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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알쓸신잡' 알아둬도 쓸데없는 것들을 권합니다
입력 2017-06-14 08:45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 공기를 바꾸기 위해 마음 편히 창문을 열던 장면도 추억이 된 지 오래다. 마찬가지로 지하철과 버스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제는 귀한 풍경이다. 책이나 신문, 잡지를 들고 있던 손은 이미 스마트폰이 점령했다. 서점에 가지 않아도 책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책 읽는 모습을 주변에서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비록 무명이지만) 책 쓰는 일이 업인 여행작가에게는 이런 현실이 좀 답답하다. 목구멍에 미세먼지가 잔뜩 낀 기분이다. 무명의 작가 남편도 모자라 아내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기획자로 일한다. 책은 우리 부부에게는 곧 밥인 셈.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모두가 책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책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은 있다. 아내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스캐닝한다. 혹시 책 읽는 사람이 있나 둘러보는 습관이다.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한 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여보, 우리 어떻게 먹고살지?”

나영석 PD의 새 예능으로 주목받은 ‘알쓸신잡’이 방영중이다. 제목을 풀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출연자 5명(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 유희열)이 매회 여행을 떠나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먹고 마시며 쉼 없이 수다를 나눈다. 대화는 책, 여행, 인물, 음식이란 키워드를 마치 바닥에 공깃돌처럼 흩뿌려놓고 마음 가는대로 주웠다 버리기를 반복한다. KTX의 이름 풀이로 시작해 문화상대주의를 거쳐 조선시대 향교의 의미를 이야기하다가 동대문시장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식이다. 듣고 있자면 정말 ‘알아두면(알아둔다고 해도) 쓸데없는(쓸데라고는 별로 없을 것 같은) 잡다한 지식(지식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내용도 꽤 많은)’들이다.

‘쓸데없는 잡학’이라는 그럴 듯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지만 ‘알쓸신잡’의 진짜 히든카드는 ‘책’이다. 출연자들은 대표 관광명소와 음식을 즐기며 관련 있는 작가나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통영편에서는 박경리의 ‘토지’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순천편에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두고 종과 횡으로 ‘썰’을 풀었다.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책과 지식이 당장 쓸데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서 탁구공을 서로 치고 받듯 재기발랄한 대화가 오가는 다섯 아재들의 짧은 여행이 좀 더 풍성한 이유는 책에서 얻은 쓸데없는 지식 덕분일 테다. 쓸데없게만 여겨지던 지식이 비로소 쓸모 있게 변하는 과정을 ‘알쓸신잡>을 통해 확인한다. ‘1박 2일’의 인문학 버전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그러고 보면 여행과 지식의 기본 속성은 모두 ‘낯섦’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일상을 벗어나 처음 가보는 낯선 장소에서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맛보고, 다른 계절과 온도를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독서도 결국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낯선 사실을 받아들여 지식으로 삼으려는 행위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느끼는 기쁨도 덤으로 얻고 말이다.

곧 ‘2017 서울국제도서전’(6.14-6.18)이라는 책 축제가 시작한다. 출판사와 서점들이 부스를 마련해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알쓸신잡’과 비교해 손색없을 재미난 프로그램도 많다. (마침 도서전 홍보대사가 유시민 작가다.) 삶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책과 지식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당장 쓸데없는 책을 사갖고 나올지라도, 또는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후회하지는 말자. ‘알쓸신잡’에서 끊임없이 쓸데없는 지식을 전파 중인 김영하가 이렇게 위로하지 않는가.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