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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올댓이즈] BIFF 사태, 서병수 부산시장의 ‘돈의 맛’
입력 2016-05-04 09:02    수정 2016-05-04 11:33

(사진=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좋은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 그 유명한 워런 버핏의 명언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를 향하고 있다. 쌓아올리는데 20년, 훼손에는 5분 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것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비극의 농도는 짙어 보인다. 이 막장드라마의 연출은 서병수 부산시장이다.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에서 촉발된 영화인들과 부산시의 갈등이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이다. 그동안 부산시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사퇴를 종용했고, 박찬욱 감독 등 영화인 68명 신규자문위원들의 효력을 무력화 시켰으며, 조직위원회 감사를 단행해 그 감사결과를 빌미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결국 영화인들은 ‘독립성보장과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보이콧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상태. 그럼에도 부산시는 올해 영화제 개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올해 10월 해운대 바다에서는 ‘영화인 없는 영화제’라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BIFF가 닻을 올린 건, 2006년. 남포동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영화제는 20년이 지난 현재, 아시아 중심의 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유네스코가 2014년 부산을 세계 3번째의 ‘영화 창의도시’로 지정한 배경에는 BIFF가 있었다. 부산이라는 지역사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BIFF의 역할은 막대했다.

이쯤이면 궁금해진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역 이미지에 긍정적 효과를 안기는 BIFF 흔들기를 왜 포기하지 않는 걸까. ‘다이빙벨’로 촉발된 정치적 이유가 크겠지만, 비단 그것뿐일까. 이를 위해서는 서 시장의 지난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의 경제적 업적 쌓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서 시장이 2014년 7월 취임하면서 가장 강조한 시정의 제1목표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시장’이란 슬로건을 내걸어 당선됐으니, 뻥튀기 공약이란 지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목표치인 2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앉으나 서나 고민해야 할 게다. 실제로 서 시장의 행정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집중돼 있는데, 이러한 시정 목표를 문화예술 부문에까지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파열음이 일기 시작했다.

BIFF를 담당하는 문화관광국을 경제부시장 산하로 옮긴 것부터가 일단은 넌센스. 문화예술을 경제적 관점에서 다루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니, 살짝 ‘셀프디스’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문화란 유무형의 가치가 함께 커 나가면서 국민의 자긍심과 행복지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기에, 돈의 관점에서 바라보겠다는 저 논리는 다소 위험하다. 서 시장의 문화관광국 조직 개편을 두고 위기론이 대두됐던 건 이 때문이다. 그리고 위기론이 실제 위기가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지지 메시지를 전한 영화인들)

취임 첫 해, 서 시장의 BIFF 압박은 급물살을 탔다. BIFF가 시로부터 60억 원이라는 예산을 받는 만큼, 이 해택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질적인 방법을 토해내라는 주문이 그 중 하나. 아무리 너도 나도 창조경제를 외친다지만, 국제 영화제를 ‘일자리 창출’의 창구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창조적인 발상 아닌가. 또한 서 시장은 영화도시인 부산에 번듯한 영화사나 영화제작사 하나 없는 점을 들어 BIFF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왜 부산이 할리우드가 될 수 없냐는 그의 질타에는, 다분히 경제적인 논리가 끼어 있다.

무형의 가치에 대한 서 시장의 얕은 이해도는 갈등에 기름을 붓는 촉매제다. 이용관 전 진행위원장과의 초반 만남에서 “(영화제) 마켓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던졌다고 하니, 영화제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음은 애초에 예상됐지만,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BIFF로 인해 부산시가 얻는 도시 브랜드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영화 등 문화산업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즉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이익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찾는 수많은 외국 게스트들이 부산에서 쓴 비용과 영화제 필름 마켓을 통한 영화 홍보 효과 역시 적지 않다. 실제로 2012년 부산발전연구원은 BIFF가 1년에 만드는 경제파급효과가 774억 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 시장 입장에서 이것은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이다.

아마도 개인의 업적 쌓기가 중요한 서병수 시장에서 BIFF의 독립성, 혹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눈엣 가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자리를 잡은 BIFF는 아무리 잘 돼도 서병수 개인의 공이 될 수 없다. 무엇이 됐든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게 ‘폼생폼사’일 서 시장이 꺼낸 카드 중 하나. 인적쇄신 일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 문화를 돈이 되는 경제 창구로 손쉽게 주무르겠다는 의혹이 여기에서 불거진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에 나선 전세계 영화인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쳐든 게 바로 10월 1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원아시아 페스티벌’이다. 국·시비(55억 원)와 민자(45억 원)를 포함해 100억 원에 달하는 이벤트로 한류스타들을 동원, 중국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행사다. 이 행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이는 물론, 서 시장이다. 결과가 온전히 서 시장의 업적이 될 수 있는 행사인 셈인데, 축제 기간이 BIFF와 겹치는 것을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20년을 함께한 BIFF 정상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부산시는 ‘원아시아 페스티벌’이라는 메가이벤트 유치와 개최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BIFF 위기에 대한 서 시장의 해결의지가 어느 정도인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정치가들은 무엇이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느냐는 관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부산이 창의적이고, 문화예술 사랑하고, 아시아의 재능이 결집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형성됐을 때 장기적으로 가져올 경제적 이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게 바로 부산영화제의 미래 비전이 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병수 부산 시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돈의 맛’이 아닌 장기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안목이다. 20년 역사의 국제적인 영화제를 망가뜨린 인물로라도 역사에 이름을 새기고 싶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