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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칼럼] 원작이 흥행하면, 영화에는 약일까 독일까
입력 2017-12-14 08:42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희생부활자’, ‘장산범’, ‘반드시 잡는다’ 등의 국내 웹툰 원작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하지못하고 있다. 국내외 소설이 원작인 영화 ‘남한산성’, ‘석조저택 살인사건’, ‘대장 김창수’ 등도 연이어 부진한 스코어에 머물렀다. OSMU,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로 불리며 각광을 받던 웹툰과 소설의 영화화 ‘성공 스토리’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던 걸까.

웹툰 원작 영화는 2010년대 들어 윤태호 작가의 ‘이끼’와 ‘내부자들’, 강풀 작가의 ‘26년’, ‘이웃사람’, HUN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시장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물론 ‘더 파이브’, ‘패션왕’, ‘전설의 주먹’ 등 수익을 올리지는 못한 웹툰 원작 작품들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웹툰의 팬층을 바탕으로 영화로 보다 확장되는 추세였다. 콘텐츠에 투자하는 많은 벤처캐피탈 운용사들도 OSMU의 확장성을 강조한 운용 콘셉트로 투자자를 유치했고, 펀드를 결성했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져가던 OSMU의 확장성이 요즘 신통치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하나의 작품으로 영화, 음악, 캐릭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만이 가진 특별한 장점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확장성 뿐 아니라 휘발성도 큰 분야다. 엔터테인먼트의 생명은 창의성에서 나오는 새로움과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콘텐츠가 입소문을 탈 경우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수익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문제는 이 새로운 재미에 대해 대중들이 너무 쉽게 싫증을 낼 수 있다는 데 있다.

개봉일 치솟았던 관객수가 며칠 만에 뚝 떨어지는 일이 많은 건 특히 영화라는 장르에 상존하는 휘발성 때문이다. 실제로 한 번 대박이 난 영화의 속편은 대부분 잘 될 것 같지만, 그런 사례 역시 흔치만은 않다. 과거 ‘돌아이’나 ‘우뢰매’ 같은 장편 시리즈물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건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토리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후속적인 스토리텔링과 창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엔터테인먼트의 휘발성은 최근 리메이크 영화의 흥행 패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원작이 인기가 있더라도 해외에서 공개돼 한국의 관객들과 거리감이 있거나, 저평가된 원작을 사서 리메이크하는 영화들이 독보적인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2016년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경우,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시대적 배경을 한국과 일본으로 재창조해 약43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2016년 가을 700만이 넘는 대 히트를 친 영화 럭키의 경우는 일본에서 우치다 겐지 감독이 연출한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했는데, 이 영화는 일본에서 62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7년 출간돼 100쇄를 찍는 인기를 거둔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이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손익분기점에 못 미치는 성과를 냈다. 2007년 크게 히트를 쳤던 기욤 뮈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도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2014년 중국에서 히트를 쳤던 곽부성 주연의 영화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한 ‘침묵’도 예상 외로 저조한 스코어를 올렸다. 원작의 인지도가 관객들을 관심을 모으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새로움을 주기에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또한 영화 남한산성을 올해 보기 드문 수작으로 꼽지만, 미지의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일부 장년층은 ‘봐서 기분 나쁠 게 뻔한 영화를 왜 보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이 같은 세태가 반영됐을까.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공조’,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 전형적인 폭력오락 장르가 압도적이었다. ‘택시운전사’와 ‘아이캔스피크’와 같이 주연 배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일부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로맨스, 공포, 스릴러, 정치, 경제 등 그 밖의 과감한 장르물들은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새로운 시도는 어렵다. 웹툰 원작이건 소설 원작이건 한국형 영화에 익숙한 전개방식과 반전이 없다면 관객의 흥미를 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례로 여배우 주연의 액션영화 악녀, 미옥의 경우에도, 강한 카리스마의 남자주연에 익숙한 관객들의 기대감을 ‘미리’ 충족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영화업계가 양적으로나마 성장하는 측면을 보면(질적, 분배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원작의 영화화를 통한 ‘롱테일 비즈니스’의 기대감을 낮출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국내 극장에서 다수의 환호를 받지 못하더라도 VOD, 해외판매 등의 부가수익으로 제작비를 만회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휘발성을 다양한 플랫폼의 윈도우(창)으로 극복하면서 부가수익을 올리는 밸류체인이 길어지고 포털, 동영상사이트, OTT(Over The Top) 등으로 재판매되는 기간과 관객들과의 접점도 늘어났다. 잘 만들어진 원작도 마찬가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43년 후인 2017년 영화화돼 먼 한국 땅에 상륙해 있지 않은가. 잘 만들어진 작품의 흥행실패는 업계 전체로 보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 웹툰, 소설들이 더욱 더 많이 영화화되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연말 개봉할 웹툰 배경의 ‘강철비, 웹툰 원작의 ‘신과 함께’의 반응이 무척 궁금하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