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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사이드] 권재승 안무가 “‘나야 나’ 안무, 제게도 도전이었죠.”
입력 2017-06-29 09:10   

▲안무가 권재승(사진=권재승 제공)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 · 문화 이야기.

춤에 대한 자유 연상. 춤, 춤꾼, 혹시 그럼… 날라리?! 한 때 ‘딴따라’로 평가절하 당하던 음악가들이 수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의 꿈이 되고 우상이 되는 동안, 안무가에 대한 시선은 한 발도 나아지지 못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여전히 한량처럼 보이고 심지어 날라리로 인식되기가 부지기수. ‘춤’이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춤추는 사람들의 직업 환경 또한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거의 모든 시스템이 바뀌어야죠.” 안무가 권재승은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유쾌함을 잃지 않던 그가 딱 한 번 심각한 얼굴을 했을 때를 꼽자면, 바로 직업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다. 거침없던 언변은 놀랄 만큼 신중해졌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고른 단어들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시스템과 인식 변화의 촉구였다. 여기에는 “내가 열심히 해서 바꿔보겠다”는 다짐 또한 뒤따랐다. ‘스타 안무가’의 이 같은 목소리가 후배 안무가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권재승은 비스트 ‘일하러 가야 돼’, ‘예이(YEY)’, 비투비 ‘어기여차디여차’, ‘괜찮아요’, 몬스타엑스 ‘무단침입’ 등의 안무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Mnet ‘힛더스테이지’에 가수 장현승과 함께 출연한 바 있으며 이달 종영한 Mnet ‘프로듀스101 시즌2’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안무팀 단장 중에는 내가 가장 어릴 것”이라는 말처럼 그에게는 단장다운 노련함과 젊은이의 패기가 적절하게 뒤섞여 나왔다. “저는 아직도 설레요. 일주일 뒤에는 내가 어떤 춤을 추고 있을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매번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Q. Mnet ‘프로듀스101 시즌2’(이하 프듀2)가 종영한지 보름여가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권재승: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프듀2’가 끝난 건 아니더라. 당장 이번 주말(7월 1-2일)에 공연이 있어서 오늘도 리허설을 하다 왔다. 콘서트가 마무리 돼야… 아니, 그래도 끝난 기분은 안 들 것 같다.

Q. 심정적으로 말인가.
권재승:
그렇다. 여러 가지로 프로그램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웃음)

Q. 방송이 끝나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그룹 일급비밀은 최근 열린 쇼케이스에서 사람들이 자신보다 안무가님을 더욱 많이 알아보더라는 얘기를 했다.
권재승:
아이고 민망한 얘기다. 하하하. 한 때겠지, 뭐. 애들(일급비밀)은 앞으로 더욱 잘 될 거고.

Q. 겸손한 말이지만 분명 ‘프듀2’가 안무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앞서 출연했던 Mnet ‘힛더스테이지’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고.
권재승:
댄서 혹은 안무가라는 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직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안무가의 매체 노출은 반가운 일이다. 어린 댄서들 중에 해외에 나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해외에서는 춤, 음악, 패션 등 다양한 영역을 결합하며 많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콘텐츠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는 편이다.

▲안무가 권재승(사진=권재승 제공)

Q. 국내에서 안무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는 K팝과 결합된 퍼포먼스가 주(主)이기는 하다.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존재할 것 같은데.
권재승:
사실 어느 아티스트의 안무를 맡는다는 것은 안무가로서의 끝점, 가장 성공한 지점이기는 하다.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갈증이라면… 일단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

Q. 시장 종사자로서, 가장 개선이 시급하다고 느껴지는 사항은 무엇인가.
권재승:
어렵다. 거의 모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창작에 대한 소중함, 창작자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필요가 있고. 비단 안무가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존중받아 마땅한데 특히 몸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

Q. 현실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당신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모습은 어떤 형태인가.
권재승:
안무 에이전시를 만들고 싶다. 외국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 한 곡의 안무를 만들 때에도 안무팀들이 오디션을 통해 경쟁하고. 그리고 이건 조금 위험한 발언일 수 있는데… K팝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 프로그램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지 않았나. (음악 프로그램의) 숫자가 줄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프로그램 당 출연하는 가수도 7팀 정도로 적었으면 좋겠고. 대신 그들이 2~3곡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거다.

지금은 음악이 패스트푸드처럼 소비되고 있고 나도 그런 시장을 이루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결국 모든 게 다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뭐, 연습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어린 댄서들)은 점점 더 힘들다.

Q. 기획사의 전속 안무가로 일해 봤거나 일해 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나.
권재승:
모두 없다. 사실 이 직업이 굉장히 애매하다. 먹고 살 기반은 있어야 하는데 동시에 자유로움이 요구된다. 두 가지가 양립하는 것이 꽤 어렵더라. 사실 요즘에는 안무팀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나는 스킬즈(Skills)라는 팀의 단장으로 있는데, 시대에 뒤처지는 방식이라는 지적도 많이 받는다. 팀 꾸리기 힘든 시대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무팀을 계속 하시는 이유는 뭔가.
권재승:
우선 ‘가족’이라는 생기는 셈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우리 색깔의 안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혼자 작업하거나 외부 팀과 작업을 하다면 해낼 수 없는 일들은 팀원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사실 이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면 안 되는데… 2-3일에 한 곡씩 안무를 짜는 정도다.

▲안무가 권재승(사진=권재승 제공)

Q. 보이그룹의 안무를 많이 만들어 왔다.
권재승:
걸그룹과 작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예전에는 머리 스타일도 ‘반삭’이었고 눈매도 날카로워서 센 이미지가 있었거든. 춤도 남성적인 분위기로 만들곤 했고. 사실 여자 안무도 자신은 있는데.(웃음) 작업해보고 싶은 팀? 누구 하나를 꼽기 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힙합, 혹은 트로피컬 장르의 음악을 하는 팀이라면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Q. 함께 작업했던 가수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팀 혹은 멤버는 누군가.
권재승:
아스트로. 정말 잘한다. 특히 라키 군이 기억에 남는다. 현존하는 아이돌 그룹, 심지어 댄서들까지 통틀어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할까. 정~말 잘한다. 심지어 나이도 아직 어리고. 문빈이라는 친구도 잘한다. 평균적인 춤 실력이 최상위권에 있는 팀이고 가장 기대를 걸고 지켜보는 팀 중 하나다.

Q. 장현승, 효린 등 솔로 가수와 작업을 한 경력도 있다. 그룹의 안무와 솔로 가수의 안무를 짜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권재승:
그룹은 파트가 많이 나뉜다. 잠깐 동안 멤버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힘들다. 게다가 안무 작업 초반에는 가이드 녹음본으로 음악을 전달받아서 더더욱. 멤버들마다 캐릭터를 잡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처음(데뷔)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의 안무를 작업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반면 솔로는 가수가 편하고 댄서들이 힘들다. 가수는 혼자서 전곡을 소화하다 보니, 자기의 색깔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는 그룹보다 여유가 있다. 대신 댄서들이 가수를 돋보이게 해줘야 하는 입장이니 기술적인 부분에서 힘들 것이다.

Q. 안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권재승:
우선 노래가 좋아야 한다. 팀과 멤버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색깔에 맞는 곡이 먼저 나와야 한다. 노래가 좋으면 사실 어떤 안무를 붙여도 다 멋질 수 있다. 그리고 ‘느낌’이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작업을 하면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더라. 내가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선에서 안무를 완성한다.

Q. 노래 때문에 안무 의뢰를 거절한 적은 없나.
권재승:
없다. 음악은 중요하지만 음악 때문에 안무를 만들지 못하겠다는 건 편식이라고 본다. 그건 안무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 안무를 안 맡겠다? 그냥 내가 못할 것 같으니 피하는 거다. 여러 가지 옷을 꺼내 여러 가지로 코디하는 것이 ‘스타일’이지 한 벌만 내내 입는 건 ‘편식’이다. 춤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고.

Q. 당신에게 가장 도전적이었던 안무, 미개척지를 개척하게 만든 안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권재승:
‘나야 나’였던 것 같다. 시즌1에서 (배)윤정 누나가 워낙 좋은 안무를 짜놓았던 터라 많이 부담스러웠다. 시즌1 때처럼 따라 하기 쉽고 간편한 안무를 만들까 하다가 남자 아이돌이라는 성격을 살리기로 했다.

▲권재승 안무가가 만든 '나야 나' 안무(사진=Mnet '프로듀스101 시즌2')

Q. 안무 창작은 기획사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업이다. 프로듀서들이 객원 가수를 활용해 작곡가 중심의 음반을 만들 듯, 안무가 중심의 무대를 완성해보고 싶은 욕심은 없나.
권재승: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음악이 먼저다. 청각 장애인도 춤을 출 때는 자신만의 소리, 리듬을 갖고 있다. 무조건 음악이다.

Q. 누구의 음악을 좋아하나.
권재승:
해외 아티스트 가운데서는 체인스모커, 메이저레이저 같은 팀을 좋아한다. 크리스 브라운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와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다.

Q. 크리스 브라운의 경우 ‘춤’과 밀접한 인물이지만 체인스모커나 메이저레이저가 의외다. 그들의 음악에 맞춰 ‘안무’를 만든다는 게 쉽게 상상되지 않는데.
권재승:
그림을 만들어야지. 가령 체인스모커의 ‘파리(Paris)’라는 곡을 들으면 사람들로 길거리를 만들고 사람 몸으로 침대를 만드는, 큰 그림이 그려진다. 크리스 브라운이 댄싱적인 면에서 즐길 수 있는 춤이라면 체인스모커나 메이저레이저는 그림에 가깝다.

Q. 안무가 혹은 댄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권재승:
우선 스스로 정말 춤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사실 좋아하는 걸 하다보면 어느 순간 꿈이 현실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춤만 추고 싶어 하는 것과 춤 자체를 좋아하는 것을 많이 헷갈려 한다. 일단 춤에 대한 애정이 확실하다면 ‘포기’라는 단어는 절대 떠오르지 않을 게다. 좋아하는 것을 지켜가기 위해 나 자신보다 오히려 남을 더욱 생각하게 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기 위해 타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춤에 대한 애정이 끈기 있게 춤을 출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상황을 소중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춤을 춤의 영역에서만 한정해 생각하지 말고 일상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길 바란다. 누군가의 말, 행동… 모든 생활 속에 춤이 녹아 있고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안무가, 댄서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내가 바꿀 수 있다면 바꿔볼게.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너희들(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게끔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춤은 어떤 의미인가.
권재승:
시작과 끝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의 삶 자체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의 모든 생활에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나. 그것이 내게는 춤의 근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