졌다.

▲그룹 방탄소년단(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은 자신이 마주했던 “무관심과 조소의 사막”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혼란하고 외롭고 당황해 하던 시간을 방탄소년단은 보태거나 빼지 않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성공을 돋보이게 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는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그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최근 리믹스 버전으로 발매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에서 28위까지 올랐던 ‘마이크 드롭(MIC DROP)’이 첫 곡으로 선곡됐다. 방탄소년단은 이 노래의 가사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던 설움과 화를 분출해내려 했지만, 스스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더 이상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과거의 일들은 비록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지언정 방탄소년단을 분노나 서러움에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방탄소년단이 깨뜨린 하나의 세계. 문득, 낡은 것을 끊어낸 방탄소년단이 새로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첫 여정에 이번 공연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굉장히 정교”하고 “어마어마”하다고 극찬한 ‘DNA’의 군무나 ‘고민보다 GO’의 재치, ‘상남자’ ‘데인저(Danger)’, ‘불타오르네’, ‘런(Run)’ 등의 화려함은 분명 놀랄 만한 것이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드럼과 때론 터프하게 때론 멜랑콜리하게 울어 대던 기타 연주는 듣는 재미를 높였다. 하지만 가장 깊은 자국을 남긴 건 멤버들의 개인 무대였다. 멤버들은 정규 2집 ‘윙스(WINGS)’에 수록된 솔로곡을 개인 무대 위에 펼쳐 놓았다. 멤버들을 만나 자신이 완성됐다는 막내 정국의 고백(‘비긴’)부터 몰래 숨겨둔 두려움과 그럼에도 밀려오는 욕심을 노래한 맏형 진(‘어웨이크’)까지 일곱 멤버 모두 자신의 얘기를 노래로써 들려줬다.

▲그룹 방탄소년단(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앙코르 첫 곡으로는 ‘유 네버 워크 얼론(You Never Walk Alone)’과 ‘윙스(Wings)’가 각각 선곡됐다. 앞선 솔로곡이 멤버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는 노래들이라면 ‘유 네버 워크 얼론’과 ‘윙스’는 스스로를 곧추 세운 방탄소년단이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품에 안는 노래다. 물리적인 장소를 초월한 어느 지점에서 방탄소년단과 관객들이 깊고 진한 접점을 찍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이날 RM은 ‘봄날’의 가사 “여긴 온통 겨울 뿐”을 “저긴 온통 겨울 뿐”으로 바꿔 불렀다. 그들은 이미 겨울을 뚫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본 싱어(Born Singer)’를 부를 때에는 “내 꿈은 랩스타가 되는 거”라던 가사 대신 “내 꿈은 내가 되는 거”라고 했다. 팬들은 방탄소년단을 연호할 때 예명이 아닌 본명을 외쳤다. 방탄소년단의 꿈은 지금 여기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서사가, 팬들의 함성이 한 목소리로 서로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DNA’ 중)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