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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콘] 당신은 체인스모커스의 '무엇'에 열광합니까
입력 2017-09-13 09:05   

▲체인스모커스(사진=현대카드)

지난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클럽을 다녔던 때로 기억될 것이다.

주변 사람들(특히 어머니)은 늦바람이 무섭다는 둥 오춘기가 왔냐는 둥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울트라 뮤직’ 등의 EDM 페스티벌을 올해 경험했던 나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EDM을 소비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EDM 안에서 ‘좋음’을 발견하지 못하면 업계의 추세에 발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것을 쉽고 빠르게 공부하기 위해 클럽을 찾은 것뿐이다. 말하자면 나의 클럽 방문은 순수하고도 합당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짜다.

당시 나는 나보다 반 년 가량 먼저 클럽 문화에 눈 뜬 친구 P양과 함께 모 클럽에 방문했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노래에 몸을 들썩이던 그녀가 어느 곡이 재생되자 신나 하며 “자신이 매일 듣는 곡”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EDM이 여느 대중음악과 다를 바 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EDM을 클럽이나 페스티벌에서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 여겼던 내게 꽤나 놀랍게 느껴졌다. 그저 뿅뿅거리는 소리 안에서 음악적인 기호를 발견할 수 있다니!

▲체인스모커스(사진=현대카드)

하지만 이것은 비단 P양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잠실 실내체육관에는 약 8500명의 관객들이 몰려들어 미국 출신 DJ·프로듀서 듀오 체인스모커스의 내한 공연을 관람했다. 7월 예매를 시작한 공연 티켓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공연장 앞에는 종이 박스 날개에 ‘표 구함’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적어 놓은 남자가 올지 모를 판매자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EDM은 ‘평소 즐겨 듣는 음악’인 것이다.

오프닝 게스트 닉 마틴에 이어 오후 8시 30분 쯤 무대에 오른 체인스모커스는 그들의 첫 정규음반 ‘메모리즈…두 낫 오픈(Memories...Do Not Open)’의 수록곡 ‘더 원(The One)’과 지난해 발표한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틀며 객석의 분위기를 살폈다. 관객들은 이미 분기탱천. 수 천 대의 휴대전화 카메라가 체인스모커스를 반겼고 수 만 개의 팔들이 허공을 휘저었다.

▲체인스모커스(사진=현대카드)

고백하자면 나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DJ의 라이브 공연이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갖고 있기에 국내 유수의 록페스티벌마저 집어삼켰는지 알 수 없었다. 록밴드처럼 들끓는 악기 연주를 들려주는 것도, 출중한 보컬리스트의 절창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아이돌 그룹처럼 ‘칼군무’를 추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기계도 사람만큼이나 음악을 잘 틀어주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좋은 공연의 미덕은 무엇인가. 객석의 분위기를 읽어내 흥을 더해주는 것이 훌륭한 라이브의 기준일까? 아니면 폭죽이나 조명, 비디오 등의 시각장치를 배치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좋은 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잘생긴 외모로 관객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비결? 체인스모커스의 공연은 내 궁금증을 얼마간 해소시켜줬다. 물론, 미국에서 온 두 명의 DJ는 분위기를 띄우는 것에도 능했고, 키치한 영상으로 시선을 붙들었으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지만, 답은 ‘라이브러리’ 그러니까 체인스모커가 재생해줄 수 있는 음악들에 있었다.

관객들은 앤드루 태거트가 마이크를 잡고 ‘올 위 노우(All We Know)’, ‘파리스(Paris)’, ‘로지스(Roses)’ 등을 부를 때마다 몹시 즐거워하며 ‘떼창’으로 화답했다. 태거트는 기량이 뛰어난 보컬리스트는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관객들은 그의 가창력을 확인하러 그곳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 틀어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뮤지션에 열광하고 있었다.

▲체인스모커스와 방탄소년단(사진=현대카드)

‘클로저’에서는 최근 체인스모커스와 협업한 그룹 방탄소년단이 등장해 뜨거운 환호를 얻었다. “여러분들을 더욱 신나게 하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라며 짐짓 고민에 빠진 척 무대를 배회하던 태거트는 “친구들을 불렀다”는 말로 방탄소년단을 소개했다.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태거트가 부르는 ‘클로저’에 맞춰 DJ 부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분위기를 달궜다.

체인스모커스는 자신의 오리지널 곡이 아닌 다른 가수들의 음악도 믹스해 들려줬다. 영화 ‘라이언킹’ OST ‘더 라이온 슬립스 투나잇(The Lion Sleeps Tonight)’나 콜드플레이의 ‘옐로우(Yellow)’ 등이 세트리스트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를 튼 것이 꽤나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널 흔들어버리겠다”는 당대 최고 로큰롤 밴드의 위대한 선언이 빠른 비트의 전자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들으면서, 혹시 이것이 밴드 시대의 종말과 대(大) EDM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 아닐까 하는 망상에 잠시 빠졌다.

공연은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마무리됐다. 공연장은 이미 땀 냄새로 진동했다. 한 남성 관객은 “하도 뛰었더니 오늘 먹은 음식이 다 빠져나갔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체인스모커스의 무엇에 열광했기에 90분 동안 2000kcal나 소모할 수 있었던 걸까. EDM을 일상에서 듣는 P양은 그 답을 알려줄 수 있을까. ‘표 구함’ 팻말을 들고 있던 그 남성은, 답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