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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승호, 나와 당신의 거리
입력 2018-02-07 08:26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배우 유승호는 세상에 나와 있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한 때 “문밖으로 나가면 내가 ‘나’가 아닌 게 되는 것 같았다”던 그는 요즘 두 자아 사이의 적당한 간격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절이나 체념의 결과가 아니다. 단지 그가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우며 세상에 다가서는 과정일 뿐이다.

Q. 감기에 걸렸다더니 차가운 음료를 마셔도 되는 거예요?
유승호:
제가 원래, 커피는 아이스만 마셔요.(웃음)

Q.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놀랐어요. 시청률이 좋지 않은 작품의 인터뷰는, 많은 배우들이 껄끄러워하기 마련이잖아요.
유승호:
결과만 보면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전 ‘로봇이 아니야(MBC, 2017)’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배우, 감독님, 완성도, 재미까지 너무나 완벽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까워요. 작품은 이미 끝났지만 이제라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Q. 초반 논란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 여자친구의 얼굴을 본 뜬 로봇을 제작한다거나 로봇이 메이드와 유사한 복장을 입고 등장한 장면들이 반발을 샀죠.
유승호:
홍백균(엄기준 분)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그런 설정이 들어간 것 같아요. 극히 일부분이지만…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겠네요. 여자 로봇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점도 성(性)적인 맥락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딥 러닝(Deep Learning)의 과정을 굉장히 강조하려고 했던 거고요.

Q. 초반의 걱정이 있었음에도 ‘로봇이 아니야’가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뭔가요.
유승호:
한 인간이,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사랑이라는 힘으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들여다보면 많은 장치나 소품이 연관돼 있어서 그것들을 연결하면서 본다면 이해가 편했을 것 같아요.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없거든요.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Q. 승호 씨는 어때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해본 적, 있어요?
유승호:
아뇨. 상처는 많이 받았는데요, 그냥 그러다가 말아요.

Q. 드라마의 메시지에 공감했다면, 타인에게서 상처를 치유해보고 싶다는 욕구는 안 들었어요?
유승호:
그러진 않았어요.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현실은 현실이고요.(웃음)

Q. 속 얘기는 주로 누구에게 털어놔요?
유승호:
딱히 얘기하는 곳이 없어요. 친구들에게 얘기해본 적도 있는데 받아들이기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 중에도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요. 그냥 저 혼자 생각하고 (고민을) 풀어가는 데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Q. 고민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위안을 얻는 대상이나 행위는 있겠죠.
유승호:
대상은 없고요, 제가 처한 문제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요. 그러다 보면 고민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해답이 나올 때도 있어요. 가족에게 조언을 얻을 때도 있고요.

Q.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지나고 나니 별 거 아니던 일도 있었겠죠.
유승호:
제가 했던 고민은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전역한 뒤 찍은 영화가 잘 안 돼서 걱정했던 것,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나, 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걱정.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던 것들이거든요. 그 때 고민을 했건 안 했건 난 똑같이 열심히 했을 텐데. 그런데 제 성격상, 일이 닥치면 고민을 해야 하는 편이긴 해요.

Q. 지금은 어떤 고민이 가장 커요?
유승호:
하나도 없어요.(웃음) 지금은 너무 좋아요.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

Q. 취미는 없어요? ‘군주’ 인터뷰 때 친구 농사를 돕는다고 말한 게 큰 화제가 됐어요. “비름단은 꼬다리를 썰어야 상품 가치가 높아진다”고 했던가요.
유승호:
평일엔 놀고 싶어도 친구들이 직장에 다니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회사로 놀러갈 수도 없고. 그런데 농사를 하는 친구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혼자 일을 하잖아요. ‘네가 도와주면 끝나고 빨리 PC방 갈 수 있어’라고 해서 종종 도와줬죠. 그런데 그 친구가 농사를 그만 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Q.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승호가 꼬다리를 썬 비름나물’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비싸게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웃음)
유승호:
그렇지 않아도 친구가 장사를 하자더라고요. 써는 건 내가 할 테니 얼굴만 빌려달라고. …거절했죠. 하하.

Q. 감정과 감성을 사용하는 연기에 비해, 농사는 비교적 단순 노동에 속하는 일이니 당신에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유승호:
군대 같아요, 그냥.(웃음)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시간 잘 가고.

Q. 그럼 요즘엔 뭘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유승호:
딱 하나 있는 취미가 레이싱이에요. ‘군주’(MBC, 2016) 끝나고부터 타기 시작했어요. 힘들 땐 ‘조금만 더 참자, 참고 차 타러 가자’고 생각해요.

Q. 외롭지 않아요?
유승호:
외로움은 있는데 못 참거나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에요. 예전엔 외로움이 크게 다가왔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이즈는 같을지언정 그게 예전만큼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

Q. 인터뷰가 의외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이다 보니 ‘연애’와 관련한 질문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연애 이야기를 불편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유승호: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제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얘기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요즘엔 팬 분들, 혹은 시청자 분들은 ‘우리 오빠는 연애하면 안 돼’ ‘내 배우는 연애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Q. ‘유승호’라는 이미지는 어때요? 지난 인터뷰에서 바른 이미지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 많다고 했죠. 그 이미지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이 관대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유승호:
(사람들이) 저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애초에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억지로 바르게 보이려고 크게 노력하지는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지켜야 할 선 안에서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있어요.

Q. 전작 인터뷰를 하면서 멜로 감정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을 했죠. ‘로봇이 아니야’를 찍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유승호:
힘든 건 없었어요. 민규가 인간 알러지 때문에 고립된 채 산다는 설정으로 시작해 극의 진행되면서 갈등도 겪고 사랑에도 빠진 것이거든요. 멜로 감정은 천천히 적응하며 찍어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채)수빈 씨와 실제로 친해지기도 했고요.

Q.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뭐였어요? 나와 안 어울릴 것 같아서? 어색해서? 낯간지러워서?
유승호:
지금 말씀하신 모든 게 이유였던 것 같아요.(일동 웃음) 보는 건 재밌는데 제가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었어요. 많이 안 해봐서,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Q. 연기하면서 혹은 보면서 가장 낯간지러웠던 장면은 뭐였어요?
유승호:
후반부에 지아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장면이 있었어요.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나오는 행동이 현장에서 거부감 없이 편하게 나와 놀랐죠. 원래 절대로 그럴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까지 현장이 편하고 상대 배우가 편해지는구나, 그래서 내 진짜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방송으로는… 어휴, 보기 힘들었어요.(웃음)

▲배우 유승호(사진=산 엔터테인먼트)

Q. 작품 안에서의 유승호와 실제의 유승호를 분리하는 편인가 봐요.
유승호:
작품뿐만 아니라 집밖으로 나가면 실제의 유승호라는 사람과는 거리가 생겨요.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예의를 지키려고 하죠.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어요.

Q. 세상과 벽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의 솔직한 모습을 꺼내놓은 ‘군주’ 종영 인터뷰에 사람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유승호:
제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전달하고 싶어요. 연예인들이 늘 하는 말 있잖아요. 저도 그거 똑같이 할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저를 궁금해 하고 보러 온 사람이 있는데, 못했으면 못했다고 잘했으면 잘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한 비판이 있다면 제가 받아들여야죠.

Q. 많은 연예인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승호 씨에겐 그런 욕구가 없나요?
유승호: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면 실망할 것 같아요. 하하. 제 실제 모습, 별 거 없어요. 되게 평범해요. 장난치는 것 좋아하고요.

Q. 사람들이 ‘재밌는 유승호’를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그냥 ‘날 것의 유승호’를 원할 지도 모르죠.
유승호:
후… 그건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실제 저와의 거리를 유지했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집밖으로 나오면 내가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게 싫더라고요. 한 번에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바뀌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Q. 예능에 출연할 생각은 없어요? 예전에 MBC ‘진짜 사나이’에 나가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훈련을 너무 잘 받을까봐 못 나갈 것 같다고 답한 적 있죠.
유승호:
그건 진짜예요. 너무 잘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Q. 보는 건 좋아해요?
유승호:
아뇨. 예능은 아예 안 봐요.

Q. 드라마나 영화는요?
유승호:
주로 영화를 많이 봐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잘 안 봐요. 보면 (작품에 나오는 연기를) 따라하게 될 것 같아서 웬만하면 안 보려고 해요.

▲배우 유승호(사진=산엔터테인먼트)

Q. 세상과 나를 너무 분리시키는 거 아니에요?(웃음) 많은 사람들과 섞이고 싶다는 욕구는 없어요?
유승호:
저도 제가 좋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요. 직접 보고 접하고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작품이 들어오면 감독님이나 출연 배우의 전작을 찾아보긴 하지만, 평소엔 TV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진 않아요.

Q. 잘 될 것 같은 작품보다는 하고 싶은 작품이 우선인가요?
유승호: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작품. (Q. ‘로봇이 아니야’는 어느 쪽이었어요?) 잘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 기준으로는 잘 만들어졌고요.

Q. 하지만 시청률이 아쉬웠어요. 내가 좋아한 작품이 대중의 선택을 못 받았다는 건, 나와 대중의 취향 사이의 괴리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죠.
유승호:
3%는 맞았으니까요. 너무 잘 아시잖아요,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출 수 없다는 걸. 작품 시청률이 안 나왔다고 해서 제가 기죽을 필요가 있을까요? 이기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저는 ‘로봇이 아니야’가 너무 좋아요. 자랑스럽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인터뷰도 안 했을 거예요, 창피해서.

Q. 승호 씨에겐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굉장히 중요한가봐요.
유승호:
예전에는 남이 먼저였는데 어느 순간 저도 살고 싶었어요. 타인은 당연히 중요하죠. 그런데 제가 살아야 남도 살리지 않겠어요? 이기적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남들도 그렇게 사는데 굳이 나라고 다른 사람만 생각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이기적이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기대를 체념한 데에서 나온 결론인 것 같아요.
유승호: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놓을 수 있는 건 놨어요. 살 수 있을 정도로.

Q. 그것이 체념의 결과이든 극복의 결과이든, 배우 유승호는 앞으로 흔들리지 않으면서 나아갈 자신이 있는 거죠?
유승호:
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웃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엔딩을 볼 수 있다면 저도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