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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올댓이즈] ‘어린왕자’ 이승환이 멋지게 나이 드는 법
입력 2016-11-03 15:19   

(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이승환. ‘어린왕자’라 불리는 남자. 11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한 27년차 뮤지션이자 음반제작사 드림팩토리를 이끄는 수장. 그리고 또 하나.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동가 혹은 ‘소셜테이너’다. 그러니까, 이승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청량한 음색과 젊어 보이는 피부세포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심장에 자리한 용기야말로 이승환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지난 1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건물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그 대범한 행동도 행동이지만, 그것을 내건 주인공이 가수 이승환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은 컸다.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광고로 직결되는 연예인이, 그렇다고 여겨지는 연예인이 쉽게 하기 힘든 소신행위였다. 현수막은 항의신고로 인해 오래지 않아 철거됐지만, 그의 행동은 그 자리에 남아 지금도 회자되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늘 그랬다.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사회 부조리와 약자들이 있는 곳엔 늘 이승환의 목소리가 따랐다. 음악으로 긴 시간 대중과 소통해 온 이승환은, 소신을 전하는 통로로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음악에 도움을 청했다. 그는 용산참사 유가족을 돕는 콘서트에 참여했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을 응원하며 무대에 올랐으며,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 OST에도 참여했다.

(사진=주진우 기자 페이스북)

지난 해 1일 발매된 미니앨범 ‘3+3’에 수록된 ‘가만히 있으라’도 있다. 그는 노래한다. “가만 가만 가만히 거기 있으라. 잊혀질 수 없으니 그리움도 어렵다. 마음에도 못 있고 하늘에도 못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으로 알려진 이 곡에 대해 이승환은 지적재산권을 포기했다. 이 노래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에 의해, 노래가 널리 퍼져,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이 보다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최근 논란이 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자, 이승환은 이런 말도 했다. “이거 참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 조금 더 분발해야겠다는 그의 자조 섞인 농담은 그 어떤 진중함보다 강력했다. ‘블랙리스트’ 자체가 얼마나 허무맹랑하며 시대착오적인 산물인가를 명확하게 짚어냈으니 말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호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행동에 누군가는 손을 흔들지만, 누군가는 침을 뱉는다. 하지만 이승환은 특정 프레임을 덧씌우는 이들 앞에 굴하지 않겠다는 눈치다. 오히려 그 점에 주목하고, 역이용한다. 중요한 사안들이 가십에 의해 쉽게 가려진다는 것을 잘 아는 이승환은, 자신의 목소리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스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잘 간파하고 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영향력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이승환이 멋지게 나이 먹어가는 방법이다.

지난 4월 열린 ‘10억 광년의 신호’ 발표 기념 쇼케이스에서 이승환은 “착하게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상식에 기반하고, 얘기하고, 느끼고 그렇게 사는 게 아닐까요”

그의 대답 중, 단 하나가 틀렸다. 상식에 기반하고 얘기하고 느끼고 사는 건 좋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 상식이라는 것이 어려운 세상. 아마도, 이승환이 현수막을 내 건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