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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드라마는 구형차, 액션은 슈퍼카
입력 2017-04-13 11:35    수정 2017-04-13 17:44

2001년 레이싱을 시작한 후, 튜닝의 튜닝을 거듭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시리즈.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은 할리우드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폴 워커 없는 첫 번째 시리즈이기도 하다.(3편 격인 ‘패스트 &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에도 폴 워커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엄밀히 말해 3편은 스핀오프에 가까웠다) 빈 디젤과 함께, 시리즈의 주요 엔진으로 기능했던 폴 워커의 공백에도 쾌속 질주는 가능할까.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은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팀의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던 도미닉(빈 디젤)이 팀원들을 배신하다니. 도미닉의 배신 뒤에는 첨단 테러 조직 리더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있다. 도미닉과 사이퍼를 잡기 위해 멤버들은 한 때 적이었던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덤)와 손을 잡는다.

‘분노의 질주’ 3부작(‘더 오리지널’ ‘언리미티드’ ‘더 맥시멈’)의 저스틴 린 대신 7편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 탑승한 제임스 완의 질주는 길지 않았다. 한 회 만에 제임스 완이 물러나고 8편엔 F. 게리 그레이 감독이 핸들을 잡았다. 감독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이력을 살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이탈리안 잡’에서 미니 쿠퍼로도 충분히 질주본능을 뽐낼 수 있음을 증명한 감독이니까. 그런 그에게 다양한 스포츠카로 중무장한 ‘분노의 질주’를 내어 준 건, 나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겠다는 전략이었을 게다. 다행히 F. 게리 그레이 감독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어떤 매력을 뽐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다. 이야기의 밀도와는 무관하게,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흥분제를 복용한 것처럼 내내 으르렁거린다. 근육을 풀어주는 유머는 덤이다.

뉴욕, 북극의 바렌츠 해, 아이슬란드, 쿠바 등을 미끄러지며 선보이는 폭풍 질주엔 아이디어가 엿보인다. 건물 주차장에 있던 차량들이 도심에 비처럼 쏟아지거나, 북극의 빙하에서 자동차가 거대 잠수함과 스피드 경쟁을 펼치는 식이다. 황당하다고? 이게 ‘분노의 질주’ 시리즈다. 감옥 탈주 신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탄듯한 액션이 리드미컬하게 연신 넘쳐흐른다.

폴 워커의 빈자리는 ‘매드맥스’의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의 합류로 막았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퍼는 사실 그리 입체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배우 자체가 내뿜는 카리스마가 캐릭터의 매력을 보완한다. 이번 편에서도 시리즈 특유의 ‘관계의 패턴화’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치고받고 싸우다가 종국에 ‘브라더’가 되는 현상이 이어진다. 적으로 만났던 도미닉과 브라이언(폴 워커)이 형제가 됐듯(1편), 도미닉을 추격하던 FBI 형사 홉스(드웨인 존슨)가 아군이 됐듯(6편), 이번엔 ‘더 세븐’의 악당인 데카드 쇼가 한 패거리가 돼서 의리의리한 팀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 ‘모든 적을 내 가족으로!’가 캐치플레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빈 디젤-드웨인 존슨-제이슨 스타뎀이라는 할리우드 대표 근육남들이 한 팀을 이뤄서 티격태격하는 걸 보는 건 사뭇 흥겨운 일이다. 근육으로 뭉친 현실적인 ‘어벤져스’ 팀 같달까.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 게 전혀 없다. 가족의 소중함을 쓸어 담으려다 보니, 비약이 심하다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데…뭐,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독창적인 이야기 때문에 찾는 관객은 별로 없을 테니까. 이야기 자체는 신파적이고 구식이지만, 현란하기 그지 않는 편집과 액션스타일로 오락영화로서의 복무를 다한다.

전작 ‘더 세븐’에서 폴 워커와의 이별을 감동적으로 보여줬던 ‘분노의 질주’는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폴 워커를 기억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애잔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라는 동력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