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시우의 영감대] 당신 회사에도 ‘공범자들’이 산다
입력 2017-08-16 13:51    수정 2017-08-16 14:17

객관적 시선, 공정한 사고, 권력 감시, 진실을 알릴 의무…

펜을 든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권의 힘에, 회사 선배의 ‘갑질’에, 광고주라는 존재에…그러니까 권력에 의해 기자의 자질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망각되기도 한다. 저항했을 때 날아드는 것? 징계나 감봉, 혹은 능력과 무관한 곳으로의 인사다.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은 ‘권력’이 언론을 어떤 식으로 장악하고 ‘하수인’들이 그런 권력에 어떻게 빌붙었는가를 스펙터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 다큐의 진짜 성취는, 망가져가는 언론환경 속에서 이에 묵묵히 저항한 ‘언론인’들이 있었음을 기록했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공영방송(KBS-MBC)은 회생불가라고 판결을 내린 국민들에게 ‘공범자들’은 아직 희망의 촛불은 남아있다고, 모든 공영방송 구성원이 ‘기레기’는 아니라고, ‘공영’방송은 말 그대로 시청자인 당신들이 돌려받아야 할 자산이라고 집요한 취재와 상식을 빌어 묵직하게 말한다.

▲최승호 감독과 전 MBC 김재철

‘공범자들’은 기자 입장에서 특히나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에서 김민식 PD는 이런 말을 한다. “PD(기자)라는 직업은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회사는 끊임없이 ‘네가 아니라도 이 일을 할 사람은 많아’라는 말을 구성원들에게 주입시켰다.” 공영방송이 구성원을 판단한 기준은 한마디로 기자/PD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권력에 얼마나 충성했느냐로 저열하게 분리하고 인사에서 배제했다.

‘공범자들’을 보며 새삼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면, 이는 사실 많은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당인사, 꼬리 자르기, 편 가르기…이는 능력 없는 조직의 권력자가 자신의 ‘능력 없음’을 은폐하기 위해 꺼내는 하나의 술수다. 그런 조직은 결말은 뻔하다. 그리고 그런 권력자는 절대 존경받을 수 없다. ‘공범자들’을 보며 뜨거워진다면, 당신 회사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공범자들 덕분일 게다.

영화 ‘공범자들’에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 그 스스로가 공영방송 MBC의 내부자이자 피해자.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을 완벽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뜨거운 감정을 자아내는 듯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이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달려가 마이크를 뽑아드는 최승호 감독의 모습은 ‘자백’(2016)에 이어 이번에도 강렬하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와 MBC 김민식 PD

최승호 감독은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자가 질문을 제대로 못하는 사이, 공영방송은 어떻게 됐는가. 권력 감시 기능을 하던 프로그램들은 줄줄이 폐지됐고, 그 자리에 대통령 홍보 프로그램이 들어앉았고, 세월호 참사 오보가 일어났고, 최순실 국정농단 취재가 자취를 감췄다. ‘공범자들’엔 국가권력이 국민의 눈과 귀를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그림들이 있다.

영화에서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우리의 싸움을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러하다. ‘공범자들’은 은폐될 수 있었던 사실을 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MBC 블랙리스트 파문과 이로 인한 제작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여러모로 때맞춰 당도한 영화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각별하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언론탄압에 맞서 싸우다 징계를 받은 언론인들의 명단이 흐른다. 그들에게 각자의 자리를 되찾아 줄 수 있는 것. 공영방송에 수신료를 내고 있는 당신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회사의 공범자들과 싸우고 있을 당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