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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채수빈의 원동력 “연기가 점점 좋아져요”
입력 2017-05-27 11:41   

▲채수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속은 느낌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더니,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줄줄이 늘어놓는 채수빈을 보며 생각했다. ‘겁이 많다는 건 순 뻥 아니야?‘ 그래서 물었다. “겁나도 새로운 일 계속 할 거잖아요.” 그랬더니 채수빈, 아기 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답한다. “네. 그럴 것 같아요.”

데뷔 3년 차. 필모그래피는 쌓여갔고 호평이 늘어났다. 그사이 채수빈은 연기에 대한 고민과 부담을, 연기에 대한 욕심과 함께 키웠다. 높아진 기대치에 대한 부담,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걱정, 매번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야 하는 두려움. 가뜩이나 겁 많은 성격이라는데 매 작품이 도전이요 변신이어야 하는 연기가 오죽 힘들랴. 하지만 채수빈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기 그 자체에서 나온다. “연기로 받는 스트레스보다 연기로 얻는 행복이 더욱 커요.” 채수빈의 행보를 기쁘게 기대할 수 있는 명쾌한 이유가 생겼다.

Q. 작품이 끝난 게 실감이 나요?
채수빈:
아직요. 30부작이었는데도 짧게 느껴졌어요. 일주일에 6일을 가령이로 살았어요. 그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많았고요. 좋아요, 되게.

Q. 죽음 코앞까지 갔는데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채수빈:
사실 저는 해피엔딩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한테도 말씀을 안 드려서 ‘너 저러다 죽는 거 아니니?’라고 자주 궁금해 하셨어요.(웃음)

Q. 연기에 대한 호평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채수빈:
감독님에게 의지를 많이 했어요. 가령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가족 밑에서 자라서 어떻게 성격이 만들어졌는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께서 ‘그냥 와서 가령이인 채로 놀면 된다’고 하셨어요. ‘뱉어봐. 그냥 해봐. 뭔가 느껴지지?’ 이런 식으로요. (캐릭터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시면서도 그걸 제게 강요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제가 저절로 따라갈 수 있게 만드셨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가령이가 되어 있었어요. 칭찬을 해주실 땐 늘 감사한데 이번엔 그 마음이 배로 듭니다.

Q. 가장 기분 좋았던 반응은 뭐였어요?
채수빈:
가령이 때문에 울고 웃었다는 댓글이요.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어요. 댓글을 많이 보냐고요? 네. 자꾸 찾아보게 돼요.

Q. 댓글, 걸러서 봐야 해요. 이미 잘 알겠지만.
채수빈:
그렇지 않아도 제가 어떤 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안 좋은 일도 금방 까먹는 편이라 (악플을) 크게 마음에 담지 않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영향을 받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스스로 댓글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댓글을 보는 걸 줄여 나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채수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전작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에 이어 연달아 사극에 출연했어요. 당차고 씩씩한 캐릭터라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채수빈: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사극을 또 한다고?’ 하지만 작가님과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시놉시스도 좋았죠. 무엇보다 캐릭터가 좋았어요. 전형적이지 않고 매력적인 인물 같았거든요. 하연(‘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채수빈이 맡은 역)과 비슷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주변에서 있었어요. 하지만 하연이와 가령이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았어요. 하연이는 이기적인 성향이 있죠.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없는 아이에요. 반면 가령이는 헌신적이죠. 길동이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을만큼이요.

Q. 가령이의 매력은 무엇이던가요?
수빈: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계산을 하지 않아요. 내가 가진 패를 모두 보여주는 아이에요. ‘여기에서 너를 기다리겠다’는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용기도 매력적이고요. 저와는 반대에요. 저는 겁이 되게 많거든요.

Q. 겁이 많다는 건 새로운 걸 두려워한다는 의미에요?
채수빈:
네.

Q. 그런데 연기는 매번 새로운 작품, 캐릭터를 만나야 하는 일이잖아요.
채수빈:
그냥 연기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고요. 처음에는 정들었던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이며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게 힘들었는데, 사람들과 친해지고 역할을 입어가면서부터는 힘듦을 이겨내게 해주는 힘이 생겨요. 연기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연기를 하면서 얻는 행복이 더욱 커요.

Q. ‘역적’ OST ‘사랑이라고’를 직접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건 어땠어요.
채수빈:
‘다른 매력을 보여드려야지!’라는 생각으로 부른 건 아니고 이끌어주시는 대로 잘 따라갔어요. 노래 들어보셨어요? 좋죠? 처음에는 겁냈어요. 돈 드는 작업인데 괜히 녹음했다가 노래를 못 쓰게 되면 어떡해요. 그런데 김상중 선배님께서 배우로서 경험해볼 만하다고 조언해주셔서 용기 내 도전했어요. 좋은 경험이었는데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하면 또 겁낼 것 같아요.

Q. 그러면서도 (새로운 일을) 계속할 것 같은데?
채수빈:
네, 맞아요.(웃음)

Q. 녹음된 목소리를 듣는 건 어땠어요? 평소에 듣던 내 목소리랑 다르잖아요.
채수빈:
(함께 자리한 소속사 홍보팀 직원을 가리키며) 언니가 왜 이렇게 예쁜 척을 했냐고 하던데요? 흐흐.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그 노래가 나온 거예요. ‘어머, 알아보고 틀어주셨나봐’ 하면서 부끄러워했는데 그냥 순위에 있는 노래를 통째로 재생하신 모양이더라고요. 하하하.

▲채수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사랑스러운 캐릭터였지만 가령이로 살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어요?
채수빈:
원래는 가령이가 홍가네 식구들과 같이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빠졌어요. 무술 감독님에게 액션을 배웠는데 보여드리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요.

Q. 액션은 얼마나 배웠는데요?
채수빈:
자주 배우지는 못했는데 한 번 갔을 때 오래 연습했어요. 한 번 갔을 때 5시간? 4시간? (소속사 직원: 5시간은 뻥인 것 같은데…) 하하하. 아니에요. 그래도 3~4시간씩 4~5번은 간 것 같아요. 그래도 종방연 때 감독님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어요!

Q. 윤균상과 키스신은 어땠어요?
채수빈:
첫날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했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촬영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에 연극 ‘블랙버드’에서 조재현 선배님과 키스신을 했던 적이 있거든요. 심지어 제가 (조재현의 딸인) 조혜정 언니와 친분이 있어요. 호호. 선배님도 연습 때는 ‘얘랑은 진짜 못하겠다’고 하셨는데, 무대 위에서 은하와 레이로 만나니까 몰입이 되더라고요. ‘역적’에서도 그랬어요. 균상 오빠와 채수빈이 만나는 거라면 민망했겠지만 길동이와 가령이로 만나는 거니까 나중에는 몰입이 됐어요.

Q. 조재현 배우와 키스신을 연기한 것이 연극 ‘블랙버드’를 통해 얻은 파격이라면 ‘역적’을 통해 스스로 깨뜨린 게 있어요?
채수빈:
감정 몰입을 할 때 기복이 심한 편이었어요. 감정이 느껴질 땐 후욱 오는데, 그게 안 올 때는 애를 쓰고 써야지 겨우 집중이 될까 말까 하더라고요. 이게 제게는 늘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역적’에서는 현장에서 인물의 감정이 바로 와 닿을 때가 있었어요. ‘가령이는 이런 감정이고, 이런 상태야’라고 계산하지 않고요. 새로운 느낌을 많이 받았죠. 다음 작품에서도 이런 몰입이 당연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감독님 말씀으로는 이런 경험을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는 더욱 잘할 수 있을 거래요.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한 것 같아요.

Q. 차기작이 벌써 정해졌어요. ‘최강배달부’라는 작품인데 어떤 이유에서 선택했어요?
채수빈: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대본도 통통 튀고요. 재밌게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채수빈(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정식으로 데뷔한지 3년이 됐어요. 스스로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채수빈:
네. 제가 느끼기에는 제가 단계를 잘 밟아가는 것 같아요.

Q. 밟아가고 싶은 단계를 미리 계획하는 편이에요?
채수빈:
아니요.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것대로 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나는 저 역할을 맡아야지’라고 욕심내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단기적인 계획이요? 작품에 대한 것은 없고요. 좋은 컨디션으로 연기할 수 있게 체력 관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Q.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요?
채수빈:
힘든 부분은 늘 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연기를 하는 행복이 더 크고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자, 이제 힘든 게 뭔지 말씀드려야 하죠?(웃음) 작품을 하다 보면 제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계속해요 다른 캐릭터를 만나가는 행복은 있지만 거기에 비해서 제 시간이 없어서 ‘나를 잃어 가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과 걱정을 해요. 하지만 아직은 연기하는 행복이 커서…. 그렇지 않아도 ‘최강배달부’가 끝나면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에요.

Q. 연기에 대한 부담은 어때요? 이제 ‘신인’이라는 딱지도 슬슬 떨어질 테고 채수빈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도 점점 높아질 텐데.
채수빈:
부담은 커져요. 그동안은 저에 대한 기대치가 거의 없었으니까 많이 관대하게 봐주셨는데, 이제는 (허용되는) 틀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처음부터 만들어가야 하잖아요. 매번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는 기분이라 부담은 늘 있어요.

Q. 커지는 부담과 고민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건 뭐예요?
채수빈:
연기 자체가 점점 좋아져요. 연기를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 폭이나 인물에 대한 생각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게 제게는 부담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힘이 되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