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연기를 했는데도 저 자신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영화 '노이즈'에서 서늘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배우 전익령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스크린에서는 확신에 찬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전익령은 데뷔한 지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을 탐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솔직한 매력을 드러냈다.
전익령은 2001년 MBC 공채 30기 탤런트로 데뷔해 24년간 탄탄한 연기력으로 롱런해왔다. 그는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노이즈'에서 804호 주민 '정인' 역을 맡아 또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주인공 주영(이선빈)의 다정한 이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흐를수록 반전과 긴장을 끌고 가는 축이 된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무섭기도 하고 흥미로웠어요. 귀신이 씌운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미친 고통일 수도 있고요. 저는 후자가 더 크게 다가왔어요."
정인의 내면은 단선적이지 않았다. 아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분노가 가득했고, 현실과 환상 경계에 있는 인물이었다. 전익령은 영화 후반부의 초자연적인 요소들과 분위기보단 아이를 잃은 엄마의 현실적 고통을 드러내려고 했다.
"영화의 초자연적 분위기는 정인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정인은 아이를 잃은 엄마였고, 내면이 곪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정인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답을 찾으려 했고요."

영화 마지막, 아파트 지하실에서 정인과 주영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격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는 울고, 소리 지르면서 몸을 내던졌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말 그대로 진이 빠지도록 찍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요. 장르는 공포영화였지만, 배려와 사랑이 가득했던 현장이었습니다. 하하."
전익령은 올해 초 JTBC '옥씨부인전'에서 포악하고 잔인한 성품을 가진 송씨 부인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주목받았다. 여기에 영화 '노이즈'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대중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연기했는데 아직 내가 어떤 배우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연기 방식도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머릿속 계산이 많았어요.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제 역할만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틀을 벗어나려고 해요. 좀 더 거침없이, 본능에 가까운 감정을 허용하면서 날것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익령은 자신을 '굉장히 느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10년, 20년씩 늦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배우로서 좋은 기회가 와도 괜히 겁먹고 회피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그런데 이제는 '도망가지 말자', '한 걸음은 내디뎌보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연이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을 맡다보니 이미지 변신 욕심도 생겼다. 전익령은 "의외로 사석에서 나 때문에 빵빵 터질 때가 많다"면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엄마도 어릴 때부터 '넌 털털한 연기를 해야 되는데'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평소 보여줬던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멀어서 털털한 역할들은 안 들어오네요. 시트콤 같이 편하게 웃길 수 있는 것들 해보고 싶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