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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뮤직] 고통을 승화해낸 목소리, 박기영
입력 2018-10-16 10:24    수정 2018-10-16 13:24

(사진=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시작’ ‘블루스카이(Blue sky)’ ‘나비’ 등 순수한 듯 아련함을 남기는 어쿠스틱 록 발라드가 박기영을 대표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데뷔 20년 차의 박기영은 자신이 가진 감정의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는 뮤지션이 되었다. 어떤 ‘외압’ 없이(대표조차 데모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온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녹여냈다는 이번 그의 8집 정규앨범에는 세월호부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박기영은 ‘한’의 장르인 블루스라는 그릇을 만들었다. 표현하는 방법 역시 달라졌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거칠게 노래하는 그는 “구토하듯” 절규한다.

지난 15일 오후 6시 발매된 박기영의 8집 정규앨범 ‘리: 플레이(Re:Play)’에는 타이틀곡 ‘아이 개이브 유(I gave you)’, 선공개곡 ‘하이히츠(High Hits)’를 포함해 ‘거짓말’, ‘걸음 걸음’, ‘스모키(Smokie)’ 윈곡의 ‘이프 유 씽크 유 노우 하우 투 러브 미(If You Think You Know How To Love Me)’ 커버까지 총 10곡이 담겼다.

먼저 첫 번째 트랙 ‘스탑(STOP)’에서 박기영은 그의 화를 부르는 대상에게 “넌 진짜 아니야. 아직도 잘못했단 생각은 1도 없는 쓰레기. 여기저기 피해주지 말고 조용히 숨만 쉬고 살아”라며 직접적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스탑’에서 ‘쓰레기’로 비유되는 것들은 여러 가지다. 박기영에 따르면 前 대통령 MB, 기업화되어 종교 역할을 하지 못 하는 교회, 자연을 낭비하는 사람들 전부가 그 대상이다.

다른 대상에게 던지던 분노는 이내 자신의 고통을 향한다. 4번 트랙에 자리한 타이틀곡 ‘아이 개이브 유’에서 나른한 듯 펼쳐지던 박기영의 목소리는 고통으로 가득 찬다. “나 좀 내버려둬. 아직 진정이 안 돼. 너무나 비참해. 숨이 멎을 것 같아 난. 미쳐버릴 것 같아 제발” 라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을 향해 절규하다가도 “모든 게 다 지나가고 상처 받은 날들 모두 버려”고 마무리 한다.

사회적인 이슈도 직접 다룬다. 매번 문제 제기를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도 박기영만의 화법으로 이야기 한다. 박기영이 자신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직접 썼다는 ‘고잉 홈(Going Home)’은 1인칭 시점으로 내뱉어지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담겨있다. “돌아가면 나를 반겨줄 이 있나. 아무 일 없었던 듯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은 사회에 대한 원망이 들어있다.

(사진=문라이트 퍼플 플레이)

다만 박기영은 이번 앨범에서 우울과 절망만 전하지는 않는다. 그의 고통은 인지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생산적인 발전으로 나아간다. 후반부에 가면 박기영의 목소리는 희망을 전하는 목소리로 바뀐다.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은 앞서 다른 곡들을 연주했던 묵직한 베이스 대신 피아노 선율을 가볍게 흘러 보내며 박기영과 박기영의 팬인 고등학생 안소은 양의 목소리를 희망차게 담아낸다. “나 아직 어려요. 세상은 작은 내게 두려움이죠”라고 인정하면서도 “넘어지고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그럴 땐 눈을 감고 노래해. I have a dream. Someday I will make my wish come true”라고 말하는 이 노래는 박기영이 팬의 사연으로 완성한 곡으로, 직접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전한다.

‘상처 받지마’를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상처 받지마.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해. 슬픈 날엔 마음껏 울어도 된다. 온전한 나를 이제 받아들여도 돼. 마음껏 너의 맘을 내게 보여줘”라고 응원한다. 가스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따뜻함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8집 앨범 총 10곡에는 그동안 박기영이 받았던 상처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곡이 마음 쓰일 수밖에 없다. ‘아이 해브 어 드림’과 ‘상처 받지마’를 통해 어느 정도 상승 곡선을 그렸던 분위기는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남기고 다시 어두워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이중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 ‘걸음 걸음’은 “걸음 걸음마다 맘을 가다듬지만 주저앉고 싶은 맘은 어쩔 수 없네. 하루가 또 시작되면 어제랑은 다를까. 조용히 한걸음 내딛으며 기대해보네. 어디쯤 왔을까 얼마나 가야 할까. 알 수 없는 나의 이야기. 오늘 하루는 힘겨운 날이 될 듯해”로 마무리 된다.

쇼케이스를 통해 박기영은 “사실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삶은 고통이고, 행복은 잠깐의 순간밖에 없지만, 잠깐의 행복이 주는 효과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것 하나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걸음 걸음’은 앞으로의 나날들이 힘겨울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내딛어 가겠다는 박기영의 의지를 담은 곡이다.

과거 박기영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었고, 그로 인해 다시는 음악 작업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고 한다. 이런 박기영이 내놓은 결과물 ‘리:플레이’는 “예쁘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었다”던 박기영의 새로운 시작이 될 앨범이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두려움이 없는 그의 8년 만의 새 정규 앨범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