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김선호를 만든 것들
입력 2018-02-01 14:29   

▲김선호(사진=고아라 기자 iknow@)

배우 김선호는 지난해 KBS2 금토드라마 ‘최강배달꾼’ 촬영을 하면서 ‘내가 전생에 읍(邑) 하나 정도는 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인복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MBC 월화드라마 ‘투깝스’를 찍으면서 그의 생각은 변했다. 적어도 나라 하나는 구한 것 같단다. 선망하던 선배 배우 조정석과 파트너로 호흡하며 연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선호는 “다들 나를 부러워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선호는 최근 몇 년 간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배우 중 하나다.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해 세 편의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하며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김선호를 진정 기쁘게 만든 것은 그가 맡은 역할의 크기가 아니었다. 그는 조정석, 박훈, 오의식 등 평소 존경하던 선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해 했다. “너무 벅찼어요. 제가 더 상장할 수 있는 길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았죠.”

‘빙의’를 소재로 한 작품에 출연한 덕분에 김선호는 ‘영혼’을 연기하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타인의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적응이 되어갈수록 재미를 찾았다. 조정석과 함께 공수창을 만들어가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해석을 공유하면서 캐릭터를 잡았다. 처음엔 조정석의 연기에 마냥 감탄하던 김선호는 어느새 그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동료 배우’로 어깨를 견줬다. 그는 “서로 블록을 쌓아서 탑 하나를 만든 느낌”이라고 했다.

▲김선호(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어린 시절 김선호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어머니를 빼닮은 성격이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 강도가 든 광경을 목격한 뒤로는 트라우마가 생겨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걸 견디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기에 발을 들인 건 그래서 우연이라기보다는 운명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밴드부 보컬을 하던 친구가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연기학원에서, 그는 타고난 성격과 오랜 공포를 뒤집는 재미를 발견했다.

“그냥 대뜸 ‘해봐’ 하시니 해본 거죠. 물론 엉망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대사를 한다는 게, 누군가 쓴 글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얹는 거잖아요.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 저를 보면서 한 마디씩 조언을 해주는 게,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학교에 갈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만큼 실력은 뒤져 있었지만 김선호는 매일 먼저 학원에 나가 자신이 연습해온 연기를 선보였다. “다른 친구가 먼저 연기하면 부끄럽고 무서워서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선호의 성격과 트라우마가 그를 채찍질했다. 언제나 긴장 상황에 놓여 있던 덕에 큰 오디션을 앞두고는 오히려 덜 떨 수 있게 됐다. “편하게 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김선호(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연극 ‘뉴 보잉보잉’으로 데뷔한 뒤 ‘옥탑방 고양이’ ‘트루웨스트’ ‘거미여인의 키스’ 등 대학로 인기 작품을 거쳐 가며 인지도를 쌓았다. 처음 팬이 생겼을 땐 ‘우와, 내게도 팬이 생겨?’ 하며 기뻐했지만 “신기한 건, 딱 한 달” 뿐이었다. “내가 철이 없어서 유명해지는 걸 꿈꾸지 않”는다는 김선호는 다만 “발전해가는 나를 찾는 일에 꽂혀서”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를 데뷔 때부터 지켜봐오던 일부 팬들은 그가 멀어질까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김선호는 “내가 너희들에게서 멀어지겠니?”라고 답한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도 많아”지면서 “변하지 않을 순 없겠다고 느끼”지만, 자신 또한 변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잃고 싶지 않은 건 있다. 겸손함이다.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반드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였어요. 제가 제 입으로 ‘겸손한 배우’라고 말하는 건 웃기겠지만, 항상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마음 한편에 두고 있어요. 그래야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으니까요.” 김선호의 어머니는 “나는 꿈이라는 것 없이 살았는데, 연기가 네 꿈이라고 하니 말리지는 않겠다”며 학비를 지원해준 분이다.

▲김선호(사진=고아라 기자 iknow@)

김선호는 “남들보다 이만큼 아래에서 시작해 이제야 남들만큼 올라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의 인생은 늘 그랬다. 생애 첫 기억이 “반 지하에서 어머니가 쥐를 잡던 것”일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김선호는 “우리 집이 망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형편이 점점 좋아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부모님께서 당신들의 어려움은 내색하지 않고 저를 너무나 잘 키워주셨거든요.” 지금 김선호의 부모님은 “방 세 칸에 화장실 두 개가 딸린 훌륭한 집”에서 살고 계신다. 김선호는 그런 부모님이 애틋하고 자랑스럽다.

요즘엔 운동과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회사원인 친구의 조언 때문이다. 친구는 김선호에게 “회사원이 회사에서만 일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너도 (촬영장 밖에서) 관리하는 것이 네 일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호는 “머리가 띵~ 했다”고 회상했다. 그 뒤로는 쑥스러워 가지 않았던 피부과에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나는 왜 멋지고 화려한 걸 택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 있어요. 저는 멋지게 눈물 흘리는 건 잘 못하겠는데, 지질하거나 아픔을 참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더욱 슬프게 느껴지거든요. 지금 든 생각인데, 제가 평범한 풍경을 보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판자촌의 이모와 삼촌들, 공공화장실의 모습…. 그런 것들이 저의 감성을 쌓은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이거,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멋진 연기도 다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지금은 제 자신을 많이 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