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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결산] 다사다난 MBC, 두루뭉술 KBS, 잠잠한 SBS
입력 2017-12-18 08:18   

▲KBS 총파업 출정식(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우여곡절 많았던 한해다. 방송가를 뜨겁게 달군 파업에 예능도, 드라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까스로 분열이 봉합된 MBC와 아직까지도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KBS, 파업은 없었지만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 SBS가 저마다의 한해를 마치고 있다. 이들이 지나온 2017년을 되짚어봤다.

◇아직 갈 길이 먼 KBS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지난 9월 4일 출정식을 열고 제작 거부 및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고대영 사장 이하 이사진을 ‘적폐’라 일컬으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외주 제작 위주로 돌아가던 드라마국은 편성돼 있던 프로그램들을 순차적으로 방송할 수 있었으나, 예능국의 업무는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간부급 PD들이 급한 불을 꺼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제1노조인 KBS노동조합도 총파업에 참여하며 주요 프로그램들이 결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함께 총파업을 시작한 MBC가 김장겸 사장 해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동안 KBS의 고대영 사장은 퇴진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사진의 사퇴와 비리 적발이 이어지며 고대영 체제가 오래 가지는 못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달 23일 KBS노동조합이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파업을 중단했다는 변수도 생겼다. 새노조에 비해 인원은 적으나 교섭대표인 KBS노동조합은 지난 2012년 체결된 117개 조항의 기존 단체협약 가운데 12개 조항을 개정하기로 합의하며 업무에 복귀했다. 이에 새노조는 반발하며 파업을 이어갈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KBS의 총파업은 100일을 맞았다.

▲KBS 총파업 출정식(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다사다난 MBC, 다시 시청자 품으로

긴 시간 엠빙신이라는 오명 속에 살아야 했던 MBC가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될 준비를 마쳤다. 올해 9월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벌였던 MBC 조직원들은 마침내 김장겸 전 사장을 끌어내리고 해직됐던 최승호 전 PD를 새로운 사장으로 맞았다.

MBC의 비극은 2010년 김재철 전 사장이 부임하며 시작됐다. 김재철이 가니 안광한이 왔고 안광한이 가니 김장겸이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였다. 이들의 퇴직을 요구했던 MBC 조직원들은 해고되거나 부당 전보되거나 퇴사했다.

희망은 정권이 교체되며 싹텄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지난 정권의 언론 장악 계획이 파헤쳐졌다. MBC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폭로됐고 제작국을 대상으로 한 ‘보도 지침’이 알려졌다. MBC에 내린 검은 뿌리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9월 4일을 기점으로 비제작국 노조원까지 동참한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됐다. 파업에 찬성한 조합원들은 전체의 95%에 달했다. 김장겸 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암을 휘감았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지난달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안을 가결했다.

새로운 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는 국민들의 청원과 요구가 반영됐다. MBC의 리부트. 2012년 총 파업에 가담했다 해직된 최승호 전PD가 사장으로 임명됐다. 최승호 신임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사 교체였다. 아나운서국 신동호 전 국장은 평사원이, ‘뉴스데스크’ 배현진 앵커는 평기자가 됐다. 해직됐던 기자와 부당 전보된 아나운서, 정직 징계를 받았던 라디오PD가 새로운 임원으로 선출됐다. ‘PD수첩’과 ‘MBC스페셜’은 지난날의 MBC를 돌아보는 것으로 이달 12일과 14일 각각 방송을 재개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다시, 시작이다.

▲MBC 총파업 출정식 현장(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잠잠했던 SBS, 속에서 싹튼 변화

겉으로는 파업 없이 조용해보였던 SBS지만 속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이하 SBS 노조)는 방송의 공정성 및 독립성 강화를 위해 윤세영 SBS 회장의 소유와 경영의 완전분리를 촉구하고자 내부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는 윤 회장의 보도지침과 관련된 의혹에서 발현된 일이었다. 앞서 SBS 노조는 윤 회장이 ‘SBS 뉴스 혁신’이라는 문건을 통해 보도 방향 지시 및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적 보도 배제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클로징 멘트까지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의거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부당한 방송 통제 및 개입 방지 등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윤 회장은 9월 11일 SBS 회장직과 SBS미디어홀딩스 회장직에 대한 사의를 밝혔다. 이에 따라 SBS와 SBS노조는 윤 회장의 소유·경영 분리 선언을 실행하는 후속 조치에 합의했고, 국내 방송 역사상 최초로 편성·시사교양·보도의 최고책임자와 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 사장에 대해 임명동의제를 실시하게 됐다. 방송 및 보도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처사다.

이로부터 2달여가 지난 11월 30일, SBS는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사장 및 본부장 임명동의제 투표를 완료했고, 박정훈 사장과 전수진 편성실장, 남상문 시사교양본부장, 심석태 보도본부장 등은 SBS 구성원들로부터 80%를 훌쩍 넘는 임명 동의를 받았다. 각각의 임명 동의에 대한 투표 참여율은 사장 88%, 편성실장 96%, 시사교양본부장 83%, 보도본부장 93%였다. 타사가 파업으로 풍파를 겪는 동안 SBS는 공정 방송을 위한 기틀을 제대로 다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