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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유승호 “연기, 싫지만 좋고 불편하지만 편해요”
입력 2017-07-25 14:44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배우 유승호는 다섯 살의 나이에 연기의 세계로 던져졌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선택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길, 아니 그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정해져있다시피 했다. 만인의 시선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연기를 그만둬도 평범한 인생이 허락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연기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를 알기에 유승호는 늘 치열하게 해낸다. 싫지만 좋고 불편하지만 편한 연기를.

Q. 드라마 인터뷰는 오랜만이죠.
유승호:
거의 처음 아닌가요? ‘리멤버’ 때는 안 했고 영화 ‘봉이 김선달’ 촬영한 뒤에 한 번하고. 네, 드라마 인터뷰는 처음인 것 같아요.

Q.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웃음)
유승호:
아뇨, 아뇨. 소현이랑 명수 형이 한다기에 ‘어이구, 나도 해야 하는 건가?’ 싶었어요. (일동 웃음)

Q. 드라마를 마친 기분은 어때요?
유승호:
처음에는 개운하고 시원할 줄 알았어요. 촬영이 힘들기도 했고 기간도 길었거든요. 그런데 끝나고 나니까 그립더라고요,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늘 선배님들과 연기하다가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들과 함께 하니 많이 친해졌어요.

Q. 선배들에게는 배움을 일방적으로 받는 입장이잖아요. 반면 또래 배우들끼리는 조언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상대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지켜보며 느낀 바는 없었나요.
유승호:
정확하게 어떻게 느꼈는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제가 달라질까요?(웃음)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Q. ‘사극’은 유승호의 주특기 중 하나입니다. ‘군주’ 준비는 어떻게 했어요?
유승호:
평소처럼 했어요. ‘군주’에서는 이선이란 캐릭터가 상황과 인물 덕분에 잘 그려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체 흐름에 제가 잘 타고 흘러갔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이선이 가은(김소현 분)이를 처음 만난 날, ‘너 정혼자 있어? 나랑 결혼할래?’라고 하잖아요. 이선이 얼마나 순수한 인물이면 그런 대사가 나오겠어요. 저도 저절로 청소년기의 순수함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성인 역으로 넘어간 뒤에는 편수회 대목(허준호 분)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가 나 때문에 죽는 일을 경험하게 되잖아요.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이선이 저절로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단단해진 세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보부상 두령 신분이지만 무사 같은 강인한 느낌도 내려고 했고요.

Q. 무사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해서인지, 왕 역할이었는데도 액션을 꽤 많이 소화했어요.
유승호:
찍다가 죽을 뻔했어요. 으하하하하. 감독님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니 감독님, 왕인데~! 보부상 세력 때는 그렇다 쳐도 왕이 된 후에도 직접 액션을 하는 게 어딨어요~’라고 얘기한 적도 있고요. 세자는 탁상공론을 통해 왕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고통을 느끼면서 커간 거예요. 그것이 백성의 입장에서 아픔을 이해하고 국정 운영을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Q. 감독님에게 ‘유승호의 외모로 액션을 하지 않는 건 얼굴 낭비’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유승호:
그냥 고생시키려고 그러신 것 같은데. 으하하하.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Q. 상대역 김소현 씨와의 멜로 연기는 어땠어요? 극중 키스신이 있었는데 소현 씨가 미성년자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유승호: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너 편한 대로”라고 했어요. 조심스럽기는 했죠. 키스라기보다는 입맞춤에 가까웠는데 예쁜 화면을 만들고 싶었어요. 몇 개 없는 멜로 장면 중 하나인데다가, 드라마 분위기가 워낙 무겁고 매일 우는 장면이 나왔으니까 예쁘게 알콩달콩하게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Q. 세자는 가은이 아버지의 죽음에 적잖은 영향을 줬어요. 하지만 가은이에게는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고요. 상황이 답답하지는 않았어요?
유승호:
답답하죠. 답답한데,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렇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미안해. 네 아버지, 나 때문에 돌아가셨어’라고 말하는 건 좀….(일동 웃음) 그래서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만 표현하면 편했을 텐데, 사랑에 더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요소가 얹어졌으니까요. 이를 테면 가은이 아버지 생각 때문에 잡고 싶었던 손도 못 잡게 되는 식이죠. 소현 씨나 저나 아직 그런 감정을 경험하거나 느끼기에는 어린 나이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Q. 대목 역을 맡은 허준호 배우와 호흡도 인상적이었어요.
유승호:
어휴, 무서워 죽겠습니다. 하하. 농담이고요 선배님께 굉장히 감동 받았어요. 제게 “내가 세 버리면 세자 네가 죽을 수 있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작품 전체가 산다”면서 “너 편한 대로 해. 내가 너에게 맞출게”라고 말씀해주셨어요. 1순위가 늘 저였죠. 너무 감사했습니다.

Q. 대목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목이 “너 같은 군주를 일찍 만났더라면”이라고 말하며 죽어가던 장면이요.
유승호:
왕으로서 미안한 감정이 컸어요. 선배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지만 그 카리스마에 압도당하기도 했고요. ‘대목과 관계에서 이런 엔딩이 아니었다면…’ 하는, 미안함이 컸어요.

Q. 승호 씨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유승호:
동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죽음을 각오한 채 대목에게 가서 편수회에 입단하겠다고 말한 장면이요. 가은이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방법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은이 또한 백성 중 한 명이잖아요. ‘나의 백성을 살리는 일에 내 목숨이 뭐가 아깝겠냐’는 세자의 생각을 잘 표현해준 장면인 것 같습니다.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Q.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수상한 파트너’와 경쟁했어요. 승호 씨는 로코 혹은 멜로를 해보고 싶은 마음 없어요?
유승호:
언젠가는 하겠지만 아직 자신이 많이 없어요. 슬프거나 진한 감정을 연기할 때는 즐겁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멜로는 그런 걸 느끼기가 힘들어요. 물론 할 수는 있겠죠. 대충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진심으로 느끼고 공감해서 연기를 하는 것과 흉내만 내서 하는 건 다르잖아요. 우선 (멜로 감정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전에 여배우와 얘기를 나누면서 친하게 지내고요.

Q. 감정을 더 많이 느끼려면 연애를 많이 해야겠네요.
유승호:
…많이 하겠습니다. 하하.

Q. 배우 유승호 말고 인간 유승호가 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유승호:
잘 모르겠어요. 배우에게 경험만큼 좋은 게 없는데, 정말 그렇다고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경험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잖아요. 보는 눈이 워낙 많기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연기 인생이 끝날 수도 있어서…

Q. 아니,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하려고 하기에!(웃음)
유승호:
무슨 상상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어느 순간부터 ‘스캔들’이라고 하는 것들에 거부감이 생기더라고요. 연애 기사가 왜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겨요. 물론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죠. ‘연예인인데, 그만큼 돈 많이 벌잖아요. 그러면 다 오픈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건 오픈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연애 기사는 기사에 난 연애 상대와 결혼까지 할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하지만 한 번 기사가 나면 사진이며 글이며 인터넷에 남는데, 그게 훗날 결혼할 사람과 아이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 되어버리잖아요. 시각의 차이인 것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그렇더라고요. 나오는 것들이.

Q.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오래 전부터 받았어요.
유승호:
네 맞아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니까요.

Q. 반대로 배우 혹은 연기란 유승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유승호:
남들이 가진 것과 똑같은 일상이 돼 버렸어요. 할 때는 힘든데 안 하면 하고 싶고 불안해지기도 해요. 묘해요. 싫지만 좋고, 불편하지만 편해요. 제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밉네요, 참.(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