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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이제는 고유명사로 불릴 ‘1987’
입력 2018-01-1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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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정필름)

젊은이가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황망한 죽음이었다. 고문한 경찰들의 첫 반응은 당황과 짜증.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인다. 박 처장(김윤석 분)은 브레인이 되고 부하 경찰들은 수족이 되어 냉정하고 민첩하게 행동했다. 최소의 애도나 슬픔 따위 허락받지 못한 죽음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은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무너진다. 영화 ‘1987’의 시작이다.

상영관 불이 꺼지고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스크린을 보자마자 몸이 굳었다. 에둘러 가지 않고 러닝 타임 내내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기 때문이다. 대학생 박종철이 왜 남영동에 끌려가 경찰에게 물고문을 당해야 했는지, 어린 시절 종철은 어떻게 성장했는지와 같은 설명은 모두 생략했다. 영화는 마운드에 올라 연습구 하나 던지지 않고 바로 승부하는 투수마냥 관객에게 1987년으로 들어오라며 억세게 손을 잡아끈다. 억울한 죽음과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이를 막으려는 시도가 영화의 큰 맥락이다. 대학 신입생 연희(김태리 분)와 선배 이한열(강동원 분)의 관계가 또 다른 줄기다. 촘촘하게 연결된 다양한 인물들은 횡과 종으로 움직이지만 결국 만나는 소실점은 하나다. 6월 그날의 광장.

영화를 보며 마음을 졸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절대 어긋나는 법 없이 정해진 시간을 향해 내달리는 시한폭탄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1월에 눌려져 6월에 터지도록 맞춰진 폭탄. 차곡차곡 쌓이던 분노가 도화선으로 작용해 결국 87년 6월의 광장에서 터지고 말았다.

사실 5공화국이라는 시한폭탄은 1980년에 이미 작동을 시작했다. 광주학살의 원죄를 안고 출발한 권력은 정당성이 없었다. 권좌에 앉아선 안 될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희생을 강요했다. 온당치 못한 일을 도돌이표 찍듯 반복했다. 그런 의미에서 87년 1월의 죽음은 뇌관을 건드린 일이었다. 째깍 째깍 오차 없이 줄어들던 폭탄의 남은 시간을 확인이라도 하듯.

시작부터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점은 지난 정권도 비슷했다. 국가기관은 선거에 나온 여당 후보를 돕기 위한 글을 인터넷의 바다에 집요하게 뿌렸다. 이런 사실이 들통나자 또 다른 국가기관이 나서 부당함을 가리기 위해 앞장섰다. 잘못 꿴 단추를 바로 잡을 능력도 의지도 없던 정부였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던 대통령의 언어는 이제 씁쓸한 추억으로 남았다. 남녘 바다에 300여 명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할 때 상처 받은 유족과 국민의 마음에 나서서 재를 뿌린 건 다름 아닌 권력을 쥔 자들이었다. 5공화국이 박종철 열사의 죽음 하나로 무너진 게 아니듯 지난 정권의 탄핵이 태블릿PC 하나 때문은 아니란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만 모른다.

영화가 다루는 1987년과 2017년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87년은 6월을 뜨겁게 보냈지만 12월 대선 결과는 좌절이란 단어로 마침표를 찍었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이어진 겨울은 모질게도 추웠지만 결과는 분명 30년 전과는 달랐다.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87년에 비해 2017년은 민주화란 영원히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민주적으로 되어간다는 의미의 ‘민주화’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다.

기억해야 할 죽음이 많다는 사실은 분명 슬픈 일이다. 그보다는 기억할 죽음을 잊는 건 더 큰 비극이다.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87년의 죽음을 기억한다. 이후에도 억울하게 세상을 뜬 수많은 죽음을 기억한다. 1987년은 이제 시간을 말하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역사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지 오래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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