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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문성 “너는 하나뿐이고, 그래서 소중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입력 2017-10-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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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성(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뮤지컬 ‘헤드윅’은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록가수 헤드윅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주인공 헤드윅은 저항하는 인물이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타고난 성별에 저항하고 동독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강요된 사상에 저항한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반쪽이 있다고 믿고 반쪽을 만나 온전한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것은 오랜 옛날,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진 인간을 둘로 쪼갠 제우스에게 저항하는 행위이자 헤드윅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장 꼿꼿하게 세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헤드윅을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정문성은 관객들에게 “헤드윅이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헤드윅의 저항은 때로 자신의 비겁함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네 존재가 얼마나 크거나 작건, 네가 얼마나 용기 있거나 초라하건 간에, 너는 오직 하나뿐이고 그래서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와 관객이 오른손을 번쩍 들고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 모두가 하나가 되는 마법이 펼쳐진다.

*뮤지컬 ‘헤드윅’ 공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Q. 지난 시즌에서는 에스프레소 바에서 자유곡을 부르지 않았는데 올해는 다르네요.
정문성:
카펜터스의 ‘슈퍼스타(Superstar)’를 불러요. 지난 시즌 때는 ‘뮤지컬배우 정문성의 노래자랑’이 될까봐 자유곡을 뺐어요. 그런데 올해 안유진 누나가 ‘슈퍼스타’를 추천해주더군요. 가사 내용이 헤드윅과 토미의 이야기와 비슷해요. 재밌는 게, 토미와 헤어지기 전 불렀던 ‘슈퍼스타’를 토미와 헤어지고 난 뒤에 재연한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을 테지만 지금은 토미와의 감정을 넣어서 부를 수 있게 된 셈이죠. 만약 헤드윅이 토미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한다면 이 노래 가사처럼 ‘난 널 사랑해. 난 너를 기다려’라고 말하지 못했을 거예요. 헤드윅이라면 ‘그 새끼 정말 이상한 새끼야’라고 하겠죠. 그런데 ‘슈퍼스타’를 통해 사랑한다고 또는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Q. 또 어떤 점들이 달라졌나요?
정문성:
우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요(웃음), 작년에는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과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앵그리인치나 이츠학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그들, 그들이 생각하는 나, 서로의 감정 같은 것들이 제 말이나 행동에서 비춰지기를 원했습니다.

Q. 앵그리인치의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고 ‘느껴지게’ 만든다는 것이 흥미롭게 들립니다.
정문성:
정확한 설명을 하기보다 관객들이 생각할 여지를 남기려고 해요. 가령 제가 공연 중에 모기 얘기를 하거든요. ‘모기를 잡았는데 죽일 수가 없어서 날개를 묶어 놓고 키우다가 날려 보내 줬다. 그 모기가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 일종의 비유인데 비유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열어놓습니다. 또 앵그리인치를 볼 때 제 시선, 그들을 보며 바뀌어가는 저의 감정을 통해서 그들이 저에게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려고 해요. 그랬을 때 헤드윅과 앵그리인치 모두, 더 입체적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문성(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헤드윅’은 배우의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작품입니다.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애드리브를 자제하는 배우도 있는데, 당신은 어느 쪽이에요?
정문성:
큰 틀의 이야기나 전개, 인물의 뼈대는 가져가되 그 외의 것들은 라이브하게 가는 걸 좋아해요. 제가 정의한대로만 공연을 하기에는 변수가 많고, 모든 것을 라이브로 연기하기에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없잖아요. 관객들이 진짜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느끼게 해주려면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동시에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하죠. 해야 할 이야기는 확실하게 하면서 라이브한 분위기를 살리려고 합니다.

Q.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과정은,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다른가요.
정문성:
다른 작품은 벽이 있어야 해요.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연기가 객석을 향한 연기에요. 저는 무대 위에서는 무조건 상대 배우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다만 관객을 염두에 둔 연기 혹은 관객을 신경 쓰는 행동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헤드윅’은 관객이 없으면 불가능한 설정을 갖고 있어요. 관객도 배우가 되는 셈이죠. 관객과 헤드윅 사이에 계속 감정이 오가는 거예요. 제 가슴에서 삐져나온 감정을 관객들이 눈치 채고, 관객들의 가슴에서 삐져나온 감정 또한 제게 와요.

Q. ‘헤드윅’을 연기한 경험이 다른 작품의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데에도 영향을 줬나요?
정문성:
고민이 많아졌어요. 아무리 집중해서 연기를 하려고 해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더니 (캐릭터의) 에너지가 작아지고 인간 정문성에 가까워지더라고요. 작품마다 캐릭터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게 사실 많이 힘들거든요. ‘힘이 많이 들지 않아서 내 몸이 편해진 걸 자연스럽다고 착각했나?’ ‘내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걸 표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내가 자연스러워지는 거니까 그렇게 선택했나?’ 생각이 많았어요. 제가 엄청나게 쏟아 부어서 인물이 순간적으로 자연스러워질 때 ‘아! 이런 거구나’ 싶어요.

▲정문성(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관객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고 싶은 포인트가 있다면요?
정문성:
헤드윅이 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이유를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자신의 반쪽을 향해서 가는 이유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고, 그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보통 사람’이라는 그늘 속에서 안전하게 가는데, 헤드윅은 춥고 젖고 더러워지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찾아 빗속으로 가는 인물이에요. 멋있잖아요. ‘저 사람 춥겠다’ ‘불쌍하다’, 혹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또라이인가?’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을 만큼 멋져지고 싶었어요.

Q. 네.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멋진 인물이죠.
정문성:
헤드윅의 멋있음을 느끼고 나니 정문성이라는 사람이 하찮고 비겁하게,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제가 항상 옳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제 어떤 행동도 위험하지 않았던 거예요. 모두 방어적이었죠. 하지만 ‘너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작던 간에 혹은 네가 얼마나 용기 있고 초라하던 간에, 너는 하나밖에 없다. 너는 엄청나게 소중한 사람이다. 너는 네 반쪽을 찾을 자격이 있고 멋지게 살 자격이 있다’, 그걸 말해주는 헤드윅이고 싶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울분이나 슬픔을 갖고 살잖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너, 너라는 사람의 가치, 네 생각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힘이고, 그 힘을 ‘헤드윅’을 통해 심어주고 싶어요.

Q. 관객들에게 헤드윅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길 바라는 건…
정문성:
아니에요. 다만 내가 처마 밑에 있는 이유를 찾으면 돼요. 헤드윅에게, 빗속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만의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요. 세상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하고 인정하는 데 시간을 쏟아야지, 내가 우월지고 인정받기 위해서 내 밑에 누구를 두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나에게 정당해질수록 멋진 사람이 되는 거예요.

Q. 만약 당신이 헤드윅처럼 위험함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당신은 뭘 하고 싶어요?
정문성: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를 가소롭다고 느꼈던 걸 그런 전제를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뮤지컬 배우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전적이었다고 말할 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그 과정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정문성(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헤드윅은 평생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맨 인물입니다. 그런데 토미는 헤드윅에게 ‘위키드 리틀 타운’을 불러주며 “오묘한 마법도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다”고 말해요. 그걸 듣는 헤드윅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혹은 엄청난 허무함을 안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문성:
헤드윅이 무대에서 돌아 나가는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한 순간, ‘맞아. 토미 네 말이 옳았어. 이제야 내 자아를 찾았어’라고 깨닫고 나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저는 ‘쟤(토미)가 내(헤드윅) 반쪽이 아닌가보다’ 라는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내 가치관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토미는 진심으로 나에 대해 고민했고, 과거를 끝없이 자책했고, 한 순간의 감정이었을지라도 내게 했던 사랑한다는 말은 진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그리고요?
정문성:
그리고 앵그리인치와 이츠학이 있어요. 제가 가발을 다시 든 건 그들 때문이에요. 이 가발이 내가 원한 걸까? 내가 원한 건 반쪽을 찾는 일이지 이 가발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걸 간절히 원하던 사람(이츠학)이 눈에 들어온 거죠. 제가 너무나도 찾던 완벽한 하나의 모습을 이츠학에게서 봤을 때, 그리고 앵그리인치와 연주하고 있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완벽할 때 저는 무대를 후련하게 떠날 수 있어요.

내 존재를 찾았다는 것에만 포커스를 두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나를 누르고 있던 것들(트랜스젠더)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반쪽을 찾는 일)과 결정적인 관련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내가 원하는 걸 향해 가야한다는 신념과 이걸(가발) 원하는 너에게 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져요. 그리고 무대를 떠난 헤드윅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고 자신이 사는 이유가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테고 그 이유만을 갖고 살 수 있을 거예요.

▲정문성(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당신은 찾으셨나요. 당신을 100% 납득시키는,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
정문성:
잘 모르겠어요. 아, 그런데 그건 있어요. 저는 연기가 너무 좋아서 한 거예요. 못 먹어도 행복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배우가 제 직업이 됐어요. 심신이 지치고 정신이 약해질 때 ‘이대로 내가 연기를 한다는 게 가능할까?’ 생각한 적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연세를 드시고 일을 못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제가 일종의 가장이 됐어요. 그러면 제가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또 생기는 거예요. 집세는 어떻게 할 것이며, 엄마랑 반려견은 어떻게 할 것이며…. 순간순간 생기는 이유를 따르며 살아요. 그리고 내가 왜 힘들어야 하는지를 찾으면, 그 땐 힘들어도 돼요.

Q. 덜 힘들어지지는 않고요?
정문성:
네, 똑같이 힘든데(웃음) 안 억울해요. 예전에는 ‘내가 왜 힘들어야 하지?’ 억울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안 그래요.

Q. 그러면 미래가 더 밝고 희망차게 그려지나요?
정문성:
어렸을 땐 그랬는데요. 지금은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하지만 비극이 아무에게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Q. 끝으로 헤드윅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정문성:
감사해요. 죽을 때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하게 해줬고 그래서 많이 배웠어요. 영화에서도 헤드윅이 어떻게 되는지는 안 나오는데,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행복이 스스로의 가치에 만족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길 바라고요. 다른 모습, 다른 방향이지만 저도 언젠가 그런 행복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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