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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려원, 1세대 연기돌이 개척한 여배우의 길
입력 2017-12-24 10:00   

(사진=키이스트 제공)

배우로 전업했거나 겸업 중인 아이돌을 ‘연기돌’이라 부른 지는 오래지 않았다. 과거에는 그 수가 적었고, 형편 없는 연기력 때문에 대중에게 외면 받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콘셉트로 2000년대 초반 활약했던 아이돌 샤크라의 려원은 그룹 탈퇴를 선언하고 본명인 ‘정려원’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이전에도 아침드라마나 시트콤에 얼굴을 비쳤지만 존재감은 한없이 작았다.

그런 그가 시청자들에게 연기자로서 합격점을 받은 작품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배우 정려원에게 최고의 성적과 호평을 선사한 드라마였지만 그만큼 극 중 캐릭터의 그늘은 컸다. SBS ‘샐러리맨 초한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으나 정려원의 출세작은 여전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기억됐다.

지난달 종영한 KBS2 ‘마녀의 법정’은 그에게 2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이다. 여러모로 한 번 제대로 보여 줄 필요가 있는 시기에 찾아 온 작품이었다. 능력 있는 출세지상주의 검사 마이듬은 접근부터 쉽지 않았다.

“법정물이기 때문에 대사량과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었어요. 감정의 변화도 큰 캐릭터인데 법률 용어까지 익숙한 듯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죠. 하다가 못 할 것 같던 순간도 왔어요. 그렇지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되더라고요. ‘마녀의 법정’을 하면서 지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이래서 여배우는 분량 많은 주연으로 쓰면 안 돼’라는 소리는 듣기 싫었거든요. 예민해지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티를 내면 다른 여배우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역할 자체도 여성 캐릭터로는 드문 욕심 많고 능력 있는 인물이어서, 제가 샘플이 돼야 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최근에는 JTBC ‘품위있는 그녀’도 그렇고, 여자 주인공이 부각되는 이야기가 트렌드잖아요. 저로서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죠.”

(사진=키이스트 제공)

이 같이 승부욕을 불태우기 전에는 고민도 많았다. 차기작을 고르던 중 한 번은 장르물 대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메디컬 드라마 이후 오랜만에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접하니 덜컥 겁이 나 거절했다. 이후 ‘마녀의 법정’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생각이 바뀌었다. 더 이상 피하거나 안주할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 된 적 없는 성범죄를 다루는 작품이었지만, 정려원은 일단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마녀의 법정’을 하면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진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가상의 부서인 여성아동범죄전담부가 이상적인 형태죠. 검사 분들은 힘드시겠지만요. (웃음) 성희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죠. 항상 하던 말들도 다시 한 번 조심하게 된다든가요.”

(사진=키이스트 제공)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을 종횡무진 오고가는 캐릭터의 내면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정려원은 외면에도 신경을 썼다. 길던 머리를 어중간한 길이의 단발로 자르고,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 대신 바지 정장과 단화를 고집했다. 여성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있었다면 단 하나, 새빨간 립스틱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정려원의 과감한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마녀의 법정’은 월화극 1위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막을 내렸다. 연말 시상식에서 다른 어떤 상보다 인기상을 받고 싶다며 웃는 그의 모습은 이제 ‘진짜 배우’의 것으로 보였다.

“‘마녀의 법정’ 시즌2요? 마이듬 캐릭터, 보내기 아깝잖아요. 배우들은 다 OK했어요. (웃음) 제작진만 OK하신다면 할 준비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