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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하, 살 만한 인생
입력 2018-01-22 14:04   

▲가수 윤하(사진=C9엔터테인먼트)

가수 윤하는 요즘 살만 하다. 짜증스러운 일이나 화나는 일, 억울한 일은 전과 다름없이 많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 하나씩 끼어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행운을 발견할 때도 있고,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치유 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윤하는 매일을 감사하게 보내고 있다.

윤하는 지난해 12월 다섯 번째 정규음반 ‘레스큐(RescuE)’를 냈다.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11곡이 수록된 이 음반을 만드는 데 꼬박 5년 5개월이 걸렸다. “음반이 다섯 번 엎어져서 5집 인가 싶었”을 만큼, ‘레스큐’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윤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지를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음반과 동명의 곡인 ‘레스큐’에서 윤하는 “오직 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Only I can save my self)”라고 노래한다. “한국어로 말하는 게 쑥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영어로 가사를 썼다. 윤하는 이 곡을 통해 “네 스스로 빛나는 해가 될 필요는 없다. 빛을 반사하는 달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3년 전 윤하는 “깊은 암흑기”에 빠졌다. “계속 (음악을) 두드리는데 잘 열리지 않던 시기”였다. 모든 게 재미없게 느껴졌다. 노래도 거의 듣지 않았다. 윤하는 음악이 “꼴도 보기 싫었다”고 했다. 대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흑(黑)과 암(暗)으로 가득했던 시기. 하지만 윤하는 이때를 “꼭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슬럼프가 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죠. 저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어느 것이 진심이고 어느 것이 겉핥기식의 관계인지 구분하는 게 힘들었지 않나 싶어요. 10년 넘게 활동하며 쌓인 것들이 터지면서 ‘못하겠다. 쉬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가수 윤하(사진=C9엔터테인먼트)

암흑의 기운은 그루비룸을 필두로 한 프로듀서진을 만나면서 걷히기 시작했다.

윤하는 “그들에게 구조됐다”고 표현했다. “제 고민을 짚어내 저를 이끌어줬어요.” 흑인음악을 주로 만들어오던 그루비룸은 윤하와 독특한 시너지를 냈다. 윤하는 힙합-알엔비 풍의 트랙 위에 매끄러운 탑라인 멜로디를 얹어 불렀다. “앞으로도 낼 음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의 연장선이 될지, 아니면 과거로 회귀하게 될지. 아마 적절하게 섞이지 않을까요?”

윤하는 자신을 잠식했던 어둠을 노래 안에 풀어놨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 세상과 단절(‘에어플레인 모드’)하고 그를 아프게 했던 사랑으로부터 스스로 해방(‘종이비행기’)되기도 한다. 10번 트랙 ‘답을 찾지 못한 날’에 이르러 윤하는 비로소 묻는다. “이토록 모자란 난 어떤 쓸모일까.”

확실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좋은 에너지가 모여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지닌 사람이 돼 그것을 전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윤하는 “음반을 만들면서 주변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과 결국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아무도 날 책임져주지 않는 것이 야속했는데, 주변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저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하는 이 음반이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닿길 바란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이 힘든지 구체적으로 가사에 담으려고 했어요. 우울한 가사가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너만 느끼는 게 아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 또한 “‘멘탈’이 자주 ‘뽀개지는’ 유리 같은 사람”이지만, 음반을 통해 약함을 극복했다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기를 원했다.

▲가수 윤하(사진=C9엔터테인먼트)

“오늘 좋은 얘기를 많이 해놓고 싶어요. 힘들 때, 제가 만들었던 노래나 제가 했던 인터뷰를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그 때도 똑같이 걱정하고 힘들었을 텐데 밝게 당차게 얘기했던 걸 보면 기운이 나요. 미래의 나, 혹은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족적을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도 자신을 완전하게 집어삼킬 수 없음을 윤하는 안다. 3년 전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시끄럽고 술이나 먹으러 나와!”라는 답변이 유쾌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속에서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들끓는다. 윤하는 “연말 공연이 끝나고 다시 ‘작업 모드’에 착수했다”면서 “어떤 형식이 됐든 자주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귀띔했다.

발 내딛을 곳을 찾느라 5년 5개월이 걸렸다. 작가진 접촉부터 음반 속지를 고르는 일까지 직접 관여한 윤하는 앞으로 자신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레스큐’ 음반을 위해 만든 데모곡만 60여 개. 최근 자신이 폐기한 데모곡을 다시 듣고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했지?’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작업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많이 부딪히고 때론 욕도 먹고. 재밌게 활동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