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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칼럼] '미쓰백'이 존재하는 방법과 외치는 메시지
입력 2018-10-11 15:51   

지난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 보듯 한국 영화의 제작비가 커졌다. 하지만 30억 원 안팎의 ‘서치’의 성공이 웅변하듯 꼭 돈을 많이 들여야 흥행에 성공하고,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다. 오는 11일 개봉될 ‘미쓰백’(이지원 감독)이 벌써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는 건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을 향한 희망이다.

눈에 익은 한지민과 이희준만 빼면 전형적인 독립영화의 형태다. 심지어 한지민과 공동 주연인 아역 김시아는 초짜다. 개봉 2주 전 일찍이 언론배급시사회를 가졌는데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220억 원짜리 ‘안시성’ 등 ‘공룡’을 선호하는 한국 영화계에 시위를 하는 듯한 모양새다.

크레딧을 자세히 보면 한지민의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콤플렉스를 지닌 영화의 경우 유력 주연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개런티 외에 일부 지분까지 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봤을 땐 순수한 마음으로 소속사가 참여했을 가능성에 큰 무게가 실린다.

한지민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증거다. 그녀의 선택 역시 강력한 보증서다.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한지민이란 배우는 ‘미쓰백’의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연기를 펼쳤고, 영화 역시 그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감동을 안겨주며, 콧등과 눈시울이 아리는 여운을 오래 남긴다.

멀티플렉스로 생태계가 바뀐 뒤 대기업 투자·배급 영화의 스크린 독점에 대해선 수시로 이의가 제기돼왔다. 자본의 논리대로 극장이 최대의 수익을 위해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막기 힘들겠지만 문화·예술 발전과 소수 관객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었던 것.

그건 장기적인 투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피터 잭슨처럼 저예산 독립영화 출신 감독이 거장으로 거듭난 예는 국내외에 숱하다. 다양한 저예산 영화가 제작될 환경이 조성되려면 상영이 보장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지원 감독과 ‘미쓰백’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채 보육원에서 성장한 30대의 백상아는 사회에서도 상처를 받은 뒤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은 채 자신의 정체성을 그냥 ‘사람’으로 정해놓고 살다 자신과 똑같은 초등학교 저학년생 지은을 만난 뒤 달라진다. 아빠와 그 동거녀에게 무지막지한 학대를 받는 그녀의 보호자가 되는 것.

하지만 현행법은 상아를 유괴범으로 몰고 간다. 삶의 목표와 희망을 잃은 채 죽을 수 없어서 관성적으로 살던 그녀가 목적의식을 갖게 되는 건 다시는 ‘미쓰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부모의 학대로 희생되는 아동을 한 명이라도 구하겠다는 건 영웅심리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구원인 것이다.

두 ‘미쓰백’의 서로 곁에 있어주기와 지켜주기의 드라마로 흐르던 영화는 어느새 아빠의 연인의 살의를 피해 달아나는 지은과, 유괴범으로서의 검거를 피해 도망치는 상아의 도주 스릴러로 변주된다. 자칫 신파적 지루함으로 흐를 수 있었던 분위기를 교묘하게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더욱더 영민하게 무조건적으로 상아를 돕는 형사 장섭의 짝사랑과 그걸 애써 외면하는 상아의 매정함이 이루는 러브라인 구도로 멜로의 재미까지 슬쩍 가미한다. 장섭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속옷을 보이며 “나 같은 년이 결혼은 무슨”이라고 자포자기한 상아와 애끓는 장섭의 묘한 하모니.

시종일관 어둡고 우울해서 분노와 절망을 유발하면서도 의외로 코미디를 포진하는 절정의 치밀함을 지녔다. ‘잠깐 (시집을) 갔다 온’ 장섭의 누나 후남이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질 만하면 툭툭 촌철살인의 대사를 던진다.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분명히 재미는 있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렇듯 이 영화는 다양성의 존재의 이유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강력하게 웅변한다. 그런데 이미 ‘도가니’가 장애아 학대는 물론 성폭행까지 폭로한 마당에 이 영화가 아동학대란 메시지를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청소년 관람 불가인 ‘도가니’는 성폭행에 집중했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학대다.

진화생물학은 ‘신데렐라 효과’란 용어를 만들었다.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사자는 암사자의 새끼들을 죽이고 자신의 새끼를 잉태하게 만든다. 인간 사회에도 계부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한쪽의 친부모는 새 파트너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그걸 외면하거나 심지어 가담한다.

2016년 아동학대 신고는 2만 5878건인데 전국 53개 학대피해아동쉼터가 보호한 아동 수는 고작 1030명이다. 접수 건수만으로 20배가 넘는 아동이 구제받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처 신고하거나 신고의 도움을 못 받은 아동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혼율 1위 한국에서 남이 아닌 친부모, 혹은 그의 새 파트너의 아동 학대를 고발하고 주변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양심에 못 박지 말고, 이기심과 무관심을 방목하지 말며, 배려에 멍에를 씌우지 말라는 애원이 이 영화의 메시지고 존재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