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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악녀’ ‘불한당’, 한국적 누아르의 진화 혹은 미메시스
입력 2017-06-07 09:31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이 언론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막을 내리는 중이지만 해외 판매에선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는 8일엔 ‘악녀’(정병길 감독, NEW 배급)가 개봉된다. 전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과, 후자는 ‘킬 빌’과 각각 비교되는 누아르다.

두 작품은 한국형 누아르의 발전된 모델일까? 즉, 시뮬라시옹에 의한 시뮬라크르의 예술적 미메시스인가? 그게 아니라면 앞선 수작들의 저급한 레퍼런스에 불과한가?

‘불한당’이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이경영 전혜진 등 다섯 주인공들의 감정의 변화에 집중한 채 색감과 공간적 구조에 충실한 연출력을 앞세웠다면, ‘악녀’는 오롯이 김옥빈의 익스트림 액션을 전면에 배치한 롤플레잉 게임의 스타일에 전력질주 했다. 간단하게 말해 ‘불한당’은 누아르란 정체성의 감성이란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했고, ‘악녀’는 디지털적 감각에 치중했다.

그래서 ‘악녀’는 서사구조가 약하다는 태생적 핸디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옌벤 소녀 숙희(김옥빈)는 침대 밑에 숨어서 아버지가 누군가에 의해 안면골격이 처참하게 무너져 죽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 장천이 나타나 숙희를 잡아 짐승 같은 노인에게 매춘용으로 내던진다.

그 순간 중상(신하균)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국제범죄조직을 이끄는 중상은 숙희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무시무시한 킬러로 교육시킨다. 그렇게 성장한 숙희는 어느덧 중상과 사랑에 빠져 킬러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식을 올린 뒤 서울로 신혼여행을 온다.

하지만 첫날밤 중상은 부하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외출했다 안면골격이 심하게 손상된 시체로 되돌아온다. 모든 걸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땅이 꺼지는 절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중상의 조직에 침투해 와해시킨 뒤 탈출하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국정원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킬러 양성소. 숙희처럼 극단의 삶을 사는 여자들을 영입해 법으로 처단하기 곤란한 범죄인을 감쪽같이 죽이는 킬러로 길러내는 곳. 숙희는 처음엔 저항하지만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조직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수년 후 예쁜 소녀로 성장한 딸과 함께 출소해 국정원이 마련해준 서민 아파트에 정착해 낮에는 연극배우로, 밤에는 킬러로 살아간다.

이사 첫날부터 이웃집 남자 현수(성준)가 지나친 친절을 베푼다. 타고난 경계심으로 그를 멀리하지만 딸에게까지 자상한 그에게서 사랑을 느껴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식 날 숙희는 조직의 명령을 받고 드레스를 입은 채 원거리용 라이플을 꺼내든다. 그런데 망원렌즈 안에 잡힌 인물은 중상. 게다가 성준은 국정원 직원으로 자신의 감시자였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그녀는 또 다시 아버지를 잃었을 때처럼 세상엔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친구를 자처했던 주변 모든 인물이 적이라는 현실에 분노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낳은 딸의 아버지이자 자신을 키워주고 킬러로 성장시켜준 빌을 죽이러 다니는 브라이드(우마 서먼)처럼(‘킬 빌’) 세상을 향해 칼과 총을 든다.

‘킬 빌’ 역시 스토리는 단순하다. 브라이드는 킬러 조직의 우두머리 빌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조직에서 이탈해 시골로 도피한 채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때맞춰 나타난 빌과 킬러들에게 총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간신히 기사회생한 뒤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응징한다는 줄거리.

타란티노 특유의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잔인한 폭력의 미학과 곳곳에 포진된 유머감각이 충만한 B급 액션누아르의 절정이라는 데서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는다. 브라이드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명검을 만들어주는 이가 핫토리 한조(도쿠가와 이에야쓰 막부시대의 닌자)인데 그의 직업이 시골 식당 주인이란 유머가 돋보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부리는 종업원에게 번번이 핀잔을 듣거나 심지어 반항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브라이드가 도쿄의 야쿠자 조직을 통일한 무시무시한 오렌 이시(루시 리우)가 부리는 88명의 야쿠자들을 차례로 처치하는 장면에서 마지막 남은 야쿠자가 알고 보니 겁 많은 고교생이어서 그녀가 엉덩이를 때리며 혼내준다는 설정이 살벌한 검투신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악녀’에는 유머라곤 찾아볼 수 없이 시종일관 어두운 누아르 특유의 분위기가 일관된다. 마치 ‘서든 어택’을 보는 듯한 1인칭 시점의 인트로 액션 시퀀스부터 달리는 모터사이클과 마을버스 액션 등이 변별성을 갖춘다. 숙희가 실외기에 매달려 마지막 목표물을 제거한 뒤 바닥에 착지하는 장면은 ‘스파이더 맨’이다.

내용은 각자의 의의와 명분이라는 이기심이 한 평범한 사람을 어떻게 악마로 만드는가에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선 존재의 의의는 충분하다. 취약한 서사구조는 김옥빈의 맹활약이 덮어준다. ‘원더우먼’이 고뇌와 번민이 없는 긍정적 마인드에 때론 ‘단순무식’할 만큼 섹시할 따름인 캐릭터와 그에 안성맞춤인 갤 가돗의 활약 덕에 흥행에 성공한 것과 비교하면 애국심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악녀’가 속은 깊다.

최초의 여성인류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붙은 이름을 제목으로 한 뤽 베송의 ‘루시’가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SF에 가깝다. 허접한 남자친구 때문에 마피아 조직 두목 장(최민식)에게 붙잡힌 루시(스칼렛 요한슨)가 마약에 의해 의외로 잠자던 뇌의 능력치를 100%로 끌어올림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내용.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를 오마주하는 뉘앙스를 주는 서사구조는 한동안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던 ‘그랑 블루’의 연출자의 귀환을 알린다는 점에선 ‘악녀’보단 앞선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의외로 페미니즘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리언’과 ‘델마와 루이스’는 리들리 스캇이 얼마나 여권신장 혹은 여성옹호에 앞장서는 작가인지 웅변한다면 ‘악녀’는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외려 숙희를 비롯한 여성 킬러들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하는 국정원 여자 간부의 캐릭터는 상대적 우월성을 주창하는 비뚤어진 남성의 대표적 모델이다.

여성킬러 영화의 교과서인 뤽 베송의 ‘니키타’가 도덕성과 양심 그리고 사랑에 대한 고민의 서사를 앞세웠다면 ‘악녀’엔 악마가 돼가는 숙희의 세상에 대한 불신과 복수심만 빛난다. 숙희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지, 중상의 정체는 뭣인지, 현수의 진심은 어느 쪽인지 등의 미스터리 플롯은 흥미롭긴 하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불한당’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의 누아르를 기본으로 ‘무간도’ ‘프리즌’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등의 감옥액션, 조폭액션, 언더커버(위장잠입), 그리고 남자들의 진한 의리에 대한 철학 등이 담겨있다.

국제무역회사를 가장한 폭력조직의 2인자인 재호(설경구)와 그를 잡기 위해 감옥에 위장투입된 경찰 현수(임시완)의 우정인 듯 애정인 듯한 밀월관계(?)와 속고 속이는 듯한 심리전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주는 게 경쟁력이다.

아무래도 ‘신세계’와 ‘프리즌’이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점점 변해가는 현수의 정체성의 혼란과 이를 보고 의심을 키워가며 더욱더 심한 소모품으로 이용해먹는 경찰간부, 그리고 그런 현수의 정체를 알면서도 감싸주는 재호의 갈등은 사실 인류가 이룬 각종 사회구조에 만연된 혼란이고, 무질서와 대인관계의 파멸 등을 이끄는 흑마술이다.

‘악녀’와 ‘불한당’에서 앞선 여러 걸작들이 오버랩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 음악 미술 문학 등에서 오마주 레퍼런스 등은 불순한 의도만 배제된다면 용납되기 마련. 설령 약간이라도 순수를 가장한 음흉함이 깃들었을지라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나르시시즘적)리비도적 만족을 느낀다면 그건 작가적, 발전적 미메시스로 승화될 수 있다. 최첨단 시대에 완벽한 창작이 어디 그리 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