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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하늬 “나는 만족해, 그래서 나는 행복해”
입력 2017-06-19 08:30   

▲이하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배우 이하늬는 스스로를 한계까지는 데에 기꺼움이 없는 사람이다. 기껍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이하늬는 극한으로의 도달을 통해 스스로를 채운다. 한계를 향하는 과정은 고단하고 한계를 깨닫는 순간은 괴롭지만, 이하늬는 이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감사함을 채운다. 완벽을 향한 갈망과 내려놓음 사이를 치열하게 오가면서 이하늬는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운다. 쏘 노 콘텐타, 쏘 노 펠리체.(나는 만족해. 그래서 나는 행복해.)

Q. ‘역적’ 종영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가야금 연주 공연을 했다.
이하늬:
출구 없는 인생이다.(웃음) 공연을 하면서 얻는 게 많다. 그래서 (공연을 하기를) 많이 기다려 왔다. 가야금은 원래 내가 서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나를 잃지 않게 잡아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공연은 가족들과 함께 한 것이었는데 관계가 확실한 사람들과 있으면 본래의 이하늬로 돌아가게 된다. 그게 좋다.

Q. 당신을 잃지 않게 잡아주는 친구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이하늬:
내 모든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오래된 친구인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뭘 하든 항상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 작년에 두 번의 독주회를 하면서 한계에 많이 부딪혔다. 연습실에서의 내 모습은… 아마 사람들이 봤으면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울다가 만족스러워하다가 허리를 부여잡고 누워 있기도 하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음~ 그럼 그럼. 할 만해’라고 여기고. 그런데 그 때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이 나를 소모시킴과 동시에 나를 채워준다.

Q.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의 이하늬가 원래의 이하늬에 가깝다면, 촬영 현장에서의 이하늬는 어떤가.
이하늬:
어떤 촬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밝다. 정말 예민한 장면을 찍을 때… 에도 장난을 많이 친다. 오히려 후반부 녹수의 죽음이 연상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극도로 하이퍼(Hyper) 상태가 됐다. 깊은 슬픔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극단적으로 밝아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밝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더라.

Q. 일종의 방어 기제인가.
이하늬:
작품에 너무 깊이 빠져 미로에 갇힌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원래 뭘 좋아했었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모르겠더라. 누가 나를 세게 치거나 외상을 당하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지더라도 다시 극복하는 것이 쉽다. 진짜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은 데미지다. 그것이 켜켜이 쌓여 무너지게 되면 다시 회복하는 게 더 어렵다. 영혼을 쪼개서 쓰는, 정신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다.

▲이하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노력이 통한 덕분인지 ‘역적’에서 ‘인생 연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얻었다.
이하늬:
감사하다. 그런데 호평이든 혹평이든 의연하게 지나가야 하는 것 같다. 나는 혹평과 호평을 모두를 받아본 사람이다.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은 언제나 혹평과 호평 사이를 교차해야 한다. 이제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많이 내려놨다. 다만 내 안의 순수한 열정, 배우로서 내가 뭘 말하고 싶고 뭘 말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것에 계속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호평에 대한 감사함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만 의연하게 꿋꿋하게 가려고 했다.

Q.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주 공연도 게을리 하지 않고, 심지어 뷰티프로그램 MC로 활약하고 있기까지 한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당신의 성향인가.
이하늬:
어우~ 그렇지 않다. 직원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라. 호호호. 치열함과 내려놓음이 공존해야 한다. 내가 절대로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완벽을 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 이 작품에서 괜찮아. 이 정도면 만족해’라는 생각 또한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것 같다. 너무너무너무 힘들어서 무너진 멘탈을 부여잡고 이태리로 도망치듯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때 내게 보였던 메시지가 ‘쏘 노 콘텐타. 쏘 노 펠리체’, 우리말로 ‘나는 만족해. 그래서 나는 행복해’였다. 만족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으며,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좋은 파장을 나눠줄 수 있겠나.

Q. 혹시 언제의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이하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의 일이다. 작년에 엄청나게 방황을 했었다. 거의 영혼이 너덜너덜한 상태까지 갔는데 그리고 나서 평온이 찾아왔다.

Q. 지금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나.
이하늬:
지금은 그렇다.

Q.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척을 하면서 산다.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연예인들은 더더욱 그렇고.
이하늬:
요새는 ‘진짜’가 아닌 것들은 매력적이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진짜가 아닌 모습을 나 자신에게 볼 때, 격하게 말하자면 역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거짓을) 경계하려고 한다. 좋은 배우가 되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연장선상에 있는 일 같으면서도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지혜가 많이 필요하다.

▲이하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좋은 사람과 좋은 배우가 부딪힐 때는 언제인가. 어떻게 부딪히나.
이하늬: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무한한 상상력과 규제 되지 않은 부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누군가의 딸이자 누나이며 사회적인 인물이다. 그 안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좋은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아티스트로서 하고 싶은 마음이 겹칠 때가 있다.

Q. 충돌이 발생할 때 당신은 어느 쪽을 따르나.
이하늬: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내게 굉장한 자유를 주길 바란다. 정신적으로는 무한대까지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지만 삶은 절제되어 있는 경지. 내 모든 욕정과 욕망을 1차원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잘 다지고 곱씹고 발효시켜서 결국에는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Q. 아티스트로서의 자유로움, 영감은 어떤 방식으로 채우나.
이하늬:
연기 외에 모든 방식으로 섭취하려고 한다. 특히 여행을, 그 중에서도 고된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이미 이하늬로서 존재하는 사회 말고, 제 3의 세계에 들어가 내가 아닌 나로서의 여행을 하게 되면 나 자신을 훨씬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당연하게 알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더 많이 노출시킬수록 내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를 서포트해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나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몸으로 경험하면서 감사함의 연료를 채운다고 할까. 에너지를 쏟지만 동시에 더욱 얻어온다.

▲이하늬(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역적’에서 녹수는 사랑과 힘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힘을 택했다. 당신에게도 큰 결정을 내려야 했던 때가 있었나.
이하늬:
그렇다. 전에는 가야금과 연기를 동시에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가야금을 멈췄던 적이 있다. 내면의 소리에 의한 선택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우려, 내 안의 두려움과 무지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나는 영적인 것에 집중하고 쏟아내고 내 모든 걸 바치는 행위를 즐겨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때(가야금을 멈췄을 때) 알았다.

Q. 말하자면 가야금과 연기 중에서 하나를 택했던 게 아니라, 가야금과 연기를 모두 할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할지를 선택했다는 의미인가.
이하늬:
처음에는 가야금과 연기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배우가 본업’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나는 이제부터 연기자입니다!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배우입니다!’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그렇고 나를 보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그렇다.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나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으면, 때는 오는 것 같다.

Q. 앞서 ‘가야금은 나를 잃지 않게 잡아주는 친구’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하늬:
악기를 하면서 채워지지 않던 갈증이 연기를 만난 뒤 채워졌다. ‘우와. 내가 평생, 내 감정과 감성을 모두 폭발시켜도 괜찮은 직업이 이건가 봐!’ 생각했다. 내 몸 자체가 악기가 돼서 진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직업 아닌가. 악기 연주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내게도 아주 잘 맞는다. 아낌없이, 내 몸이 부서져도 연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